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대한민국연극제 서울대회, 윤리의 무대를 다시 열다

고대 비극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안티고네: 그 이후의 세계〉. 사진=극단 이구아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고대 비극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안티고네: 그 이후의 세계〉. 사진=극단 이구아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임우경기자]2025년 대한민국연극제 서울대회는 단지 연극 창작의 기술적 완성도를 겨루는 무대가 아니다. 이번 대회는 각 지역 극단의 예술적 실험과 시대적 통찰이 만나는 집결지로, 4월 서울 곳곳의 무대를 통해 동시대의 인간성과 사회 윤리를 치열하게 탐색하는 작품들이 줄지어 올랐다.

그 중에서도 고대 비극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안티고네: 그 이후의 세계〉는 연극이 동시대에 던질 수 있는 윤리적 질문의 정점에 선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법, 윤리, 책임 사이의 전쟁 ― 고전의 재해석

기원전 5세기 소포클레스가 쓴 〈안티고네〉는 인간이 만든 법과 신이 부여한 윤리 사이의 충돌을 다룬 비극이다. 이번 공연은 제목에 ‘그 이후의 세계’를 덧붙이며, 단순한 고전의 재현을 넘어 현재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무대를 확장했다.

작품은 신의 법을 따르려는 안티고네와, 국가의 질서를 유지하려는 크레온의 충돌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러나 이 갈등은 단순한 선악의 대결이 아니다. 권위, 책임, 죽음, 윤리, 자율성… 그 모든 것이 무대 위에서 격돌하고, 그로 인해 관객은 질문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고대 비극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안티고네: 그 이후의 세계〉. 사진=극단 이구아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고대 비극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안티고네: 그 이후의 세계〉. 사진=극단 이구아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연출 정재호, 침묵하지 않는 연극의 윤리학

정재호 연출은 이번 무대를 통해 인간의 도덕적 선택과 국가적 법 사이의 비극적 간극을 극대화한다. 연출은 고전의 인물들에 현대적 복합성을 부여해, 선과 악의 이분법이 아닌 선택의 결과와 책임이라는 구조 속에서 인물들을 설계했다. “현대인이 감당해야 할 윤리의 무게를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무대는 사막을 닮은 메마른 공간으로 설정되어 있으며, 고요하지만 무거운 조명 연출과 정적인 군무로 인해 관객은 극 속 인물들과 함께 고립되고, 함께 침묵하지 못하게 만든다.

김명중 배우, 태베이사이아스 역으로 고통의 윤리를 구현하다

이번 작품에서 주목할 배우 중 한 명은 김명중이다. ‘태베이사이아스’ 역을 맡아 국가 권력의 내면을 지닌 인물로 등장하며, 크레온 체제 안에서의 윤리적 균열과 내적 갈등을 섬세하게 구현한다. 배우 김명중의 연기는 과장되지 않으면서도 깊은 고뇌의 흔적을 따라간다. 특히 크레온을 지지하던 위치에서 갈등과 회의, 절망으로 이행하는 내면적 전이 과정은 이번 작품의 정서적 무게 중심을 이루며, 극 전체의 윤리적 스펙트럼을 넓혀준다.

고대 비극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안티고네: 그 이후의 세계〉. 사진=극단 이구아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고대 비극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안티고네: 그 이후의 세계〉. 사진=극단 이구아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침묵과 선택, 오늘날 한국 사회를 비추다

〈안티고네: 그 이후의 세계〉는 극 중 인물들이 신념과 권력 사이에서 고통스럽게 선택하는 장면들을 통해, 우리 사회가 직면한 현실의 구조를 반사한다. 법을 지키는 것이 항상 정의인가, 침묵이 중립인가, 아니면 방조인가. 그 질문들은 비단 고대의 비극이 아니라, 지금의 대한민국에도 유효하다.

코러스 역시 인상적이다. 단일한 해설자 역할을 넘어 다양한 사회적 목소리를 병렬적으로 제시하며, 관객 스스로 판단을 유예하지 않도록 구조화된 장치다. 이는 민주사회에서 다중적 윤리가 교차하는 현실을 정밀하게 반영한다.

질문을 남기는 연극, 연극이 되살리는 질문

2025년 대한민국연극제 서울대회는 연극이 어떤 예술이어야 하는지를 다시 묻는다. 그리고 〈안티고네: 그 이후의 세계〉는 그 질문에 가장 정직한 방식으로 응답한다.

윤리와 법, 신념과 책임의 충돌이 일상화된 이 시대, 연극은 오락이나 형식이 아닌, 사유의 장(場)으로 돌아와야 한다. 이 작품은 그 길 위에서 관객과 다시 눈을 마주친다. 그리고 이렇게 속삭인다. “선택하라, 판단하라, 침묵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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