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투기’와 ‘디지털 구조화’로 재편된 프랑스 미술시장… K-ART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MAÎTRE DE VYŠŠÍ BROD (act.1350)La Vierge et l’Enfant en trôneSold by Cortot-Vregille (Dijon), 11/30/2019: $6.8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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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임민정기자] 한 시대의 미술시장은 단순히 거래의 장소가 아니라, 그 사회가 예술을 어떻게 해석하고 유통하며 기억하는지를 보여주는 집합적 구조다. 그런 점에서 2020년대 중반의 프랑스 미술시장은 매우 특이한 전환기를 맞고 있다. 뉴욕과 홍콩의 고가 낙찰 중심 구조가 가격 피로감과 시장 집중도 문제에 직면한 지금, 파리는 오히려 다극화된 거래, 비투기적 생태계, 디지털 유통의 성숙이라는 삼각 구조를 바탕으로 예술시장의 ‘지속 가능성’을 설계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 미술, 특히 K-ART는 이 구조적 전환에서 어떤 미래를 상상할 수 있을까.

프랑스의 현재: 양적 팽창이 아닌 구조적 설계의 결과

2024년 프랑스는 약 11만 8천 점의 미술품을 경매에서 거래하며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경매 거래량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 수치는 양적 팽창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더 근본적인 변화는 디지털화된 분산 유통 시스템의 구축에 있다.

전체 거래의 상당수가 온라인 기반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지방 소도시 경매사들 또한 ‘국제적 컬렉터 네트워크’에 접근할 수 있는 구조적 조건이 마련된 것이다.

지방 소경매에서 시마부에(Cimabue)나 클로델(Claudel) 같은 유럽 고미술의 걸작이 발굴되고 고가에 낙찰된 사례는, 단순한 운이 아닌 구조적 역량의 결과다. 프랑스는 미술 유통의 중심을 ‘파리’에만 두지 않고, 예술의 지리적 다원성을 시장 전략의 일부로 흡수했다. 이는 미술의 공간성을 ‘중심과 주변’으로 단순화해온 기존 모델에 균열을 가한다.

투기 없는 시장, ‘가격’보다 ‘관계’가 축적되는 구조

프랑스 미술시장에서는 백만 달러 이상에 낙찰된 동시대 미술품이 연간 1~2점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는 약점이 아니라, 오히려 ‘신뢰 가능한 장기 생태계’의 증표로 작동한다. 2024년 기준, 마를렌 뒤마스의 작품이 180만 달러에 거래된 것이 유일한 고가 사례였지만, 이는 작가의 30년간의 시장 이력이 누적된 결과였다.

프랑스는 ‘단기적 화제성’보다 ‘지속 가능한 작가성’을 축으로 유통 메커니즘을 정비하고 있으며, 이는 ‘빠른 시세 상승’을 전제로 한 단타 컬렉션 모델과 명확히 구분된다. 뉴욕이나 홍콩이 ‘가격’의 미학을 추구한다면, 파리는 여전히 ‘작품과의 관계’를 축적하는 컬렉터 문화를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Art Paris는 프랑스 예술계의 뉴 페이스들과 현대 및 모던 아트를 아우르는 다양한 작품들로 가득 찼다./사진=Art Paris 2024,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Art Paris는 프랑스 예술계의 뉴 페이스들과 현대 및 모던 아트를 아우르는 다양한 작품들로 가득 찼다./사진=Art Paris 2024,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Art Paris의 전략: 아트페어를 ‘기획의 장’으로 전환하다

Art Paris는 2024년 7만 명의 방문자, 170개 갤러리 참가라는 성과 속에서 ‘거래 중심의 페어’에서 ‘담론 중심의 페어’로 진화하고 있다. 특히 에머전스 섹션, 여성 작가 지원 프라이즈, 공공적 큐레이션 테마는 예술을 시장적 가치를 넘어선 사회적 의제로 환원시키는 방향성을 제시한다.

파리는 더 이상 단순한 미술 유통의 장소가 아니라, 예술의 미래를 시험하는 문화적 실험실로 자리잡고 있다. 이 시점에서 Art Paris는 뉴욕의 프리즈, 바젤의 리스트와는 다른 위상을 갖는다. 그것은 ‘프랑스적인 실험성과 연대성’이 반영된 전략적 큐레이션 모델이다.

K-ART의 시사점: 속도를 줄이고, 구조를 설계할 때

현재 K-ART는 국제적 주목도 측면에서는 전례 없는 상승세에 있다. 특히 K-팝, K-무비, K-패션과의 연계는 한국 미술의 ‘문화 자산 연계형 확장성’을 가능케 했다. 그러나 그에 비해 미술시장 자체의 유통 구조, 작가 생태계의 안정성, 중장기 컬렉터 네트워크는 아직까지 뉴욕·파리와 비교할 수 없는 초보적 단계다.

지방 분산형 유통 전략 구축

한국 역시 서울 중심의 거래 구조를 지방 중견 갤러리, 지역 공공 미술관과 연계하여 다극화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단기적 매출이 아닌 장기적 작가 생태계의 기반이 될 것이다.

디지털 경매 플랫폼의 전문화

NFT 이후 무분별하게 흘러간 디지털 미술 시장을, 구조화된 온라인 유통 플랫폼으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의 비대면 경매 시스템은 그 레퍼런스가 될 수 있다.

큐레이션 중심의 페어 기획

KIAF를 포함한 국내 아트페어들은 판매 중심에서 기획 중심으로 전환될 시점에 와 있다. Art Paris의 '에머전스'나 '여성 작가 프라이즈'처럼 공공성과 주제의식을 동반한 큐레이션은 한국 미술의 진정한 국제화를 위한 필수 전략이다.

 

파리의 구조, 서울이 주목해야 할 ‘다음 좌표’

프랑스 미술시장은 지금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거래는 빨라졌지만, 관계는 얼마나 지속 가능한가?”
“가격은 올랐지만, 그 안에 담긴 예술의 질감은 얼마나 유의미한가?”

 

K-ART가 진정한 국제 미술시장의 주체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이 질문들을 외면할 수 없다.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구조이며, 확장보다 본질이다. 지금 파리는 그 해답을 실험하고 있고, 한국 미술계는 이제 그 질문에 응답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