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연산 아키텍처를 둘러싼 기술 블록화와 KAIST의 가능성
[KtN 박채빈기자] AI 반도체 산업이 구조적 변곡점에 진입했다. 연산 속도와 병렬성의 한계에 도달한 전통 GPU 중심 체계가 물리적 장벽에 부딪히면서, 뉴로모픽 칩을 포함한 새로운 정보 처리 구조가 글로벌 반도체 전략의 중심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 전환의 핵심은 단순한 성능 향상이 아니라, 반도체가 정보를 해석하고 반응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시도다.
KAIST 김경민 교수팀의 뉴랜지스터는 이 흐름 속에서 뇌 신경망의 작동 원리를 전기 회로 수준에서 정교하게 구현해낸 첫 번째 성과 중 하나다. 그러나 이미 세계 시장은 뉴로모픽 기술의 산업화 경쟁에 본격 돌입한 상태다. 인텔, IBM, 삼성전자 등 주요 기업들의 전략은 각기 다른 기술 철학을 기반으로 구조화되고 있다.
인텔: Loihi 프로젝트와 시냅틱 네트워크의 하드웨어화
인텔은 2017년 뉴로모픽 칩 Loihi(로이히)를 공개하며 뉴런과 시냅스를 모사하는 칩 아키텍처를 선보였다. Loihi는 전통적인 연산 방식과 달리, 이벤트 기반 스파이킹 뉴럴 네트워크(SNN) 구조를 채택하고 있다. 입력 신호가 발생할 때만 연산이 작동하는 이 구조는 에너지 소비를 획기적으로 줄이면서도 고속 연산이 가능하다는 장점을 가진다.
2021년 발표된 Loihi 2는 100만 개 이상의 뉴런과 1억 개 이상의 시냅스를 칩 내에 통합하는 데 성공했으며, 기존 AI 연산보다 수십 배 낮은 에너지 효율을 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텔은 이를 바탕으로 엣지 AI, 로봇 제어, 바이오신호 해석 분야로 기술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IBM: TrueNorth에서 뇌 모사 시스템 전체로
IBM은 2014년 뉴로모픽 칩 TrueNorth를 출시하며 ‘브레인 스케일 컴퓨팅’이라는 개념을 업계에 처음 제안했다. 4096개의 코어로 구성된 이 칩은 인간 뇌의 신경 회로를 모방해 연산-저장-학습 기능을 통합하고 있으며, 뉴로모픽 전용 언어(NPL)와 자체 알고리즘 생태계를 구축해 하드웨어 최적화를 시도하고 있다.
최근에는 Neurosynaptic System이라는 개념으로 확장해 칩 단위가 아닌 시스템 레벨에서의 뉴로모픽 아키텍처 구현을 추진하고 있다. IBM은 이 기술을 이용해 실시간 청각 해석, 뇌파 기반 분석, 행동 예측 등 인간 감각 기반 AI 시장에 대한 선제적 대응을 강화하는 중이다.
삼성전자: 메모리 중심 뉴로모픽 연산의 전략화
삼성전자는 뉴로모픽 반도체에서 메모리 소자의 특성을 연산 기능으로 확장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RRAM, PRAM 등 비휘발성 메모리 기반 뉴로모픽 소자 개발에 집중하며, 메모리-연산 통합 구조인 PIM(Process-In-Memory)을 이미 상용화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특히 2022년 발표한 512x512 뉴로모픽 메모리 어레이는 메모리 셀 하나가 시냅스를 흉내내며, 뉴런 간 가중치 조절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로 설계됐다. 이는 삼성전자가 보유한 DRAM 생산 인프라와의 호환성이 높아, 산업적 확장성과 양산 가능성 면에서 가장 현실적인 전략으로 평가된다.
삼성전자는 뉴로모픽 기술을 HBM·인터포저 패키징 등 고성능 메모리 플랫폼과 접목해 AI 전용 칩셋으로의 확장을 모색하고 있다.
KAIST의 변수: 공정 호환성과 설계 독립성
KAIST 김경민 교수팀의 뉴랜지스터는 전통적인 트랜지스터 구조의 기본 설계를 유지하면서도, 연산 방식 자체를 뉴런 기반의 동적 반응 구조로 전환했다. 이는 기존 CMOS 공정과의 호환성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산업적 전개 가능성이 높다. 또한 독자적인 물성 기반 소자이기 때문에, 글로벌 기업들의 아키텍처 종속적 전략과 달리 설계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닌다.
실시간 학습, 시간 종속성 반영, 초저전력 연산 등에서 확보한 기술적 우위는 특정 하드웨어 아키텍처에 종속되지 않고, 다양한 플랫폼에 탑재 가능한 범용적 유연성을 제공한다. 이는 국산 AI 반도체 플랫폼 구축에 있어 ‘플랫폼 독립형 연산 코어’로서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뉴로모픽 반도체, 패권 경쟁 아닌 기술 철학의 전쟁
뉴로모픽 기술은 단순한 연산 성능의 경쟁이 아니다. 각 기업이 지향하는 방향은 데이터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기계는 ‘어떤 방식으로 반응해야 하는가’라는 기술 철학의 차이를 반영한다.
인텔은 신호 중심, IBM은 시스템 중심, 삼성은 메모리 중심 전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틈에서 KAIST의 뉴랜지스터는 ‘소자 중심의 뇌형 반응 구조’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기술의 완성도뿐 아니라, 공정 호환성과 산업 생태계 내 연결 가능성까지 고려했을 때, KAIST 모델은 세계적 기술 블록화 속에서 독립적 기술주권의 후보군으로 충분한 잠재력을 확보하고 있다.
후원=NH농협 302-1678-6497-21 위대한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