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에서 시작된 질문, 예술과 제도의 경계를 다시 묻다
강남장애인복지관 전시, 창작 주체성과 문화 접근권의 확장 가능성 제시
[KtN 임우경기자] 강남장애인복지관이 2025년 6월 25일 기획전시 '작가발, 굴'을 개최하며, 장애예술인의 창작 활동을 공공 문화영역의 담론으로 정식화하는 시도를 진행했다. 이번 전시는 신진작가 공모전에서 선정된 손우진, 원병훈, 조신욱 세 명의 작가가 참여한 단체전으로, ‘작가의 굴’이라는 상징을 통해 각자의 창조 공간을 시각화하고, 이를 통해 관람자와의 감각적 접점을 구성하였다.
전시는 강남장애인복지관 액티브 갤러리의 경사로 공간 전체를 활용해 진행되었으며, 관람객이 전시장 내부뿐 아니라 이동 동선에서 자연스럽게 작품과 마주하도록 설계되었다. 작가들이 직접 스케치한 발자국을 전시장 벽면에 부착한 구성은 예술 공간을 단순한 결과물 전시장이 아닌, 창작의 흔적이 남겨진 참여형 공간으로 재구성하는 시도로 해석된다.
주제적 구성: 예술의 독립성과 공존의 가능성
‘굴’이라는 키워드는 전시 전반을 관통하는 상징이다. 작가들에게 ‘굴’은 회피나 은둔의 장소가 아니라, 작업의 원형이자 사유의 밀도를 지닌 공간으로 기능한다. 손우진은 유쾌한 시선으로 진지한 주제를 다뤘고, 원병훈은 변화와 흐름이라는 소재를 통해 비가시적 감정과 생의 리듬을 구성했다. 조신욱은 책가도와 인사동 상점을 소재로, 사람을 고유한 사물로 비유하며 사회적 경쟁 구도 바깥의 삶을 시각적으로 제시했다.
특히 조신욱은 야수파와 표현주의 계열의 데포르마숑 기법을 차용해, 형태와 색채의 변형을 통해 감정의 밀도를 강화하였다. 작품 전체는 현실의 재현을 넘어서 작가 개인의 시선과 감정 상태를 압축적으로 전달하고, 관람자에게 직관적 감응을 유도한다.
공공기관 전시의 한계와 가능성
강남장애인복지관은 전시 기획 과정에서 장애예술인의 자율성과 창작 주도권을 전면에 내세웠다. 작가들이 기획에 직접 참여하고, 전시장 구성에도 물리적으로 개입한 점은 복지시설 주도의 일방향적 예술지원 방식에서 벗어난 구조적 실험으로 평가된다. 다만, 예술성과 제도적 정합성 사이의 균형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전시장소가 복지관 내부에 한정된다는 점에서, 접근성이나 전시장의 전문성과 같은 현실적 제약도 분명 존재한다.
또한 전시가 지역사회로 확산되는 구조는 아직 제한적이다. 관람객 대상이 복지관 이용자나 지역 주민에 국한되면서, 예술계 안팎의 확장성이나 사회적 파급력 측면에서는 더 많은 기획적 보완이 요구된다. 장애예술인의 작업을 예술시장이나 교육 콘텐츠, 공공예술 프로그램과 연계하는 후속 정책 설계가 병행되어야 지속가능성이 확보될 수 있다.
사회적 파급효과: 창작의 다름을 공적 가치로 전환할 수 있는가
'작가발, 굴' 전시는 창작의 결과물이 아닌 창작의 ‘과정’에 주목하며, 예술이 개인의 내면을 넘어 사회적 관계와 제도적 구조에 개입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했다. 작가들이 ‘발자국’을 통해 공간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행위는, 예술적 개입이 현실 공간에 자취를 남길 수 있다는 상징적 장치로 기능하며, 관람자와의 수평적 연결을 시도한다.
또한 장애예술인의 작업은 ‘예술의 사회성’이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조신욱이 표현한 ‘경쟁이 아닌 공존’이라는 메시지는, 장애를 단순한 복지 대상으로 접근하지 않고, 사회구성원의 다양성으로 재위치시키는 계기를 제공한다. 이는 창작의 정체성을 장애 유무에 따라 구분짓지 않고, 다름을 문화적 자산으로 전환시키는 구조적 발상의 전환이기도 하다.
지역 기반 문화전략과 제도 설계에 주는 시사점
'작가발, 굴' 전시는 단순한 전시행사 이상의 정책적 함의를 지닌다. 첫째, 복지기관이 예술 공간으로 전환되며 공공문화 플랫폼의 새로운 가능성을 시사했다. 둘째, 장애예술인이 창작 주체로 등장할 수 있는 제도 기반의 실험이 가시화되었다. 셋째, 지역사회 기반의 문화접근권 확대와 예술의 생활화 전략에 대한 실질적 사례를 제공했다.
향후에는 복지시설 내 예술지원 프로그램이 독립된 문화정책 체계로 편입되고, 예술기관, 기획자, 커뮤니티 조직이 협력하는 구조적 연계망 구축이 필요하다. 장애예술인의 창작이 비가시적인 ‘굴’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공론장과 예술 생태계의 일부로 안정적으로 포섭되기 위해서는, 문화정책과 복지정책 사이의 경계 재설정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이 전시는 그 논의를 위한 시작점으로 기능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