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청·보라·갈색·주황의 흔적이 옅은 바탕을 가로지르는 2000년작
한지에서 부직포로 넓어진 재료 탐구…천연안료의 스밈이 빛과 상승의 리듬으로

[KtN 박준식기자]방혜자의 2000년작 ‘비상’에는 옅은 회백색과 미색의 바탕 위로 남청과 보라에 가까운 짙은 색이 여러 방향으로 흩어진다. 갈색과 주황빛은 그 사이를 파고들며 번지고, 밝은 바탕은 색과 색 사이에 넓은 여백을 남긴다. 날개의 구체적인 형상보다 안료가 퍼지고 갈라지고 다시 이어지는 흐름이 작품 전체에 상승과 확산의 감각을 만든다.

작품 전면에는 여러 색의 덩어리가 서로 다른 밀도로 놓여 있다. 짙은 남청과 보라는 왼쪽과 중앙, 오른쪽을 오가며 불규칙하게 이어지고, 그 주변에는 갈색과 황토빛, 주황빛이 짧고 가는 흔적으로 스민다. 색과 색 사이에 남은 밝은 부분은 각각의 덩어리를 분리하면서 동시에 시선이 이동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든다.

이 간격에서 작품의 호흡이 생긴다. 짙은 안료가 밀집한 곳에서는 무게가 깊어지고, 바탕이 넓게 드러나는 곳에서는 공기가 들어온다. 시선은 어두운 흔적을 따라 이동하다 다시 밝은 섬유의 영역으로 빠져나간다. 하나의 중심으로 수렴하는 구도보다 여러 지점에서 색이 생겨나고 사라지며 작품 전체로 흐름을 넓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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