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GK “작품 비판 넘어 창작자의 일상·생업 겨냥”…배우 자택 앞 집회까지 현실화
국민의힘 상영 중단·국감 출석·해외영화제 철회 요구, 민주당은 ‘영틀막’으로 맞대응
역사극은 사실 검증 피할 수 없어…정치도 작품 비판과 창작자 제재 사이 경계 지켜야

올해 최고의 영화 ...외신 기립박수 터졌다…허진호 신작 '암살자(들)' 토론토 발칵  사진=2026. 09.16. 하이브미디어코프(1974년 대한민국을 뒤흔든 영부인 저격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는 영화 '암살자(들)'이 치열한 추적전을 예고했다. [감독: 허진호 | 출연: 유해진, 박해일, 이민호 | 제작: (주)하이브미디어코프 | 제공/배급: (주)하이브미디어코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올해 최고의 영화 ...외신 기립박수 터졌다…허진호 신작 '암살자(들)' 토론토 발칵  사진=2026. 09.16. 하이브미디어코프(1974년 대한민국을 뒤흔든 영부인 저격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는 영화 '암살자(들)'이 치열한 추적전을 예고했다. [감독: 허진호 | 출연: 유해진, 박해일, 이민호 | 제작: (주)하이브미디어코프 | 제공/배급: (주)하이브미디어코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준식기자]한국영화감독조합(DGK)이 10월 4일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란에 입장을 냈다. 영화에 대한 혹평이나 역사적 해석의 비판을 막아달라는 내용은 아니었다. DGK가 문제 삼은 대목은 논쟁의 대상이 작품에서 사람으로 이동했다는 데 있었다. 영화의 내용과 창작자의 선택을 비판하던 목소리가 출연진의 일상과 생업을 겨냥하고, 다시는 비슷한 영화를 만들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요구로 번졌다는 것이다.

입장문이 발표되기 전 이미 영화 밖에서는 상당한 변화가 일어났다. 보수 성향 시민단체 신자유연대는 주연 배우 유해진의 서울 자택 앞 집회를 신고한 데 이어 10월 4일 실제 집회를 열었다. 유해진이 모델로 활동한 기업의 광고에도 항의가 이어졌다. 제작사는 출연진과 관객의 안전과 부담을 이유로 개봉 2주 차 무대인사와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참석, 야외무대인사를 취소했다. 배우 이민호가 참여할 예정이던 부산국제영화제 '액터스 하우스' 일정도 무산됐다.

영화는 극장에서 계속 상영됐지만 영화인과 관객이 직접 만나는 자리는 먼저 사라졌다. 국가기관이 상영을 금지한 것도 아니고 법원의 상영금지 결정이 내려진 것도 아니다. 정치적·사회적 압력이 커진 뒤 제작사가 안전과 부담을 고려해 공개 활동을 접었다. 법률상의 검열과는 다르지만 창작과 유통을 둘러싼 현실적인 위축효과는 이미 발생한 셈이다.

'암살자(들)' 논쟁의 출발점에는 분명 역사 문제가 있다. 영화는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식장에서 발생한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모티프로 삼았다. 당시 수사당국은 재일교포 문세광이 조총련을 통해 북한 측 지령을 받아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하려 했다고 발표했고, 문세광은 재판을 거쳐 같은 해 사형됐다. 영화는 실제 사건을 출발점으로 삼으면서 가상의 형사와 언론인을 통해 당시 총격을 둘러싼 의문과 배후를 추적한다.

영화가 제시한 상상력에는 당연히 비평이 따라올 수 있다. 실제 사망자가 발생했고 유족이 존재하는 사건을 다루면서 확인되지 않은 가능성을 강하게 암시했다면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어느 정도 분명하게 만들었는지 따져볼 수 있다. 영화적 상상이라는 이유만으로 역사적 사실에 관한 검증 책임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실존 사건을 다룬 작품은 허구의 자유를 갖는 동시에 관객에게 허구를 사실처럼 받아들이게 만들 가능성에 대한 책임도 함께 진다.

허진호 감독은 논란이 커진 뒤 박정희 전 대통령을 사건의 배후라고 생각해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제작진도 특정한 역사적 결론을 새롭게 확정하거나 기존의 사실을 부정하려는 목적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런 설명이 영화에 제기된 모든 비판을 해소하는 것은 아니다. 작품이 실제로 어떤 인상을 만들었는지, 역사적 기록과 영화적 상상이 어느 대목에서 갈라지는지는 비평을 통해 계속 따질 수 있다.

문화가 살아 있는 사회라면 원래 여기에서 논쟁이 깊어져야 한다. 당시 수사기록과 재판자료, 이후 제기된 의혹, 영화에서 새롭게 구성한 부분을 서로 대조하고 연출이 관객에게 어떤 해석을 유도했는지 살펴야 한다. 역사학자와 영화평론가, 당시 사건을 연구한 전문가가 자료를 놓고 다투는 과정도 필요하다. 작품에 문제가 있다면 더 많은 자료와 더 정교한 논증으로 반박할 수 있다.

정치가 본격적으로 개입하면서 논쟁의 언어는 달라졌다.

국민의힘에서는 영화 상영 중단과 불매 요구가 나왔고 허진호 감독 등을 국정감사에 출석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당 지도부와 의원들은 작품을 '역사 왜곡'으로 규정하며 공세를 이어갔다. 국민의힘은 싱가포르국제영화제에 '암살자(들)'의 개막작 선정을 철회해달라는 서한을 소속 의원 전원 명의로 보내는 방안까지 추진했다. 국책은행과 모태펀드의 투자 과정도 정치권의 조사 대상으로 올라왔다.

정치권이 역사영화를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뜻은 아니다. 정당과 국회의원도 표현의 자유를 갖고 있으며 역사적 사건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공개할 수 있다. 공적 자금이 들어갔다면 절차의 적정성을 검증하는 일 역시 국회의 영역이다. 문제가 되는 지점은 작품의 내용에 대한 반론과 작품의 유통·투자·창작 기회를 제한하라는 요구가 한 흐름으로 묶일 때다.

영화의 역사 해석이 틀렸다고 판단한다면 근거를 제시해 반박할 수 있다. 영화를 보지 말자고 시민에게 호소하는 행동도 정치적 표현의 범위에 들어간다. 그러나 상영 자체의 중단을 요구하고, 감독의 국회 출석을 압박하며, 해외 영화제의 편성까지 철회하도록 요구하기 시작하면 논쟁의 성격은 달라진다. 작품을 비판하는 데서 나아가 작품이 관객과 만나는 통로까지 정치가 개입해야 하는지라는 별도의 문제가 생긴다.

더불어민주당도 이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영틀막', '꼰대 정당'이라는 표현을 꺼냈다. 국민의힘의 상영 철회 요구와 민주당의 정치적 비판이 같은 성격이나 같은 수준의 영향력을 갖는다는 뜻은 아니다. 상영 중단과 해외 영화제 철회를 요구하는 행위는 문화의 실제 유통 경로에 영향을 미치려는 요구이고, 상대당의 표현은 이를 비판하는 정치적 언어다. 다만 작품의 역사적 타당성과 표현의 자유를 논해야 할 자리에서 양쪽의 언어가 짧은 낙인과 조롱으로 압축되는 순간 공론장의 밀도는 함께 낮아진다.

정치의 천박함을 단순히 거친 말이나 품위 없는 표현만으로 정의할 필요는 없다. 복잡한 사안을 적과 동지의 구도로 줄이고, 논증해야 할 문제를 충성심의 문제로 바꾸며, 반론의 대상인 작품을 상대 진영의 증거물로 취급하는 방식도 정치의 질을 낮춘다. 역사적 사실과 영화적 표현 사이의 복잡한 논쟁이 '좌파 영화'와 '보수 탄압' 같은 진영의 언어로 재편되는 순간 작품은 더 이상 작품으로 읽히기 어렵다.

문화의 언어도 함께 가난해진다. 영화가 어떤 연출을 선택했고 어떤 역사 자료를 변형했는지보다 감독과 배우가 어느 편에 서 있는지가 중요해지기 시작한다. 작품을 봤는지, 추천했는지, 출연했는지까지 정치적 정체성을 판단하는 근거가 된다. 문화가 사람의 생각을 넓히는 영역에서 사람을 분류하는 표식으로 변하는 과정이다.

유해진의 자택 앞에서 열린 집회는 작품 비판과 개인 공격의 경계가 얼마나 빠르게 흐려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배우는 출연작 선택에 대해 비판받을 수 있다. 작품의 역사적 의미에 관한 질문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논쟁의 장소가 영화관과 비평의 공간에서 개인의 주거지로 이동하면 표현의 대상 자체가 달라진다. 영화에 대한 반론보다 배우에게 심리적·경제적 비용을 발생시키는 것이 더 강한 수단으로 작동하게 된다.

광고주를 향한 압박도 비슷하다. 소비자가 특정 배우를 광고모델로 쓰는 기업의 상품을 구매하지 않을 자유는 당연히 있다. 기업 역시 시장의 반응을 보고 모델 계약을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작품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배우의 다른 경제활동까지 압박하는 움직임이 일반화되면 창작자는 다음 작품을 선택할 때 작품의 완성도뿐 아니라 출연 이후 발생할 수 있는 광고 계약과 가족, 주거 공간의 위험까지 계산하게 된다.

올해 최고의 영화 ...외신 기립박수 터졌다…허진호 신작 '암살자(들)' 토론토 발칵  사진=2026. 09.16. 하이브미디어코프(1974년 대한민국을 뒤흔든 영부인 저격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는 영화 '암살자(들)'이 치열한 추적전을 예고했다. [감독: 허진호 | 출연: 유해진, 박해일, 이민호 | 제작: (주)하이브미디어코프 | 제공/배급: (주)하이브미디어코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올해 최고의 영화 ...외신 기립박수 터졌다…허진호 신작 '암살자(들)' 토론토 발칵  사진=2026. 09.16. 하이브미디어코프(1974년 대한민국을 뒤흔든 영부인 저격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는 영화 '암살자(들)'이 치열한 추적전을 예고했다. [감독: 허진호 | 출연: 유해진, 박해일, 이민호 | 제작: (주)하이브미디어코프 | 제공/배급: (주)하이브미디어코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정치적으로 민감한 영화를 만들지 않는 것이 가장 안전한 선택이 되는 환경은 공식적인 금지령 없이도 만들어질 수 있다. 투자자는 논쟁이 예상되는 시나리오를 피하고, 배우는 광고 계약을 고려해 역할을 거절하며, 제작사는 실제 인물이 등장하는 현대사를 멀리할 수 있다. 외부에서 검열하지 않아도 창작자가 스스로 피해야 할 목록을 만드는 자기검열이 자리 잡을 수 있다.

DGK가 4일 발표한 입장문도 이런 흐름을 겨냥한다. 감독조합은 '암살자(들)'에 대한 비판이 옳거나 그르다고 판정하지 않았다. 비판과 논쟁을 겪은 창작자에게도 다음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남아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영화의 미래를 지킨다는 표현도 특정 작품을 보호한다는 의미보다 논란을 겪은 뒤에도 다시 창작할 수 있는 환경을 지키자는 주장에 가깝다.

영화계 역시 창작의 자유라는 말 뒤에 숨을 수는 없다. 역사적 비극을 실제 인물과 연결해 재구성했다면 창작자가 받은 자유만큼 설명의 책임도 커진다. 허구의 형식을 선택했다는 사실이 역사 왜곡 비판을 무효로 만들지는 않는다. 작품이 실제 기록과 다른 방향으로 관객을 이끌었다는 비판이 제기되면 어떤 자료와 해석을 바탕으로 서사를 만들었는지 충분히 설명하고 비평을 받아들여야 한다.

문화의 자유는 무비판의 자유가 아니다.

동시에 비평의 자유도 상대방을 사회적으로 제거할 권리까지 포함하지 않는다. 작품이 싫다면 혹평할 수 있고 역사적 오류가 있다면 지적할 수 있다. 유족이나 당사자의 권리가 침해됐다면 법적 절차를 밟을 수도 있다. 다른 감독은 정반대의 관점에서 같은 사건을 영화로 만들 수 있다. 역사학자는 더 많은 기록을 내놓을 수 있다. 민주사회에서 문화가 작동하는 방식은 한 해석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해석과 근거가 경쟁하게 만드는 데 가깝다.

정치와 문화의 역할도 여기에서 갈린다. 정치는 결국 결정을 내려야 한다. 법안을 통과시키거나 예산을 배분하고 국가의 방향을 선택해야 한다. 문화는 미결의 기억까지 품을 수 있다. 동일한 사건을 서로 다른 인물이 다르게 기억하고, 역사적 기록에서 설명되지 않는 인간의 감정과 공포를 상상하며, 이미 내려진 결론에 다시 접근할 수도 있다.

문화에 정치의 방식으로 하나의 정답만 요구하기 시작하면 문화가 가진 기능 가운데 중요한 부분이 사라진다. 반대로 문화가 역사적 사실을 아무렇게나 바꿔도 된다는 의미도 아니다. 문화가 자유로울수록 비평 역시 자유로워야 하고, 기록과 허구의 구분을 더 세밀하게 따질 수 있어야 한다. 자유로운 창작과 엄격한 비평은 서로 반대되는 가치가 아니라 함께 있어야 하는 조건이다.

'암살자(들)'은 10월 3일 누적 관객 200만명을 넘어섰다. 상영 중단과 불매 요구가 이어지는 동안에도 상당수 관객은 직접 영화를 보러 갔다. 흥행 성적이 작품의 역사적 해석을 옳게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관객 수는 사실 판정의 기준이 될 수 없다. 동시에 정치적 비판이 크다는 사실도 작품이 잘못됐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관객에게 작품을 판단할 권한을 남겨두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영화관에서 작품을 보고 동의할 수도 있고 불쾌함을 느낄 수도 있다. 역사왜곡이라고 판단하거나 감독의 문제 제기에 의미를 둘 수도 있다. 서로 다른 평가가 공존하면서 비평과 연구가 뒤따르는 과정 자체가 문화의 영역이다.

이번 논란에서 정치가 문화에 들어오는 방식은 더 큰 문제를 남겼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영화 논란을 두고 '문화 전쟁'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했다. 문화가 전쟁으로 규정되는 순간 관객은 독자가 아니라 진영의 병력이 되기 쉽다. 영화에 대한 호불호도 취향이나 비평이 아니라 어느 편에 섰는지를 확인하는 표식으로 바뀐다.

문화전쟁이라는 말이 강해질수록 문화는 오히려 약해진다. 전쟁에는 상대를 설득하기보다 이겨야 할 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연출과 사실관계를 분석하는 긴 문장보다 '좌파', '패륜', '영틀막', '꼰대' 같은 짧은 단어가 훨씬 빨리 유통된다. 정치가 단순한 적대의 언어를 공급하면 온라인 공간은 이를 더 짧고 강한 말로 증폭한다.

정치의 언어가 문화의 언어를 천박하게 만드는 구조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정치인이 역사영화를 비판하는 것 자체가 천박한 것은 아니다. 영화인들이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것 역시 자동으로 고상한 행동이 되지는 않는다. 천박함은 상대의 논거를 다루지 않은 채 소속만 판정하고, 작품을 반박하는 대신 사람에게 비용을 부과하며, 복잡한 역사적 논쟁을 한두 개의 진영 표식으로 압축하는 과정에서 생긴다.

사회관계망서비스와 온라인 플랫폼은 이 구조를 더 빠르게 만든다. 긴 역사자료보다 짧은 분노가 확산되기 쉽고, 비평보다 별점과 댓글이 즉각적인 영향력을 갖는다. 광고주와 투자자는 작품의 의미보다 논란의 규모를 먼저 계산한다. 정치가 던진 단어 하나가 온라인의 공격과 기업의 위험관리로 연결되면서 문화산업 전체에 실제 비용을 만들 수 있다.

한국 사회는 이미 정치와 문화가 과도하게 결합했을 때 창작 환경이 어떻게 위축되는지 경험했다. 문화예술인을 정치적 성향에 따라 분류하거나 공공지원에서 배제했던 과거의 블랙리스트는 국가권력이 문화적 표현을 선별했을 때 발생한 극단적인 형태였다. 현재의 '암살자(들)' 논란을 당시 사건과 동일하게 놓을 수는 없다. 국가기관에 의한 조직적 지원 배제와 야당·시민단체의 정치적 압박은 권한과 작동 방식이 다르다.

과거와 현재를 단순하게 등치하지 않더라도 남는 원칙은 있다. 문화에 투입되는 공적 자금이나 작품의 내용이 정치적 충성도의 기준으로 평가되기 시작하면 창작자와 투자자가 느끼는 위험은 커진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어떤 역사 해석이 허용되고 어떤 영화가 정치적 공격의 대상이 되는지가 달라진다면 문화산업은 가장 논란이 적은 이야기만 선택하게 된다.

정치의 역할은 문화에 정답을 내려주는 데 있지 않다. 허위사실과 명예훼손, 폭력과 권리 침해가 발생하면 법과 제도가 작동할 수 있다. 공적 투자가 있었다면 절차를 검증하면 된다. 작품이 역사적으로 부정확하다면 더 많은 기록과 반론을 공개하면 된다. 정치가 해야 할 일은 어느 영화를 봐야 하는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표현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공존할 수 있는 질서를 유지하는 데 가깝다.

올해 최고의 영화 ...외신 기립박수 터졌다…허진호 신작 '암살자(들)' 토론토 발칵  사진=2026. 09.16. 하이브미디어코프( ‘암살자(들)’은 제51회 토론토국제영화제(TIFF) 갈라 프레젠테이션 섹션에 공식 초청돼 현지 스코티뱅크 극장에서 월드 프리미어 상영을 마쳤다. 상영 직후 글로벌 영화 전문 매체들의 평가가 이어지며 K-무비의 장르적 완성도를 향한 호평이 잇따르고 있다.)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올해 최고의 영화 ...외신 기립박수 터졌다…허진호 신작 '암살자(들)' 토론토 발칵  사진=2026. 09.16. 하이브미디어코프( ‘암살자(들)’은 제51회 토론토국제영화제(TIFF) 갈라 프레젠테이션 섹션에 공식 초청돼 현지 스코티뱅크 극장에서 월드 프리미어 상영을 마쳤다. 상영 직후 글로벌 영화 전문 매체들의 평가가 이어지며 K-무비의 장르적 완성도를 향한 호평이 잇따르고 있다.)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가 해야 할 몫도 분명하다. 불편한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를 진보적이라고 선언해서는 안 되고, 창작의 자유를 역사적 책임의 면허로 사용할 수도 없다. 실제 사건을 재구성했다면 더 엄격한 자료 조사와 정교한 연출이 필요하고, 허구와 사실 사이의 경계를 관객이 판단할 수 있도록 충분한 단서를 남겨야 한다.

문화가 가진 힘은 사회의 갈등을 없애는 데 있지 않다. 이미 존재하는 갈등과 기억의 차이를 드러내면서도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서 그것을 보고 말할 수 있게 만드는 데 있다. 모두가 동의하는 영화만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문화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불편한 작품도 존재하고 그 작품을 혹독하게 비판하는 글도 존재하며, 정반대의 관점에서 만든 영화도 나올 수 있을 때 문화의 폭이 넓어진다.

민주주의의 문화적 수준 역시 같은 곳에서 드러난다. 자신이 좋아하는 표현을 보호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불쾌하고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표현에도 반론의 방식으로 맞서고, 작품의 존재 자체를 없애지 않은 채 논쟁을 이어가는 데 더 높은 사회적 역량이 필요하다.

'암살자(들)'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앞으로도 갈릴 수 있다. 영화가 제시한 의혹의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비판도 계속될 수 있고, 1970년대 국가권력과 언론 환경을 다시 보게 만들었다는 평가도 나올 수 있다. 작품의 완성도 역시 관객과 평론가가 각자 판단할 영역이다.

10월 4일 DGK의 입장문이 던진 핵심은 영화 한 편을 지켜달라는 호소보다 더 넓다. 작품을 비판한 뒤에도 창작자가 다시 영화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비판이 존재하면서도 창작이 계속되는 구조를 유지해야 한국영화도 새로운 이야기를 내놓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정치가 문화에 들어오는 순간마다 문화가 약해지는 것은 아니다. 정치적 사건을 다룬 영화와 소설, 연극은 오랫동안 사회의 기억을 확장해왔다. 정치 역시 문화가 제기한 문제를 통해 자신의 역사와 권력을 돌아볼 수 있다. 문제는 정치가 작품과 논쟁하는 것을 넘어 작품을 진영의 소유물로 만들기 시작할 때 생긴다.

정치가 문화에 정답을 요구하고, 문화가 다시 정치적 진영에 기대 자신을 방어하기 시작하면 양쪽 모두 가난해진다. 작품은 작품으로 평가받지 못하고 정치도 복잡한 역사 문제를 설명할 능력을 잃는다. 남는 것은 어느 편인가를 확인하는 짧은 구호와 상대에게 더 큰 비용을 안기려는 경쟁이다.

'암살자(들)' 논란이 한국 사회에 남긴 문제도 결국 영화의 결말보다 넓다. 역사적 사실을 엄격하게 검증하면서도 창작의 자유를 지킬 수 있는지, 작품을 강하게 비판하면서도 배우의 주거와 생업까지 공격하지 않을 수 있는지, 정치적 반대가 상영과 창작의 기회를 없애는 요구로 넘어가지 않을 수 있는지가 함께 드러났다.

정치의 품격은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문화를 보호하는 데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신이 불편해하는 문화가 존재할 공간까지 인정하면서 근거와 언어로 반박할 수 있을 때 정치도 성숙해진다. 문화 역시 자유라는 이름으로 검증을 피하지 않고 사실과 허구 사이의 긴장을 감당할 때 더 강해진다.

정치의 거친 언어가 문화의 언어까지 진영과 낙인으로 밀어 넣는다면 피해는 영화 한 편에서 끝나지 않는다. 사회가 서로 다른 기억을 다루는 방식 자체가 단순해진다. 문화는 합의를 생산하는 기계가 아니라 합의되지 않는 기억까지 사회 안에 남겨두는 공간이다.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란에서 지켜야 할 것도 특정 영화나 특정 정치세력의 승리가 아니다. 사실은 더 엄격하게 검증하고, 작품은 더 자유롭게 비평하며, 사람에 대한 공격은 작품에 대한 논쟁과 분리하는 질서다. 정치가 그 경계를 지킬 때 문화도 비로소 정치의 전쟁터가 아니라 사회가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공간으로 남을 수 있다.

저작권자 © KtN (K trendy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