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덩골정원①] 양평 산자락에 세운 16개 기둥, 건축과 자연의 새로운 관계

칠레 건축가 페소 본 에릭사우센이 설계한 위버하우스…10m 콘크리트 기둥과 세 층의 공간, 정원의 지형과 시선을 바꾼 건축적 실험

2026-11-09     최유식 기자

[KtN 최유식기자]경기도 양평의 산자락에 높이 10m의 콘크리트 기둥 16개가 솟아 있다. 기둥들은 넓고 평평한 구조물 위에 일정한 간격으로 서 있고, 아래쪽에는 산의 경사를 따라 공간이 펼쳐진다. 연한 녹색을 띤 콘크리트와 주변 숲의 색채가 이어지지만, 수직으로 세운 거대한 기둥과 수평으로 뻗은 바닥은 산지의 자연스러운 굴곡과 뚜렷하게 대비된다. 메덩골정원 현대정원의 위버하우스(Über House)다.

칠레 건축 스튜디오 페소 본 에릭사우센(Pezo von Ellrichshausen)이 설계한 위버하우스는 정원에서 가장 높은 지점에 자리한다. 16개의 직사각형 기둥과 두꺼운 콘크리트 바닥판을 중심으로 구성됐으며, 아래쪽에는 경사진 지형을 활용한 공간을 두고 상부에서는 정원과 주변 산지를 바라볼 수 있도록 했다. 독립된 건축물이면서 정원의 동선과 전망을 연결하는 시설이다.

메덩골정원은 2012년 시작된 장기 조성사업으로, 2025년 9월 한국정원을 개원한 데 이어 현대정원을 공개했다. 한국의 전통적인 정원문화와 동서양 철학, 근현대사를 서로 다른 공간으로 구성했다. 현대정원에는 니체와 플라톤, 붓다 등 사상가들의 철학을 바탕으로 한 건축물과 산책로가 들어섰다.

위버하우스는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위버멘슈(Übermensch·초인) 개념에서 이름을 가져왔다. 그러나 철학적 명칭과 건물의 형태를 곧바로 동일한 의미로 해석하기보다, 콘크리트 기둥의 배열과 지형을 활용한 공간 구조, 건축물 안팎에서 달라지는 시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양평 메덩골정원 위버하우스의 전경. 넓은 콘크리트 구조물 위에 직사각형 기둥 16개가 일정한 간격으로 서 있다. 흑백으로 촬영된 건축물의 수평·수직 구조가 주변 산림의 불규칙한 형태와 대비된다.사진=Pezo von Ellrichshausen·Médongaule Garden,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페소 본 에릭사우센은 건축가 마우리시오 페소(Mauricio Pezo)와 소피아 본 에릭사우센(Sofía von Ellrichshausen)이 2002년 설립한 건축·미술 스튜디오다. 칠레 남부를 기반으로 활동하며 기둥과 벽, 바닥판 등 기본적인 건축 요소의 반복과 비례를 통해 공간을 구성해 왔다. 복잡한 장식보다 단순한 기하학적 구조를 사용하면서 건축물이 놓이는 지형과 주변 환경의 관계를 탐구하는 작업으로 알려져 있다.

위버하우스에서도 기둥의 반복이 전체 형태를 결정한다. 기둥은 건축물을 지탱하는 구조 부재이면서 공간을 구분하는 경계가 된다. 일반적인 건축물에서는 벽으로 내부와 외부를 나누지만, 위버하우스에서는 두꺼운 기둥 사이로 시선이 통과하고 사람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이 형성된다.

기둥의 간격과 두께는 건축물을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다른 비례를 만든다. 정면에서는 일정한 간격으로 배열된 수직 구조가 강조되고, 비스듬히 바라보면 기둥들이 겹치면서 시선이 통과하는 공간과 가려지는 공간이 달라진다. 기둥의 반복은 건물의 외형을 이루는 동시에 이용자가 주변 풍경을 바라보는 방향에도 영향을 준다.

건물 전체는 세 개의 공간 층위로 구성됐다. 아래쪽은 기존 지형의 경사를 따르며 낮은 계곡 방향으로 열린 야외극장 형태를 갖췄다. 중간에는 두꺼운 바닥판 아래 식사와 모임을 위한 공간을 마련했고, 대각선 방향으로 서로 마주하는 모서리에 테라스를 배치했다. 가장 높은 부분에서는 10m 높이의 기둥 사이로 정원과 주변 산지를 여러 방향에서 바라볼 수 있다.

세 공간은 같은 구조물 안에 있지만 자연을 접하는 방식이 다르다. 아래쪽에서는 경사진 땅과 계곡 방향의 지형이 공간을 구성하고, 중간에서는 기둥과 바닥판이 사람의 활동을 수용한다. 상부에서는 건축물의 수평면이 전망을 위한 바닥이 되고, 높이 솟은 기둥들이 풍경을 구획한다.

평평한 대지를 새로 만드는 대신 경사면을 공간 구성에 활용한 점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아래쪽의 높낮이 차이를 건물의 구조와 연결하면서 경사진 땅에 건축물을 배치했다. 다만 자연 지형을 설계에 반영했다는 사실과 건설 과정에서 지형이나 생태환경의 변화가 없었다는 판단은 구별된다. 대규모 콘크리트 구조물을 설치하려면 기초와 구조물의 하중, 배수와 접근 동선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연한 녹색 콘크리트로 완성된 위버하우스. 수직 기둥과 수평 바닥판 아래로 경사진 지형을 따라 공간이 이어진다. 건축물 뒤편의 숲과 콘크리트의 색채가 가까운 반면, 직선적인 구조는 주변 산세와 뚜렷한 차이를 이룬다.사진=Pezo von Ellrichshausen·Médongaule Garden,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버하우스는 철근콘크리트를 주요 구조 재료로 사용했다. 외부에는 옅은 녹색을 적용하고, 내부 마감에는 짙은 색상의 참나무와 테라초(terrazzo)를 사용했다. 무게감 있는 콘크리트와 어두운 내부 마감이 결합하면서 개방된 외부 공간과 내부의 분위기를 구분한다.

콘크리트는 자연에서 발견되는 나무나 바위와 달리 사람이 형태를 정하고 반복적으로 제작할 수 있는 재료다. 기둥의 굵기와 높이, 바닥판의 두께를 일정하게 설계할 수 있고, 넓은 수평면과 높은 수직 구조를 하나의 건축물로 결합할 수 있다.

산지에 녹색 콘크리트를 사용한 선택은 색채와 구조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게 한다. 녹색은 주변 식생과 시각적인 연속성을 만들지만, 거대한 기둥과 두꺼운 바닥판은 인공적인 구조를 감추지 않는다. 자연의 색을 차용하면서 건축물의 기하학적 형태는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건축과 자연의 관계를 평가할 때 색채의 조화와 실제 공간적 관계를 구별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녹색으로 마감한 건축물이 주변 식물과 비슷한 색을 가졌다고 해서 산지와 동일한 환경적 성격을 갖는 것은 아니다. 건축물은 일정한 면적을 점유하고 사람의 이동을 유도하며, 토지의 높낮이와 빛이 들어오는 방향에도 영향을 미친다.

위버하우스의 건축적 특징은 자연을 배경으로 물러서는 데보다 자연을 바라보는 새로운 위치를 만드는 데 있다. 건물의 상부에서는 기존 산책로보다 높은 곳에서 정원 전체를 바라볼 수 있고, 기둥 사이로 나뉜 풍경은 관찰자의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

산책로에서는 나무와 바위, 식물이 가까운 거리에서 시야에 들어온다. 위버하우스의 상부에서는 넓은 정원과 주변 산의 윤곽을 함께 볼 수 있다. 같은 자연환경이지만 이동하는 사람의 높이와 시선에 따라 경험하는 범위가 달라지는 것이다.

높은 기둥과 넓은 바닥판은 전망을 확보하는 동시에 건축물 자체의 존재감을 강조한다. 숲 가장자리에 놓인 구조물의 규모와 형태는 주변 산림과 쉽게 구별된다. 자연을 조망하기 위해 마련한 건축물이 정원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인공 구조물 가운데 하나가 되는 관계다.

위버하우스 아래쪽에 조성된 식재 공간. 연한 녹색 콘크리트 기둥과 두꺼운 바닥판 앞에 키가 다른 초본류와 관목이 자라고 있다. 규칙적인 건축 구조와 높낮이가 다른 식물의 형태가 함께 드러난다.사진=Pezo von Ellrichshausen·Médongaule Garden,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메덩골 현대정원의 조경은 프랑스 조경가 기욤 고스 드 고르(Guillaume Gosse de Gorre)가 참여해 구성했다. 한국 조경가 이재연도 한국정원과 현대정원의 조경 작업에 관여했다. 건축과 조경이 서로 다른 전문 분야의 작업으로 진행된 만큼, 건물과 식재가 만나는 부분에서는 공간의 이용 방식과 식물의 생육 환경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위버하우스 앞쪽에는 초본류와 관목이 자라고 있다. 높이 솟은 콘크리트 기둥 아래로 식물의 잎과 줄기가 서로 다른 높이를 이루며 퍼져 있다. 일정한 규격으로 제작된 건축물과 생장에 따라 형태가 달라지는 식물이 가까운 거리에 놓였다.

식물은 계절마다 잎의 크기와 색, 높이가 달라진다. 같은 장소에서도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에 따라 건축물과 식생의 비율이 다르게 인식될 수 있다. 건축물이 정해진 형태를 유지하는 동안 주변 식물은 성장과 휴면을 반복하며 공간의 모습을 바꾼다.

건축 설계에서 주변 자연을 고려한다는 것은 건물의 색이나 형태를 결정하는 일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식물이 자라는 데 필요한 빛과 물, 뿌리 공간을 확보하고 사람이 이동하는 경로와 식재 공간이 충돌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구조물의 그림자가 생기는 범위와 건물 주변에 모이는 빗물도 조경 관리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위버하우스처럼 규모가 큰 콘크리트 건축물은 시공 단계에서 상당한 양의 자재를 사용한다. 철근과 시멘트의 생산에는 에너지가 필요하고, 건축물의 규모가 커질수록 자재의 생산·운송과 시공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부담도 고려해야 한다. 자연 속에 세운 건축물의 지속가능성은 외관의 색채보다 시공 과정과 유지관리, 장기간의 사용 방식까지 함께 살펴야 평가할 수 있다.

건물의 용도에서도 자연과 건축의 관계가 드러난다. 위버하우스는 정원을 내려다보는 전망 공간인 동시에 식사와 모임을 위한 시설이다. 지하에는 조리시설을 배치하고 중간층에는 식사와 행사에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현대정원의 철학적 구상과 식음·행사 시설로서의 기능이 하나의 건물 안에 결합돼 있다.

건축물이 여러 용도를 수용하도록 설계됐다는 점은 공간의 운영과도 관련된다. 상부 전망 공간에서 자연을 바라보는 활동과 중간층에서 식사하거나 모임을 갖는 활동은 체류 시간과 이용 목적이 다르다. 정원 전체를 조망하는 건축적 경험과 식음시설 이용이 같은 건물 안에서 이뤄지도록 계획한 것이다.

건축물의 가치는 설계자의 의도뿐 아니라 완공 이후 사람들이 실제로 공간을 사용하는 방식에서도 형성된다. 전망을 위해 마련한 장소가 얼마나 개방적으로 운영되는지, 식음시설과 일반 관람 동선이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따라 방문자의 경험이 달라질 수 있다. 정원을 위한 건축이면서 상업적 운영을 수용하는 건물이라는 점에서 두 기능의 관계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메덩골 현대정원의 원형 건축 공간. 곡선을 이루는 두꺼운 벽과 계단식 구조가 하늘을 향해 열려 있다. 직선적인 위버하우스와 달리 곡면과 높낮이를 이용해 시야를 제한하고 외부의 빛을 내부로 받아들이는 구성이다.사진=Pezo von Ellrichshausen·Médongaule Garden,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메덩골 현대정원의 건축물은 위버하우스와 같은 직선적 구조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원형 벽과 계단, 좁은 통로, 기하학적 형태를 반복한 파빌리온이 정원 곳곳에 배치됐다. 건물의 크기와 형태, 내부로 들어가는 방식이 서로 다르며 이동 과정에서 시야가 열리고 닫히는 경험도 달라진다.

원형 건축 공간에서는 곡선 벽이 시선을 둘러싸고 계단의 높낮이가 몸의 위치를 바꾼다. 위버하우스에서는 높은 기둥 사이로 주변 산과 정원이 드러나지만, 원형 공간에서는 벽과 계단이 시야를 제한하면서 하늘과 빛의 변화에 주의를 집중하게 한다. 넓게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는 공간과 건축물 안쪽에 머무르는 공간이 서로 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현대정원에는 철학과 문학, 한국의 역사에서 가져온 이름과 형태를 적용한 건축물도 있다. 각각의 구조물은 독립된 공간으로 구성됐으며, 방문자는 산책로를 따라 이동하면서 서로 다른 형태와 재료를 접한다. 건축물이 하나의 거대한 건물로 연결되기보다 정원 안에 흩어진 개별 공간으로 존재하는 방식이다.

페소 본 에릭사우센이 참여할 당시 정원의 전체 조경 계획은 이미 상당 부분 마련돼 있었다. 건축 스튜디오는 개별 건축물을 설계했고, 건물 사이를 연결하는 동선과 식재는 조경 설계 영역에서 구성됐다. 건축가가 모든 공간을 처음부터 하나의 체계로 설계한 것이 아니라, 기존 정원 계획에 서로 다른 건축물을 더한 구조다.

공간의 통일성은 개별 건축물이 똑같은 외형을 갖는 방식보다 정원의 길과 지형을 따라 서로 다른 건물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형성된다. 한 건축물에서 다른 건축물로 이동하는 동안 식물과 바위, 경사와 숲이 이어지고, 건축은 중간중간 사람이 머물거나 시선을 바꾸는 장소가 된다.

자연을 일정한 질서로 다루는 전통적인 정원 설계와 비교해도 차이가 있다. 정원은 본래 사람의 의도에 따라 식물을 배치하고 길을 만들며 풍경을 구성하는 공간이다. 메덩골 현대정원에서는 조경뿐 아니라 콘크리트 건축물이 자연을 경험하는 위치와 방향을 적극적으로 조정한다.

위버하우스의 16개 기둥은 건축적으로 매우 강한 질서를 만든다. 반면 주변 산림과 식물은 일정한 간격이나 동일한 높이를 유지하지 않는다. 규칙적으로 반복된 기둥과 불규칙하게 자라는 식생이 같은 공간에 놓이면서 정원은 자연의 생장과 인공적인 설계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장소가 된다.

위버하우스라는 이름에는 니체의 철학이 반영돼 있지만, 건축물의 의미가 철학적 명칭만으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10m 높이의 기둥과 두꺼운 바닥판, 경사를 따라 이어지는 공간과 여러 방향으로 열린 전망은 이름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건축적 경험을 제공한다.

철학적 개념을 공간으로 구현하려는 시도에서 건축물이 갖는 독립적인 가치도 중요하다. 특정 사상을 설명하는 조형물에 머무르지 않고 구조와 비례, 재료와 빛, 사람의 이동을 통해 하나의 건축으로 성립해야 하기 때문이다. 위버하우스는 16개 기둥의 반복과 세 층의 공간 구성, 주변 지형과의 관계를 통해 평가할 수 있다.

메덩골정원은 14년에 걸쳐 한국정원과 현대정원을 조성했다. 현대정원에는 여러 사상가의 이름을 붙인 건축물과 산책로가 들어섰고, 위버하우스는 높은 위치에서 정원 전체를 바라보는 장소로 계획됐다. 자연과 철학을 결합하려는 구상은 건축의 규모와 배치, 조경의 구성과 운영 방식에 반영돼 있다.

정원에 세운 건축물의 문화적 가치는 독특한 외형이나 유명 건축가의 참여 이력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건축물이 주변 지형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사람에게 어떤 공간을 제공하며, 시간이 흐른 뒤에도 자연환경과 함께 유지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양평 산자락에 세워진 위버하우스의 16개 콘크리트 기둥은 계절과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정원의 풍경 속에서도 같은 형태를 유지한다. 기둥 사이로 보이는 식물과 산의 모습은 변하지만 건축물의 구조는 남는다. 메덩골정원의 건축은 자연을 바라보는 새로운 위치를 제공하는 동시에, 사람이 자연 속에 남긴 구조물이 어떤 가치와 책임을 가져야 하는지도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