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유네스코, 평양 합의 8년…남북 공동등재 향한 길 다시 잇는다
2018년 WT·ITF 협력 서명 뒤 빈·불가리아·예슬로서 접촉 이어져…북한 2024년, 한국 2026년 신청 완료하며 샤먼 이후 후속 협의 주목
[KtN 박준식기자]2018년 11월 2일 평양에서 조정원 세계태권도연맹(WT) 총재와 리용선 국제태권도연맹(International Taekwon-Do Federation·ITF) 총재가 태권도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공동등재에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WT와 ITF의 교류 확대와 함께 유네스코 등재 협력이 합의문에 포함됐다.
8년 뒤 북한이 먼저 유네스코 최종 심의를 앞두게 됐다. 북한이 2024년 3월 신청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전통무술-태권도(traditional martial art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Taekwon-Do)’는 2026년 11월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 평가기구에서 대표목록 등재 권고를 받았다. 최종 등재 여부는 11월 30일부터 12월 5일까지 중국 샤먼에서 열리는 제21차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에서 결정된다.
대한민국은 2026년 3월 31일 ‘태권도: 한국의 도장 공동체 수련문화(A Dojang-centered Korean Training Tradition :Taekwondo)’를 유네스코에 신청했다. 북한 신청보다 약 2년 늦다. 북한은 전통무술로서의 태권도를 앞세웠고, 한국은 도장에서 이어지는 수련과 교육, 사범과 수련생의 관계, 세대 간 전승을 신청 내용의 중심에 뒀다.
2018년 평양 합의 이후 남북 태권도계의 접촉은 계속됐다. KOREA태권도유네스코추진단에 따르면 최재춘 추진단장은 2022년 7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리용선 ITF 총재를 만나 공동등재 방안을 논의했다. 추진단은 당시 공동등재 추진 방향과 명칭 등을 협의했다고 설명해 왔다.
해당 만남은 태권도계와 국제단체 사이에서 진행된 접촉이었다. 남북 정부가 유네스코 공동신청에 공식 합의한 것은 아니었다. 정부는 이후 공동등재를 추진하려면 남북 당국의 공식 동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2023년에도 추진단과 북측 사이의 연락이 이어졌다. 추진단은 불가리아 태권도 관계자와 북측 외교 경로를 통해 남북 공동등재 의사를 전달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평양에 관련 문서를 보냈다는 경과도 추진단 측 자료에 포함돼 있다. 문서 전달 시점과 북측의 공식 접수 여부는 공개 자료만으로 단정하기 어렵다.
2023년 12월에는 2018년 씨름과 같은 방식이 다시 거론됐다. 추진단은 리용선 총재 측이 남과 북이 각각 신청서를 낸 뒤 유네스코 심의 과정에서 공동등재로 묶는 방안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씨름은 2018년 남과 북이 각각 제출한 신청서를 유네스코 정부간위원회가 함께 심의해 공동등재한 전례다. 남북의 신청서를 ‘Traditional Korean wrestling(Ssirum/Ssireum)’이라는 하나의 유산으로 올렸다. 태권도계가 씨름의 방식을 여러 차례 언급한 배경이다.
북한은 2024년 3월 신청서를 먼저 냈다. 유네스코는 북한의 신청 건을 2026년 대표목록 심사 대상으로 올렸고, 올해 평가기구의 등재 권고까지 이어졌다.
대한민국의 신청은 2024년에 곧바로 이어지지 않았다. 추진단은 북한이 먼저 신청한 뒤부터 정부에 한국도 신청서를 서둘러 제출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요구했다고 밝혔다. 남북이 각각 신청한 뒤 씨름처럼 공동등재를 추진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정부는 국내 신청 후보 선정과 신청서 작성, 관계 기관 협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공동등재에는 북한 당국의 공식 의사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추진단이 북측 태권도 인사들과 접촉해 전달받은 입장과 정부가 요구한 공식 절차 사이에 차이가 있었다.
2024년 7월 오스트리아 빈에서도 관련 접촉이 있었다. 추진단 측은 리용선 총재가 한국도 빠르게 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2025년 10월 이탈리아 예슬로에서 열린 ITF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기간에도 북측 관계자들과의 논의가 이어졌다는 것이 추진단 측 설명이다. 리용선 총재가 한국이 신청하면 공동등재를 계속 추진할 수 있다는 취지의 뜻을 전달했다고 한다. 해당 내용을 담은 남북 공동문서나 ITF 공식 의결문은 공개되지 않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26년 3월 31일 신청서를 제출했다. 신청 명칭에 ‘도장 공동체 수련문화’를 넣었다. 태권도의 올림픽 성적이나 국제경기 기록보다 한국 사회에서 태권도가 어떻게 배우고 전해졌는지를 문화유산의 중심에 놓았다.
도장에서 사범은 수련생에게 기본동작과 품새, 겨루기를 가르친다. 수련생은 승급과 승단을 거치고, 오래 수련한 사람은 후배를 돕거나 다시 지도자가 된다. 차렷과 경례, 반복 수련, 승급과 승단, 사범과 수련생의 관계도 한국이 유네스코에 제출한 전승 체계에 포함됐다.
해외 태권도 보급도 도장을 중심으로 이어졌다. 한국인 사범들이 해외에 도장을 세우고 현지 수련생을 가르쳤으며, 수련생 가운데 일부는 다시 현지 지도자로 성장했다. 국제대회와 올림픽이 태권도를 세계적인 경기종목으로 넓혔다면, 각국 도장은 태권도 수련을 일상에서 이어온 기반이었다.
북한과 대한민국의 신청 내용은 같은 태권도를 서로 다르게 설명한다. 북한은 ‘전통무술’을 신청 명칭에 넣었고, 대한민국은 ‘도장 공동체 수련문화’를 앞세웠다. 북한 신청 건이 샤먼에서 최종 승인되면 북한의 명칭과 설명이 유네스코 대표목록에 먼저 기록된다.
북한이 먼저 등재된다고 태권도에 대한 독점적 권리가 북한에 생기는 것은 아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은 특정 문화의 기원이나 소유권을 판정하는 제도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태권도 역사와 세계태권도연맹을 중심으로 한 국제경기 체계도 북한의 유네스코 등재 여부와 별도로 유지된다.
남북이 같은 문화적 뿌리를 가진 유산을 각각 등재한 전례도 있다. 아리랑과 김치문화가 대표적이다. 씨름은 남북 공동등재로 이름을 올렸다.
북한의 선등재가 갖는 무게는 국제 기록에서 생긴다. 북한 신청안이 승인되면 유네스코 대표목록에는 북한이 제출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전통무술-태권도’가 먼저 올라간다. 대한민국이 신청한 도장 공동체 수련문화는 이후 별도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
대한민국 정부도 올해 신청 이후 공동등재를 위한 외교 절차에 들어갔다. 국가유산청은 4월 유네스코 사무총장 앞으로 공동등재 관련 공식 서한을 보냈고, 통일부는 6월 별도의 서한을 발송했다. 외교부와 주유네스코 대한민국대표부도 전달 과정에 참여했다.
북한 신청 건은 이미 2026년 심사 일정에 올라간 뒤였다. 대한민국 신청서는 올해 3월 제출됐고, 북한 신청안은 11월 평가기구의 등재 권고까지 받았다.
남북관계 경색은 공동등재 협의에도 영향을 미쳤다. 공동등재에는 남북 양측의 동의가 필요하고, 북한이 먼저 등재된 뒤 대한민국이 참여하는 확장등재에도 북측과의 협의가 필요하다.
국가유산청은 현재 남북관계를 고려할 때 당장 공동등재를 추진하기 쉽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북한 신청안이 먼저 등재될 경우 대한민국 태권도의 단독등재와 향후 확장등재를 함께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2018년 평양 합의 이후 이어진 8년의 기록도 남아 있다. 조정원 WT 총재와 리용선 ITF 총재가 공동등재 협력에 서명했고, 추진단은 2022년부터 북측 태권도 관계자들과 접촉을 이어왔다. 북한은 2024년 신청서를 냈고 대한민국은 2026년 신청했다.
약 2년의 신청 시차를 두고 추진단과 정부의 설명은 엇갈린다. 추진단은 2024년부터 씨름과 같은 방식의 신속한 신청을 거듭 요구했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남북 당국의 공식 동의와 국내 후보 선정, 신청서 작성 절차가 필요했다고 설명해 왔다.
북한보다 대한민국의 신청이 늦었던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북한 신청 건은 11월 30일 샤먼에서 최종 심의에 들어가지만 대한민국 신청 건은 앞으로 별도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
KOREA태권도유네스코추진단은 정부 대응을 한 단계 높여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국무총리실을 중심으로 통일부와 외교부, 문화체육관광부, 국가유산청, 주요 태권도 기관과 추진단이 참여하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샤먼 심의와 후속 등재 절차를 함께 다뤄야 한다는 주장이다.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은 추진단이 정부에 제안한 방안이다. 정부가 설치를 확정한 기구는 아니다.
샤먼 이후 대한민국이 준비해야 할 자료도 적지 않다. 해외에서 태권도를 보급한 한국인 사범들의 활동, 각국에 설립된 도장, 승급과 승단을 거친 수련생, 현지 지도자 배출 과정, 국기원과 세계태권도연맹의 제도화, 세계선수권대회와 올림픽을 통한 국제 확산의 기록을 체계적으로 모을 필요가 있다.
국내 기록도 중요하다. 전국의 도장에서 이어진 수련 방식과 사범 교육, 승품·승단 체계, 어린 수련생에서 지도자로 이어지는 과정은 대한민국이 신청한 ‘도장 공동체 수련문화’를 설명하는 근거가 된다.
국기원과 세계태권도연맹, 대한태권도협회, 태권도진흥재단, 대학과 연구기관, 해외 태권도 단체가 보유한 기록은 기관별로 흩어져 있다. 대한민국이 유네스코 심사에서 도장 공동체의 전승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려면 국내외 자료를 함께 정리해야 한다.
11월 30일 중국 샤먼에서는 북한 신청 건의 최종 심의가 시작된다. 2018년 평양에서 WT와 ITF가 공동등재 협력에 서명한 지 8년 만이다.
북한 신청안이 승인되면 대한민국은 이미 제출한 ‘태권도: 한국의 도장 공동체 수련문화’를 토대로 단독등재 절차를 이어갈 수 있다. 남북 협의가 재개되면 공동등재 또는 확장등재를 다시 추진하는 길도 남아 있다.
샤먼 회의에서 결정되는 것은 북한 신청 건이다. 대한민국 태권도의 유네스코 절차까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의 심사에서 대한민국이 제시해야 할 내용은 한국 사회에서 태권도가 어떻게 수련되고 전승됐으며, 세계 각국의 도장과 사범을 통해 어떻게 확산됐는지를 뒷받침하는 기록이다.
2018년 평양 합의 이후 8년 동안 남북 태권도계의 접촉과 북한의 선행 신청, 대한민국의 신청이 차례로 이어졌다. 11월 말 샤먼에서는 북한 신청 건의 결과가 나온다. 대한민국은 이미 제출한 신청서를 바탕으로 도장 수련문화와 세계화의 기록을 정리하는 후속 절차를 이어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