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묘, 회화의 윤리를 되묻다
[KtN 임민정기자] 2025년 4월 설미재미술관에서 열린 윤시현 초대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점으로…》는 시각적 자극과 디지털 이미지 과잉 속에서 주목할 만한 회화적 조형 실험을 선보인다. 윤 작가는 점이라는 단위로부터 출발해 리듬, 밀도, 구조를 중첩시키며 감각과 존재의 층위를 직조하고, 이를 통해 현대 회화의 본질을 회복하고자 한다. 본 기획은 윤시현 작가의 회화적 문법을 전체적으로 분석하고, 그것이 동시대 미술 사조 및 트렌드와 어떻게 교차하고 단절되는지를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점에서 리듬으로, 감각에서 구조로: 윤시현 회화의 조형 언어
윤 작가의 작업은 일관되게 점을 중심 축으로 한다. 점은 시각적 장식이 아니라 조형적 근원이며, 감각의 입자이자 시간의 단위다. 각 점은 반복되고 진동하며, 곡선과 결을 이루어 면을 구성한다. 이를 통해 윤 작가는 단일한 형상이나 상징에 기대지 않고, 리듬과 밀도로 세계를 구축한다.
특히 《하늘과 바람과 별과 점으로》 연작은 곡선이 얽히고 중첩되는 형상 구조를 통해 화면 전체를 하나의 유기체처럼 구현한다. 표면 아래는 수천 개의 점들이 붓질과 중첩의 결을 따라 조용히 진동하며, 회화의 공간을 하나의 ‘리듬 구조’로 전환시킨다.
이러한 회화적 방식은 시각적 내러티브보다 존재론적 감각에 집중하는 태도이며, 감상자에게는 정지된 이미지가 아닌 축적된 시간과 감각을 경험하도록 유도한다.
색과 원, 감각의 우주적 환기
후반부의 원형 회화 연작은 윤 작가가 감각을 우주적 차원으로 확장시키는 조형적 전략을 보여준다. 원은 단순한 기하학이 아니라 에너지의 반복과 파장을 담는 그릇으로 작동한다. 중심에서 바깥으로 확산되거나, 외곽에서 중심으로 수렴하는 점들은 각각의 작품에서 다른 진폭과 감각을 낳는다.
청색의 밀도, 다색의 분산성, 적색의 응축은 감정이 아닌 ‘에너지의 공간적 배치’로서의 색채 구성을 보여주며, 윤 작가는 이를 통해 점과 색, 구조를 하나의 파동적 회화로 엮어낸다.
청색 벽면에 설치된 일부 회화는 시선의 방향성과 벽면의 색채까지 고려한 설치적 구성으로, 평면 회화가 아닌 감각적 환경으로서의 회화를 실현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를 드러낸다.
현대미술 사조와의 비교: 추상 이후의 조형, 회화 이후의 회화
윤 작가의 작업은 겉으로 보기에는 추상표현주의 이후 계열의 ‘점묘적 추상’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근본은 회화의 시각적 자율성보다는 존재론적 구조에 더 가깝다. 이는 1960년대 미니멀리즘의 반복성과 70년대 이후 프로세스 아트의 행위성, 2000년대 이후의 감각적 데이터화 미학을 모두 넘어서려는 시도이다.
특히 디지털 기반의 이미지 조작이 일상화된 이후, 점묘는 ‘느림의 미학’이자 ‘감각의 물성화’로 재해석될 수 있다. 윤 작가의 점묘는 단순히 과거로 회귀하는 회화가 아니라, 회화 이후의 회화(post-painting)로 읽을 수 있으며, 매체 내부의 언어를 스스로 해체하고 다시 구축하는 과정에 가깝다.
동시대 미술에서 회화는 자주 개념적이거나 정치적 매체로 기능한다. 그러나 윤시현 작가는 회화를 다시 '감각의 구조'로 환원시키며, 물성-반복-리듬이라는 비물질적 질서를 통해 감각의 시간성을 복원한다.
점묘, 회화의 윤리를 되묻다
윤 작가의 회화는 느리다. 정확히 말해, ‘느려야만 가능한 회화’다. 디지털 이미지의 평면성과 속도성이 지배하는 시각 문화 환경에서, 점을 하나하나 쌓아가는 윤 작가의 작업은 회화의 윤리를 다시 묻는 행위다.
이는 회화의 복원이라기보다는 ‘회화의 재정의’에 가깝다. 점이라는 단위는 감각과 시간, 존재와 기억의 층위를 복합적으로 감싼다. 윤 작가는 그 점들을 통해 리듬을 만들고, 감각을 묶고, 구조를 이룬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통해 회화가 어떻게 존재론적 사유의 장이 될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증명하고 있다.
KtN 리포트
윤시현 작가는 점과 반복, 구조와 색을 통해 회화의 본질을 탐구한다. 그 회화는 단지 추상이 아니며, 시각적 쾌감을 넘어 존재와 시간, 감각의 밀도를 응축한 구조다. 윤 작가의 점묘는 동시대 미술 안에서 느림과 감각, 물성과 리듬이라는 조형적 윤리를 회복하려는 고요한 선언이자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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