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에서 ‘페미니즘’을 다시 정의해야 할 때
[KtN 임우경기자] 페미니즘(Feminism)은 단순한 정치적·사회적 담론이 아니라, 패션 산업에서 오랜 시간 동안 논의되어 온 중요한 키워드다. 그러나 패션계에서 ‘페미니즘’을 이야기할 때, 여전히 많은 브랜드는 이를 하나의 마케팅 도구로 활용하는 데 그치거나, 지나치게 단순화된 방식으로 표현하곤 한다.
‘여성성’을 강조하는 실루엣, 자유로움을 상징하는 슬로건 티셔츠, 여성 창작자를 기리는 메시지. 이것이 패션에서 표현되는 페미니즘의 전부일까? 여성 패션이 페미니즘을 논할 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구조적 변화’다. 그리고 2025 S/S 뉴욕 패션위크에서 토리 버치(Tory Burch)는 바로 이 지점에서 흥미로운 해답을 제시했다.
이번 컬렉션은 ‘소프트 스트럭처(Soft Structure)’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기능성과 조형적 아름다움을 결합한 실루엣을 통해 여성 패션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단순히 ‘여성적인 스타일’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역할 변화와 함께할 수 있는 패션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방식이었다.
여성 패션은 실용성과 조형미를 결합할 수 있는가
기능적인 실루엣의 중요성—페미니즘 패션은 더 이상 ‘우아함’만으로 정의될 수 없다
패션은 그 시대를 반영한다. 현대 여성들은 단순히 ‘우아하고 아름다운’ 옷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사회적 역할이 확장된 현실 속에서, 기능성과 스타일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패션을 필요로 한다. 토리 버치는 이번 컬렉션에서 이를 고려한 새로운 스타일을 제시했다.
▶테일러드 블레이저와 드레이핑 원피스의 조합 → 남성복의 구조적 요소와 여성복의 부드러운 실루엣을 결합해, 강인함과 유연함이 공존하는 스타일을 완성했다.
▶비대칭 실루엣과 입체적 패턴의 활용 → 단순한 곡선미가 아니라, 움직임에 따라 변화하는 실루엣을 강조하며 여성의 다층적인 정체성을 표현했다.
▶기능성을 고려한 디자인 기법 → 착용감을 극대화하면서도 스타일을 유지하는 소재 선택과 구조적 접근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시도는 최근 패션에서 중요한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는 ‘구조적 페미니즘(Architectural Feminism)’과 맞닿아 있다. 여성복이 단순히 장식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기능성을 갖추면서도 조형적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방식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페미니즘과 미니멀리즘의 교차점—‘감각적 미니멀리즘’이란 무엇인가
이번 컬렉션의 또 다른 핵심은 컬러와 질감을 활용한 미니멀리즘의 재해석이었다.
과거의 미니멀리즘이 형태와 색채의 단순화를 의미했다면, 이제는 ‘감각적 미니멀리즘(Sensory Minimalism)’이 강조되는 시대다. 즉, 단순한 디자인을 넘어서, 질감과 구조적 요소를 통해 감각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뉴트럴 톤을 기반으로 한 절제된 컬러 사용 → 아이보리, 베이지, 페일 블루 등 차분하면서도 깊이감 있는 색조를 활용해, 시각적 안정감을 부여했다.
▶광택과 텍스처의 조화 → 새틴과 실크, 리넨과 코튼을 조합해 컬러 자체가 가진 심미성을 극대화했다.
▶컷아웃과 메시 디테일을 활용한 실험적인 요소 → 노출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와 옷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탐구하며 현대적 페미니즘을 표현했다.
이는 단순히 ‘장식적 여성성’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역할과 환경 변화에 맞춘 감각적인 스타일링이 가능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웨어러블 럭셔리(Wearable Luxury)’—현대 여성들에게 필요한 옷은 무엇인가
실용성과 패션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전략
한때 럭셔리는 비일상적인 개념으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이제 럭셔리는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토리 버치는 이번 컬렉션을 통해 ‘웨어러블 럭셔리(Wearable Luxury)’라는 개념을 더욱 강화했다. 이는 패션이 단순한 미적 요소를 넘어, 실제 라이프스타일과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는 철학을 반영한 것이다.
▶데이웨어와 이브닝웨어의 경계를 허무는 스타일링 → 하나의 아이템이 다양한 상황에서 활용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착용자의 움직임을 고려한 패턴 개발 → 옷이 단순한 미적 요소를 넘어서, 실제 착용감과 활동성을 보장하도록 디자인되었다.
▶기능성을 갖춘 고급 소재 활용 → 신축성 있는 원단과 가벼운 패브릭을 결합해, 스타일과 편안함을 동시에 충족시켰다.
이러한 변화는 현대 패션에서 점점 더 강조되는 ‘트랜지셔널 웨어(Transitional Wear)’ 트렌드와도 연결된다. 패션은 더 이상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서만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환경과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토리 버치, 구조적 페미니즘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
강점: 페미니즘을 스타일이 아닌 구조로 접근하다
토리 버치는 이번 컬렉션을 통해 페미니즘을 단순한 장식적 스타일링이 아닌, 구조적 변화를 통해 구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테일러링과 실루엣의 변주를 통해, 여성복이 가진 전통적 개념을 재해석했다.
▶소재와 색채의 감각적 조율을 통해, 미니멀리즘을 더욱 감각적인 방식으로 발전시켰다.
▶웨어러블 럭셔리를 강화하며, 패션이 실질적인 라이프스타일과 결합해야 함을 보여주었다.
한계점: 보다 대담한 디자인 실험이 필요한 시점
그러나 여전히 과제는 남아 있다.
▶페미니즘을 반영하는 방식에서, 보다 급진적이고 실험적인 디자인적 시도가 필요하다.
▶현대 여성 패션이 나아갈 방향을 보다 적극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차별화된 접근법이 요구된다.
여성 패션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2025 S/S 토리 버치 컬렉션은 패션이 단순한 스타일이 아니라, 여성의 사회적 역할과 함께 진화해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킨 순간이었다.
패션에서 ‘페미니즘’을 논하는 것은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다. 패션은 여성들이 살아가는 현실을 반영하는 하나의 언어이며, 따라서 기능성과 구조적 요소를 고려한 패션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이제 토리 버치는 ‘현대 여성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옷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더욱 깊이 탐구해야 한다. 그리고 그 답을 찾는 과정이야말로, 현대 패션이 풀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후원=NH농협 302-1678-6497-21 위대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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