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트 속의 낯선 이름들

빌보드 1위 ‘골든’의 주인공 '케데헌' OST 작곡  이재, 음악으로 광복 80년을 노래하다  사진=2025 08.14  이재 SNS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빌보드 1위 ‘골든’의 주인공 '케데헌' OST 작곡  이재, 음악으로 광복 80년을 노래하다  사진=2025 08.14  이재 SNS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신미희기자]이번 주 글로벌 차트 상위권에는 일반 대중에게는 다소 낯설 수 있는 이름들이 자리했다. 1위 HUNTR/X의 ‘Golden’, 그리고 Saja Boys의 ‘Soda Pop’과 ‘Your Idol’이 나란히 Top10을 점령했다.

이 프로젝트들은 전통적인 그룹처럼 고정된 멤버 구성이 아니다. 곡마다 보컬과 래퍼, 프로듀서가 달라지고, 참여 인력은 한국, 미국, 유럽 등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다. 차트에 기록된 이름은 단순한 팀명이 아니라 제작 플랫폼 혹은 브랜드에 가깝다.

이 모델은 특정 개인의 스타 파워보다는 조직적 프로듀싱 체계에 의존한다. 이번 주 차트는 그런 변화가 본격적으로 가시화되었음을 보여준다.

고정 그룹에서 유동 집단으로

전통적으로 팝 음악은 두 가지 축으로 구성되었다. 솔로 아티스트와 고정 멤버 그룹이다. 전자는 개별 스타의 카리스마를 중심으로, 후자는 집단 정체성을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그러나 HUNTR/X와 Saja Boys는 이 구도를 벗어난다.

곡 단위로 필요한 인력을 모듈식으로 조립한다. 예컨대 HUNTR/X의 ‘Golden’에는 EJAE, Audrey Nuna, REI AMI가 참여했지만, 다음 곡에서는 다른 조합이 등장한다. 브랜드는 유지되지만 내부 조합은 자유롭게 교체된다. 이는 스타 의존도를 줄이고, 제작 리스크를 분산하는 효과를 낸다.

사운드와 콘셉트 중심의 팬덤

이러한 프로젝트형 모델에서 팬은 특정 멤버가 아니라 사운드와 콘셉트에 반응한다. 팬덤은 아티스트 개인의 사생활이나 이미지보다, 트랙이 구현하는 세계관과 사운드 연속성에 집중한다. 이는 곡별 성패와 관계없이 브랜드 전체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는 넷플릭스나 디즈니+에서 IP 중심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흐름과 유사하다. 개별 배우보다 시리즈나 유니버스가 소비의 기준이 되는 것처럼, 음악에서도 브랜드형 프로젝트가 하나의 소비 단위로 자리 잡고 있다.

제작 속도의 혁신

프로젝트형 모델은 제작 속도를 크게 단축한다. 특정 그룹의 일정이나 계약에 얽매이지 않고, A&R 팀은 곡마다 최적의 인력을 빠르게 배치할 수 있다. 이는 스트리밍 시대의 짧은 소비 주기에 대응하기 유리하다. 매주 새로운 음악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프로젝트형 집단은 필요한 만큼의 곡을 빠르게 공급할 수 있다.

특히 글로벌 작곡 캠프와 온라인 협업 툴이 발전하면서, 물리적 거리의 제약이 사라졌다. 뉴욕, 서울, LA, 런던의 뮤지션이 같은 프로젝트에 동시에 참여하는 일이 일상화되었다.

GoldenHUNTR/X. 사진=빌보드 갈무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GoldenHUNTR/X. 사진=빌보드 갈무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HUNTR/X와 Saja Boys

이번 주 1위를 차지한 ‘Golden’은 단순한 히트곡이 아니다. 다국적 창작 네트워크가 효율적으로 작동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한국계 프로듀서 EJAE와 Andrew Choi, 미국 기반의 Audrey Nuna와 REI AMI가 결합해, R&B와 팝, 힙합을 절묘하게 섞어냈다. 이 곡은 특정 스타에 의존하지 않고도 장기 체류에 성공했다.

Saja Boys 역시 같은 맥락에 있다. Andrew Choi와 Kevin Woo, Danny Chung 등 다양한 배경의 크리에이터가 참여한 ‘Soda Pop’, ‘Your Idol’은 모두 Top10에 안착했다. 이들은 특정 멤버의 개인적 서사보다, 프로젝트가 추구하는 ‘사운드 아이덴티티’를 전면에 내세운다.

흥미로운 점은 두 프로젝트 모두 한국계 창작자의 비중이 높다는 것이다. 이는 K팝 산업이 축적한 협업 시스템과 글로벌 네트워크가 이제 팝 시장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았음을 시사한다.

사진=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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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제작의 플랫폼화

프로젝트형 모델은 음악 산업을 세 가지 측면에서 바꾼다.

첫째, 제작사 구조의 재편이다.

소속사 중심의 고정 계약이 아니라, 프로젝트 단위로 인력이 순환하는 방식이 확산된다. 이는 인력 운영의 유연성을 높이고, 곡 단위 수익 분배 체계를 정교하게 만든다.

둘째, 매니지먼트의 역할 변화다.

과거 매니지먼트가 아티스트의 일정과 이미지를 관리했다면, 이제는 프로젝트의 브랜드와 네트워크를 관리하는 쪽으로 전환된다. 이는 A&R 팀을 넘어 프로덕트 매니저에 가까운 역할이다.

셋째, 팬덤 경제의 전환이다.

특정 인물 중심이 아니라 브랜드형 팬덤이 형성되면, 굿즈·공연·콘텐츠 확장은 개인 스타 리스크에서 자유로워진다. 이는 장기적으로 산업 안정성을 높인다.

 

스타 중심 신화의 균열

프로젝트형 모델은 대중문화의 소비 방식에도 변화를 일으킨다. 대중은 스타 개인의 일대기를 따라가는 대신, 브랜드형 프로젝트가 제공하는 세계관을 소비한다. 이는 전통적인 ‘아이돌 스타 시스템’의 신화를 흔들 수 있다.

스타 개인의 이미지 관리가 산업을 좌우하던 시기에서, 이제는 체계와 네트워크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차트 속 낯선 이름들은 단순히 새 얼굴이 아니라, 새로운 제작 시스템의 신호탄이다.

체계의 힘이 만든 히트

이번 주 Billboard Global 200은 음악 산업의 지형 변화를 명확히 보여준다. HUNTR/X와 Saja Boys는 고정된 스타가 아닌, 유연한 체계와 네트워크를 통해 글로벌 차트 정상에 올랐다. 이는 프로젝트형 모델이 단순한 실험이 아니라, 본격적인 산업 트렌드로 자리 잡았음을 의미한다.

스타 개인의 힘에 의존하는 방식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그와 동시에 체계 중심의 히트 생산이 새로운 축으로 등장했다. 음악은 더 이상 특정 인물의 서사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오늘날의 히트곡은 브랜드와 네트워크, 그리고 제작 시스템의 산물이다.

차트 속 낯선 이름들은 그 자체로 메시지다. 음악 산업은 지금, 이름보다 체계를 소비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