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표 수입 후 국내서 ‘박스갈이’ 유통…오픈마켓 계정 쪼개며 단속 피해
인천공항세관, 밀수 총책 구속 송치…기후부, 해당 제품 긴급 회수명령
[KtN 임우경기자] 인천공항세관은 해외 유명브랜드의 상표를 도용한 가짜 공기청정기 필터 등 6만 9,000점(정품시가 70억 원 상당)을 중국에서 불법 수입해 유통한 밀수조직 총책 A씨를 관세법 및 상표법 위반 혐의로 구속해 검찰에 송치했다. 국내 온라인 유통을 담당한 공범 3명은 불구속 송치되었으며, 중국에 체류 중인 공급책 B씨에 대해서는 지명수배가 내려졌다. 구속된 총책 A씨를 비롯한 피의자들은 인천지방법원에 기소되어 재판을 앞두고 있다. 적발된 위조 필터를 수거해 성분을 분석한 결과, 과거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유발해 국내에서 사용이 전면 금지된 치명적인 유해 물질이 다량 검출되어 정부가 긴급 회수 및 유통 차단에 나섰다.
인천공항세관의 수사 결과, 이들 조직은 세관의 철저한 관세 검사망을 피하기 위해 치밀한 수법을 동원했다. 중국에서 제품을 들여올 당시에는 상표가 전혀 인쇄되지 않은 무지 포장 박스에 가짜 필터를 담아 밀수했다. 수입 과정에서도 단일 명의를 사용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세관의 의심을 분산시키기 위해 다수의 개인과 사업자 명의를 무단 도용하거나 대여받았다. 이들은 개인 자가사용 물품이나 무역용 상용 견품인 것처럼 속여 국내로 반입하는 방식을 취했다.
국내로 반입된 무상표 제품들은 외곽에 위치한 이들의 비밀 창고로 입고됐다. 이곳에서 미리 인쇄해 둔 해외 유명브랜드의 가짜 정품 포장 박스로 내용물을 다시 포장하는 속칭 ‘박스갈이’ 작업이 조직적으로 이뤄졌다. 육안으로는 진품과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정교하게 제작된 패키지와 로고가 부착된 위조품들은 그대로 국내 대형 온라인 오픈마켓으로 흘러 들어갔다.
온라인 유통 과정에서는 소비자들의 가격 심리를 교묘하게 파고드는 마케팅 기법이 동원됐다. 통상 위조 상품 유통업자들이 정품 대비 반값 이하의 파격적인 덤핑 가격을 내세우는 것과 달리, 이들은 정품 가격의 80%에서 90% 수준으로 판매 가격을 책정했다. 지나치게 가격이 저렴할 경우 소비자들이 오히려 가짜 제품으로 의심하고 구매를 꺼린다는 점을 노린 지능적인 역발상이었다. 30대 직장인과 주부들이 주로 이용하는 가격 비교 플랫폼에서 ‘기간 한정 특가’나 ‘스마트 스토어 단독 할인’ 등의 문구를 내세우자, 소비자들은 정품을 저렴하게 구매하는 것으로 오인해 지갑을 열었다.
이들은 단속 기관의 추적과 오픈마켓 자체 위조품 필터링 시스템을 무력화하기 위한 유통망 분산 전략도 병행했다.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쿠팡, 오픈마켓 등 국내 주요 이커머스 플랫폼에 수십 개의 가공 판매자 계정을 동시에 등록했다. 특정 계정에서 짝퉁 판매 행위가 신고되거나 적발되어 플랫폼 측으로부터 계정 정지 및 차단 조치를 받으면, 미리 준비해 둔 다른 판매자 계정을 즉각 활성화해 가짜 필터의 유통을 끊임없이 지속하는 대담함을 보였다.
정부와 수사당국이 이번 사건을 단순한 지식재산권 침해를 넘어선 중대 범죄로 규정한 결정적 계기는 제품 내부 성분의 치명적인 위험성 때문이다. 인천공항세관이 현장에서 압수한 가짜 필터 5개 브랜드 10종 모델을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KTC)에 의뢰해 안전확인대상생활화학제품 시험·검사를 실시한 결과, 총 3개 위조 모델에서 흡입 시 호흡기 체계와 피부, 눈 등에 심각한 자극과 손상을 유발하는 화학 물질이 검출됐다. 검출된 물질은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과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으로, 국내에서 가전 및 생활화학제품에 사용이 엄격히 금지된 성분이다. 공기청정기가 실내 공기를 흡입해 여과하는 과정에서 이 필터를 통과할 경우, 유해 물질이 미세한 입자 형태로 온 집안에 퍼져 입주민들이 이를 장기간 흡입하게 되는 심각한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유해 물질 검출 사실 확인 즉시 해당 가짜 필터 모델들에 대해 안전기준 위반 제품으로 규정하고 수입·판매금지 조치와 함께 시장에 이미 풀린 물량에 대한 긴급 회수명령을 내렸다. 정부는 통신판매중개업자들과 협조해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해당 제품을 구매한 이력이 있는 소비자들을 전수 추적하고 있으며, 실사용 중단 안내와 구체적인 폐기 절차를 통보하고 있다. 아울러 위조품 판매 페이지를 전면 차단하고 실시간 유통 모니터링 체계를 가동했다.
가전 업계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이커머스 유통 생태계 전반의 신뢰도가 타격을 입을까 우려하고 있다. 생활가전 제조사들은 정품 소모품 유통 채널을 강화하고 소비자가 직접 정품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보안 홀로그램 부착 등의 기술적 대책을 서두르고 있으나, 정품 가격에 부담을 느낀 소비자들이 여전히 온라인 유저 간 추천이나 최저가 유통 채널로 쏠리는 현상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오픈마켓 업계 역시 입점 판매자들의 상품 입고 경로를 전수 조사하기에는 인력과 시스템적 한계가 명확해, 위조품 유통의 온상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한 추가적인 인프라 투자 부담을 안게 됐다.
정부는 향후 부처 간 합동 공조 수사를 정례화해 민생 위협 물품의 국내 유입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방침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와 관세청은 국경 단계에서부터 공기청정기 필터를 포함한 생활화학제품 전반에 대한 성분 분석과 안전성 모니터링 검사 비율을 대폭 상향하기로 했다. 관세청 관계자는 위조 상품의 밀수와 유통 행위가 상표권 침해라는 경제 범죄를 넘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위해 행위인 만큼, 국경 통관 과정에서 불법 수입 징후를 발견하거나 의심스러운 유통 정황을 목격할 경우 세관 신고 채널을 통해 적극적으로 제보해 달라고 당부했다. 현재 검찰과 세관은 구속된 총책 A씨의 금융 계좌를 추적해 위조품 판매로 얻은 부당이득의 규모를 산정하고 있으며, 법원의 최종 판결 결과와 국내 유통망의 잔존 세력에 대한 후속 수사 방향에 시장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