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사우스의 성패를 가르는 보이지 않는 장벽

[KtN 증권부] 사진=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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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임우경기자] 글로벌 사우스로 향하는 K-뷰티 전략에서 가장 자주 부딪히는 벽은 제품이 아니다. 제도다. 인증과 규제, 등록과 통관이라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시장 진입의 속도를 결정한다. 이 장벽은 개별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넘기 어렵다. 글로벌 사우스 전략이 반복해서 좌초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동남아와 중남미, 중동은 서로 다른 시장처럼 보이지만 제도라는 측면에서는 공통된 특징을 가진다. 국가별 규칙이 분절돼 있고, 인증과 등록이 시장 접근의 전제 조건으로 작동한다. 이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리 경쟁력 있는 제품이라도 출발선에 서지 못한다. 글로벌 사우스는 자유로운 경쟁의 장이 아니라, 제도를 통과한 기업만 경쟁할 수 있는 시장이다.

중동과 인도네시아에서 요구되는 할랄 인증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할랄은 종교적 기준이자 사회적 신뢰의 장치다. 이 인증을 받았다는 사실은 제품의 안전성과 정당성을 보증하는 신호로 작동한다. 반대로 인증이 없으면 시장 접근 자체가 제한된다. 문제는 인증 과정이 길고 비용 부담이 크다는 점이다. 준비 기간이 길어질수록 중소기업과 인디브랜드는 시장 진입을 포기하게 된다.

APEC 2025 대한민국에서 K-Food ZONE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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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랄 인증은 단순한 절차가 아니다. 생산 공정과 원료 관리, 유통 과정 전반을 점검받는 구조다. 이 과정은 경험이 없는 기업에게 높은 학습 비용을 요구한다. 대기업과 일부 중견기업은 이를 감당할 수 있지만, 산업의 다양성을 구성하는 다수의 기업에게는 진입 장벽으로 작용한다. 이 장벽이 방치될 경우 글로벌 사우스는 일부 기업만의 시장으로 고착된다.

중남미의 규제 구조도 다르지 않다. 멕시코와 브라질을 비롯한 주요 국가는 국가별 개별 등록 제도를 운영한다. 한 국가에서 등록을 마쳤다고 해서 인접 국가로 확장되는 구조가 아니다. 같은 제품이라도 다시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시간과 비용은 누적된다. 준비가 충분하지 않으면 비용 부담만 커진 채 철수하는 사례가 반복된다.

문제는 정보의 비대칭이다. 규제와 등록 요건은 수시로 바뀌고, 현지 언어로 관리되는 경우가 많다. 개별 기업이 이 정보를 상시적으로 파악하기는 어렵다. 특히 중소기업과 인디브랜드는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지조차 알기 힘든 상황에 놓인다. 이 구조는 시장 접근의 문턱을 더욱 높인다.

통관과 관세 역시 중요한 변수다. 동남아의 오프라인 유통 채널은 높은 마진 구조를 유지하고 있고, 중남미는 관세와 부가세가 가격을 끌어올린다. 이 비용은 최종 소비자가격에 반영된다. 가성비를 강점으로 내세워 온 K-뷰티에게 이 구조는 치명적이다. 제품 경쟁력이 제도 비용에 의해 상쇄되는 순간, 브랜드는 포지셔닝의 혼란을 겪게 된다.

이 지점에서 글로벌 사우스 전략은 개별 기업의 책임을 넘어 산업 차원의 문제로 전환된다. 인증과 규제, 통관과 세제는 기업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다. 이 문제를 개별 기업의 역량 부족으로 해석하는 관점은 현실과 맞지 않는다. 구조적 장벽은 구조적 해법을 요구한다.

산업 현장에서는 이 문제를 세 가지 차원에서 인식한다. 첫째, 산업 내부의 협업이다. 대기업과 중견기업, 인디브랜드, 제조사가 경쟁과 협력을 병행하며 경험과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 둘째, 제도와 정책의 결합이다. 인증 비용과 기간을 줄이고, 국가 간 제도 협상을 병행하지 않으면 기업의 부담은 줄어들지 않는다. 셋째, 현지 네트워크의 구축이다.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 없이 규제와 유통을 동시에 관리하기는 어렵다.

이 세 요소가 결합되지 않으면 글로벌 사우스 전략은 단기 성과에 머문다. 전시성 수출과 일회성 진출은 반복되지만, 시장 정착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소모되는 비용과 시간은 산업 전체의 손실로 돌아온다.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같은 실패는 계속 반복된다.

정책의 역할은 이 지점에서 분명해진다. 인증 비용 지원과 기간 단축은 단순한 기업 지원이 아니다. 산업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일이다. 규제 정보의 체계화와 실시간 제공 역시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기업이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일은 산업 정책의 영역이다.

글로벌 사우스는 경쟁이 치열한 시장이다. 그러나 그 경쟁은 공정하지 않다. 출발선에 서기까지의 비용과 시간이 이미 기업의 운명을 가른다. 이 현실을 외면한 채 성과만을 요구하는 전략은 지속될 수 없다.

K-뷰티가 글로벌 사우스에서 구조적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제도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산업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할랄과 규제는 넘어야 할 장애물이 아니라, 함께 설계해야 할 구조다. 이 구조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K-뷰티의 다음 10년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전개된다.

글로벌 사우스는 묻고 있다. K-뷰티는 제품 이후의 세계를 준비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