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0개 기업이 문을 두드렸지만, 정관을 연 기업은 165곳… 실천과 확산 사이의 제도적 간극
[KtN 박준식기자] 2025년 1월 자본시장법 개정은 한국 자본시장에 또 하나의 변곡점을 만들어냈다. 배당절차 개선의 흐름 속에서 분기배당 제도 역시 본격적인 제도화 궤도에 진입했지만, 기업들의 대응은 여전히 더디다. 750개 분기배당 도입사 중 실제로 정관을 정비한 기업은 165개사에 불과하다. 이는 분기배당이 단순히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의 언어에 머무르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법은 바뀌었지만, 제도의 실천은 여전히 절반도 못 미친다.
제도는 열렸다: ‘이사회 결의로 기준일 설정’ 가능해진 2025년의 법 개정
2025년 1월 21일, 개정된 자본시장법은 분기배당 기준일을 이사회 결의로 정할 수 있도록 문을 열었다. 기존에는 3월, 6월, 9월 말일만이 배당기준일로 허용되던 구조였다면, 이제는 회계분기 종료 후 45일 이내 이사회가 결정한 날로 기준일을 정할 수 있게 됐다. 이는 기업에게 배당 시기와 구조를 탄력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자율권을 부여한 것이며, 투자자에게는 분기단위 배당 예측 가능성을 제공할 수 있는 틀이기도 하다.
이 제도 변화에 따라 상장회사 표준정관도 개정되었으며, 상장회사협의회와 코스닥협회가 각기 대응 정관을 제공했다. 기업의 의지만 있다면, 배당 기준일을 유연하게 설정하고, 투자자와의 신뢰 관계를 강화할 수 있는 길은 이미 열려 있다.
현실은 아직 더디다: 참여율 22.0%, 정관 정비 기업은 165개에 그쳐
하지만 제도가 곧 실행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실제로 2025년 정기주주총회에서 정관을 정비한 분기배당 기업은 750개 도입사 중 165개사(22.0%)에 그친다. 유가증권시장은 36.8%(70개사), 코스닥 시장은 17.0%(95개사)로 격차가 컸고, 중소·중견기업으로 내려갈수록 참여율은 더 낮아진다.
이는 제도의 실질 정착을 위해 법적 정비 외에도 기업 내부의 재무정책 수립, 배당 여력 판단, IR 전략 연계 등의 복합적 요인이 요구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특히 분기 단위로 안정적 배당을 할 수 있는 실적 기반이 부족한 중소기업의 경우, 형식적 도입 이후 정관 개정에까지 나아가는 데는 뚜렷한 한계가 존재한다.
분기배당은 ‘재무의 기술’이 아닌 ‘지배구조의 의지’에서 출발해야
배당이 재무적 여유가 있을 때만 가능한 ‘선심성 분배’라는 인식이 여전히 시장 곳곳에 뿌리 깊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분기배당은 단순한 현금흐름 관리 이상의 전략적 의미를 갖는다. 주주에게 규칙적으로 신뢰를 제공하는 구조적 장치이며, 지배구조의 예측 가능성을 수치화한 신호다.
그렇기에 분기배당이 단순한 회계상의 유연성이 아니라 ‘기업의 자율성과 신뢰 설계 능력’을 가늠하는 지표가 되어야 한다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22.0%라는 저조한 정관 정비율은 제도적 변화와 의사결정 주체 간의 온도차를 드러내는 대표적인 지표다.
실행력을 가르는 조건은 ‘재무 여력’이 아닌 ‘정보 설계력’
이번 분기배당 정관 정비율의 저조함은 재무 여력보다도 IR 시스템과 정보공시 전략의 부재에서 기인한 측면이 크다. 실제 배당 실시보다, 그것을 어떻게 설계하고 공지하며 예측 가능하게 구조화할 것인가가 관건인 것이다.
정관 개정은 단지 형식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투자자 커뮤니케이션과 정보 제공 체계를 바꾸는 작업이다. 투자자 입장에서 ‘이 기업이 언제 얼마를 줄지 예상할 수 있는가’는 단순한 수익률 이상의 가치이며, 이는 시장의 신뢰지수를 결정짓는 핵심 변수다.
구조적 확산을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
정보 플랫폼 강화: 상장협과 코스닥협이 운영하는 배당기준일 안내 시스템의 확산과 기능 고도화가 필요하다. 단순 공시가 아닌, 예측 가능한 구조로의 전환이 핵심이다.
IR 연계 전략 강화: 분기배당의 실현은 결국 기업의 IR 및 주주 커뮤니케이션 전략과 맞물려야 한다. 이사회-재무팀-홍보팀 간의 유기적 연결이 없다면 제도는 공전할 수밖에 없다.
중소기업 맞춤형 유도책 필요: 분기배당 정착을 위해서는 자금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에 대한 세제혜택 또는 공시 간소화 등의 유도책이 병행돼야 한다.
배당은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다
분기배당 제도의 정비는 시작됐다. 그러나 참여는 아직 선택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 이는 자본시장 선진화가 ‘법률의 도입’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제도의 실천’과 ‘정보의 설계’를 통해 이뤄진다는 점을 다시 상기시킨다.
배당은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의지의 언어이며, 신뢰의 구조로 번역되어야 한다. 제도는 열렸고, 이제 시장은 그 문을 어떻게 통과할지를 결정해야 할 시점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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