[아프리카인사이트①] 양지예, 부룬디에서 만난 사람과 문화…서울까지 이어진 아프리카와의 인연
2014년 국제개발협력 현장에서 시작된 만남, 가족과 공동체의 문화에서 세계시민의 삶으로…2026년 한·아프리카 교류의 확장
[KtN 임우경 · 박준식기자] 2014년 아프리카 부룬디(Burundi)에서 생활하던 양지예 아프리카인사이트 이사는 현지 주민들에게 뜻밖의 질문을 여러 차례 들었다. 자녀가 몇 명인지 묻는 말이었다.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양 이사는 결혼하지 않았다고 답했고, 주민들은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결혼과 가족을 바라보는 생각이 달랐지만, 낯선 질문에는 한국 사회의 오래전 생활문화와 닮은 부분도 있었다.
양 이사는 K-Trendy News와의 인터뷰에서 부룬디에서 만난 사람들의 가족문화와 공동체적 생활방식을 떠올렸다. 한국에서도 일정한 나이가 되면 결혼을 기대하고 가족과 이웃이 서로의 생활에 깊이 관여하던 시절이 있었다. 부룬디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 다른 사회가 공유하는 생활의 정서를 발견한 것이다.
처음 아프리카를 찾았을 때 양 이사는 국제개발협력 분야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았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졸업 이후 진로를 고민하던 시기에 생명과 환경, 사회복지 분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으며 성장한 만큼 자신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우연히 지원한 인턴십 프로그램이 부룬디에서 활동하는 기회로 이어졌다.
부룬디에서의 생활은 국제개발협력을 바라보는 생각을 넓히는 시간이 됐다. 주민들과 함께 일하고 일상을 나누면서 생활환경과 가족관계, 문화와 가치관을 가까이에서 접했다. 국제사회가 아프리카를 소개할 때 주로 사용하는 빈곤과 질병, 식량 부족이라는 설명 외에도 사람들의 삶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존재했다.
양 이사는 아프리카를 외부에 전달하는 방식에 관해 깊이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국제구호 활동에서 빈곤과 질병은 중요한 현실이지만, 아프리카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이야기는 훨씬 넓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가족을 이루고 이웃과 관계를 맺으며 일하고 배우고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다.
국제개발협력에서 어려운 생활환경을 알리는 일과 주민들의 문화적 존엄을 존중하는 일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의료와 교육, 식수와 주거 등 기본적인 생활 여건을 개선하는 활동은 중요하다. 동시에 지역사회가 오랫동안 형성해 온 생활문화와 공동체의 가치, 주민 스스로의 선택과 참여 역시 협력의 중요한 기반이 된다.
양 이사가 부룬디에서 경험한 가족문화도 그런 이해의 일부였다. 자녀와 결혼에 관해 자연스럽게 묻는 주민들의 태도에는 개인의 삶을 가족과 공동체의 관계 속에서 받아들이는 생활방식이 담겨 있었다. 한국에서는 세대가 바뀌면서 결혼과 가족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지만, 양 이사는 어린 시절 경험했던 이웃 간의 친밀한 관계를 떠올렸다.
주택가 골목에서 이웃집을 찾아가고, 부모가 집에 없을 때 가까운 이웃에게 도움을 청하던 생활이었다. 가족의 범위를 넘어 서로의 일상을 나누던 기억은 부룬디에서 만난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 하나의 연결고리가 됐다.
아프리카의 가족문화는 국가와 지역, 세대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부룬디에서도 교육과 사회활동의 기회가 넓어지면서 여성들의 결혼과 직업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고 있었다. 양 이사는 처음 아프리카를 방문한 2014년 이후 여러 국가의 사회와 생활문화가 변화하는 과정을 경험했다고 설명했다.
가족과 공동체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와 개인의 진로와 선택을 존중하는 가치관은 현대사회에서 함께 발전하고 있다. 한국과 아프리카의 여러 국가가 서로 다른 역사적 경로를 걸어왔지만, 가족과 이웃의 관계, 교육과 직업을 둘러싼 변화에서는 공통된 생활의 흐름도 발견할 수 있다.
양 이사의 아프리카에 대한 관심은 부룬디에서의 생활 이후에도 이어졌다. 노르웨이에서 국제개발협력을 공부하던 시기 한국의 비영리단체 아프리카인사이트를 접했다. 단체가 추진하던 아프리카 인식 개선과 문화교류 활동은 현지에서 생활하며 느꼈던 생각과 맞닿아 있었다.
처음에는 후원자로 관계를 맺었다. 학업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뒤에는 아프리카인사이트의 채용 공고에 지원했고, 2019년부터 실무자로 활동했다. 현재는 이사로 참여하며 한국과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문화교류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13년 설립된 아프리카인사이트는 2018년 사단법인으로 전환했다. 아프리카의 다양한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세계시민교육을 비롯해 시민 참여형 문화행사와 국제교류를 추진해 왔다. 아프리카에 관한 정보를 전달하는 교육과 사람들이 직접 만나 교류하는 문화활동을 함께 운영해 온 것이 특징이다.
아프리카를 깊이 이해하려는 움직임은 국제사회에서도 문화와 교육, 창작자의 활동을 중심으로 넓어지고 있다. 아프리카 각국에서는 음악과 영화, 패션, 문학,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의 창작 활동이 국제적인 교류로 이어지고 있다. 디지털 플랫폼의 발전은 지역의 문화가 국경을 넘어 소개되는 통로를 넓혔고, 아프리카 출신 창작자들이 자신의 언어와 감각으로 작품을 발표할 기회도 다양해졌다.
2026년 11월 5일부터 8일까지 나이지리아 라고스에서는 'CANEX WKND 2026'이 열리고 있다. 아프리카수출입은행(Afreximbank)이 주관하는 문화·창조산업 행사로, 아프리카와 카리브해 지역, 세계 각국의 아프리카계 창작자와 기업인, 정책 관계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올해 행사는 영화와 음악, 패션, 문학, 시각예술, 음식문화, 스포츠 등 폭넓은 분야를 다룬다. 창작자의 활동을 문화적 표현과 함께 경제적 자립, 지식재산권, 투자와 산업 기반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논의도 진행되고 있다.
아프리카연합(African Union)은 문화·창조산업을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 문화적 정체성을 연결하는 분야로 다루고 있다. 2026년에는 아프리카 문화 르네상스 헌장 채택 20주년을 맞아 문화유산의 계승과 현대적 창작 활동, 창작자의 권리 보호 등을 함께 논의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현대문화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바탕으로 새로운 창작 방식을 발전시키고 있다. 나이지리아와 가나를 중심으로 세계에 알려진 아프로비츠(Afrobeats),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발전한 아마피아노(Amapiano)는 현대 아프리카 대중음악의 변화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장르다. 지역의 음악적 전통과 현대적인 제작기술, 국제적인 음악 교류가 결합하면서 세계 대중문화와의 접점도 넓어지고 있다.
양 이사는 인터뷰에서 아프로비츠를 비롯한 아프리카 음악이 한국에서도 점차 친숙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대중음악과 춤에서도 아프리카 음악의 리듬과 안무를 접할 수 있고, 국내에서 아프리카 음악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DJ와 공연자들의 활동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대중문화 역시 아프리카 여러 국가에서 관심을 얻고 있다. 양 이사는 아프리카를 방문하거나 현지 친구들과 교류할 때 한국 음악과 화장품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고 말했다. 유튜브와 틱톡, 인스타그램 등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서로의 문화가 실시간으로 소개되면서 물리적인 거리와 별개로 문화적 교류가 활발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국과 아프리카의 문화적 만남은 개인의 삶에서도 구체적인 관계로 이어지고 있다.
양 이사는 케냐 출신 남편과 생활하면서 가족과 친구를 대하는 방식에서 다양한 문화적 차이와 공통점을 경험했다. 남편은 가까운 친구 사이에서 부탁을 주고받는 일을 자연스럽게 여겼다. 양 이사는 친밀한 관계일수록 상대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부탁을 조심하는 편이었다. 서로를 아끼는 마음은 같았지만 친밀함을 표현하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었다.
서로의 생활방식을 이해하는 과정은 개인이 속한 문화와 경험을 다시 생각하는 기회가 됐다.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태도에서도 공동체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방식과 상대방의 독립성을 존중하는 방식이 함께 나타났다. 하나의 문화가 다른 문화보다 더 우월하다고 판단하기보다 서로의 표현을 이해하고 관계를 조정하는 경험이었다.
양 이사는 남편과 결혼을 결심한 이유에 대해서도 문화적 배경보다 성격과 가치관이 자신과 잘 맞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안으로 들여다보니까 저랑 제일 비슷한 사람이더라고요."
국적과 인종, 언어가 다른 사람들도 삶의 경험과 가치관에서 가까운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문화적 차이는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사람들 사이의 친밀함은 오랜 대화와 공동의 경험 속에서 형성된다.
한·아프리카 문화교류를 지속해 온 아프리카인사이트의 활동 역시 사람들 사이의 실제 만남에 무게를 두고 있다.
지난 10월 24일 서울 반포한강공원에서 열린 제9회 서울아프리카페스티벌은 한국에 거주하는 아프리카 출신 주민들과 한국 시민들이 함께 문화활동에 참여하는 자리였다. 2016년 시작된 축제는 아프리카인사이트와 주한아프리카외교단이 공동 개최하는 행사로 발전해 왔다.
아프리카 각국의 음악과 춤, 음식, 패션과 예술을 접하는 프로그램은 시민들이 일상에서 다른 문화와 만나는 기회를 제공한다. 공연과 전시를 통해 문화적 특징을 알아가는 일에서 나아가 창작자와 주민이 직접 자신의 경험을 소개하고 관람객들과 교류하는 관계도 형성된다.
양 이사는 서울아프리카페스티벌을 기획하면서 평소 아프리카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을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공원을 지나던 시민이 음악에 관심을 갖고 공연을 관람하거나 새로운 음식을 맛보는 경험은 다른 문화와 가까워지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문화예술은 서로의 언어를 충분히 알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공감과 교류를 가능하게 한다. 음악의 리듬과 춤의 동작, 음식의 맛과 예술작품의 표현은 각기 다른 역사와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경험할 수 있는 요소다. 직접 만나고 대화를 나누는 기회가 더해지면 서로에 관한 이해도 구체적인 인간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
한국과 아프리카의 교류는 2026년 국가외교 차원에서도 확대되고 있다. 지난 6월 1일 서울에서는 첫 한·아프리카 외교장관회의가 열렸다. 아프리카 50개국과 4개 지역기구 대표들이 참석해 경제협력과 지속가능한 성장, 국제사회의 공동 현안에 관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6월 2일 아프리카 국가와 지역기구의 장관급 인사 20명을 접견하고 한·아프리카 협력의 확대를 강조했다. 정부는 2029년 한·아프리카 정상회의 개최를 추진하고 있다. 경제와 교육, 디지털 전환과 개발협력 등 다양한 영역에서 양측의 교류가 넓어지는 흐름이다.
국가 간 외교가 협력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한다면 문화와 시민교류는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관계를 형성하는 통로가 된다. 한국과 아프리카의 협력이 경제와 기술을 넘어 문화예술과 교육, 청년 교류로 이어질 때 국가 간 관계는 시민들의 생활에서도 더욱 구체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
양 이사가 부룬디에서 처음 경험한 가족과 공동체의 문화는 이후 국제개발협력 공부와 한국에서의 활동, 케냐 출신 남편과의 일상으로 이어졌다. 아프리카를 이해하는 범위도 처음 방문했던 한 나라에서 여러 국가의 사회와 문화, 사람들의 삶으로 넓어졌다.
2014년 부룬디 주민들이 건넸던 가족에 관한 질문과 2026년 서울에서 이어지는 문화교류는 서로 다른 장소와 시간을 지나 연결돼 있다. 일상의 작은 대화에서 시작된 이해가 교육과 문화예술, 시민들의 만남으로 확장되는 과정이다.
아프리카인사이트는 세계시민교육과 서울아프리카페스티벌을 이어가며 국내 아프리카 출신 문화예술인과 지역 공동체의 참여 기회를 넓히고 있다. 서울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아프리카 문화와 직접 만나는 활동도 이어지고 있다. 양지예 이사의 부룬디 경험에서 출발한 인연은 한국과 아프리카의 사람들이 서로의 일상을 알아가고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문화교류로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