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rom Korea to Hong Kong: Korean Visions’, 아트바젤 그 이후의 전략적 전시
[KtN 임민정기자] 세계 미술 시장의 심장부라 불리는 ‘아트바젤 홍콩’이 끝난 직후, 그 여운을 고스란히 이어가는 움직임이 포착됐다.
주홍콩한국문화원이 2025년 4월 3일부터 5월 30일까지 개최 중인 《From Korea to Hong Kong: Korean Visions》는 단순한 전시를 넘어 아트페어와 공공문화 외교의 전략적 연계를 실현한 시도다.
이번 전시는 아트바젤 홍콩 2025에 참여했던 한국의 6개 주요 갤러리(아라리오, 바톤, 조현화랑, 리안, 우손, 제이슨 함)가 공동 참여하며, 총 7인의 중견 및 동시대 작가들이 참여한다. 아트바젤 종료 이후에도 작품을 다시 선보일 수 있도록 문화원과 갤러리 간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후의 첫 전시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글로벌 미술 플랫폼과 공공문화 기관의 유기적 접속
최근 몇 년간 아트페어는 단순한 미술품 거래를 넘어, 국가 브랜드의 확장과 문화외교의 전선으로 기능하고 있다. 특히 한국 미술계는 아트바젤, 프리즈, 아모리쇼 등 세계적 플랫폼에서 존재감을 넓히며 ‘K-아트’라는 명명까지 부여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외연 확장에 비례하여, 지속성과 내실을 담보할 수 있는 공적 구조는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From Korea to Hong Kong》 전시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공공문화 기관이 아트페어 이후의 지속 가능한 접점을 만들어가는 모델로 주목된다. 단발적 참여에 그치지 않고, 해외 현지에서의 장기적 노출과 해석의 기회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문화원 최재원 원장은 “한국 현대미술의 다양성과 깊이를 홍콩의 관람객들에게 선보이는 좋은 기회”라고 강조하며, “매년 아트바젤과 연계된 전시가 지속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는 곧 이번 전시가 단순한 ‘전시 수출’을 넘어, 한국 미술이 문화 교류의 전략적 주체로 자리매김해 나가야 한다는 담론과도 맞닿아 있음을 시사한다.
참여 작가들, 동시대 한국미술의 경향을 대표하다
이번 전시는 다양한 매체와 시각언어를 구사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한국 현대미술의 다층적 경향을 읽을 수 있는 기회다. 회화, 드로잉, 애니메이션, 설치 등 다양한 형식이 총체적으로 구성되어, 개별 작가의 실험을 넘어 동시대 한국미술의 흐름을 집약한다.
최병소(우손 갤러리)는 신문지 위에 볼펜과 연필로 반복적으로 선을 긋는 작업을 통해, 예술 행위와 노동의 접점을 사유하게 한다. 그의 작품은 시간의 물성을 시각화한 ‘드로잉 저널’이라 할 수 있다. 남춘모(리안 갤러리)는 평면과 입체, 재료와 공간 사이를 넘나드는 ‘선의 미학’을 구현한다. 그의 캔버스는 조형적 명상에 가까운 밀도를 지닌다. 김정욱(제이슨 함)은 한지와 먹을 활용해 인간 존재와 우주 에너지의 흐름을 탐구한다. 동양적 철학과 현대적 감각이 조화된 사변적 회화다.
이소연(조현화랑)은 자화상을 통해 시대 감수성과 개인적 서사를 결합하며, 감정의 깊은 층위에 접근한다. 특히 여성적 시선의 정치성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동시대성 또한 강하게 지닌다. 조종성(조현화랑)은 전통 산수화의 형식을 차용하면서도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고전과 현재의 시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안경수(아라리오 갤러리)는 일상의 교외 풍경을 회화적으로 재해석하며, 도시 주변부에 숨겨진 정서와 풍경을 재구성한다. 배윤환(바톤 갤러리)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작업을 통해 인간 사회를 동물의 형상으로 풍자하며, 디지털 세대의 상상력과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담는다.
‘결과 중심’에서 ‘관계 중심’으로
한국 미술계의 해외 진출은 그간 주로 아트페어 중심의 ‘결과 지향적 수출’에 집중돼 있었다. 그러나 《From Korea to Hong Kong》 전시는 관계의 구축과 유지, 문화적 맥락 속 재해석이라는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다. 한국 미술이 더 이상 수동적으로 소개되는 대상이 아니라, 글로벌 미술 담론 속 능동적이고 지속가능한 주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실험하는 장인 것이다.
동시에 이번 전시는 홍콩이라는 복합적 도시 문맥 속에서 다국적 관객들과의 감각적 접점을 확대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글로벌 문화 시장에서 ‘한국성(Korean-ness)’이 어떻게 해석되고, 어떤 방식으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가에 대한 실험이기도 하다.
‘아트바젤 이후’라는 새로운 질문
이번 전시는 하나의 명확한 질문을 던진다. “아트바젤 이후, 우리는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으로, 주홍콩한국문화원은 작품을 다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맥락에서 다시 ‘읽히게’ 하는 장을 열었다. 그리고 그 장은, 한국 미술이 단기적 유행을 넘어 글로벌 문화 주체로 나아가기 위한 전환점으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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