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코트 아래 짧은 하의, 해리스 트위드 옆 시스루…코르셋·타탄·젠더 혼합을 다시 조정한 FW26
[KtN 박인경기자]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ne Westwood) FW26은 겨울옷의 무게를 아우터에 몰고 하체는 과감하게 비웠다. 체크 코트와 각진 재킷은 허벅지까지 내려오지만 안쪽에는 브리프형 하의와 스타킹, 짧은 팬츠가 놓였다. 두꺼운 울과 맨다리, 코르셋과 드레이프, 남성복 수트와 굽 높은 구두가 한 착장에 섞였다. 새로운 품목을 꺼내기보다 길이와 노출 위치를 바꿔 웨스트우드가 오랫동안 다뤄온 복식 문법을 다시 짠 컬렉션이다.
긴 아우터와 짧은 하의의 조합은 FW26 캠페인에서 가장 자주 반복된다. 체크 코트는 어깨와 상체를 넓게 덮고, 허벅지 아래에는 스타킹과 맨다리가 이어진다. 두꺼운 외투와 짧은 하의를 함께 입으면서 상체의 부피는 커지고 하체의 선은 길게 드러난다. 미니스커트와 롱코트를 맞추는 익숙한 겨울 스타일보다 노출 범위가 넓고, 안에 입은 옷과 속옷의 구분도 뚜렷하지 않다.
아우터는 단순히 길어지지 않았다. 어깨와 소매, 몸판에 여유를 두고 허리 아래까지 크게 떨어뜨렸다. 두꺼운 체크 소재와 넓은 칼라가 상체를 감싸는 동안 하의의 면적은 줄었다. 코트 안쪽을 여러 겹의 옷으로 채우는 일반적인 겨울 레이어링과 달리, 바깥옷의 부피만 남기고 다리 주변은 비우는 방식이다.
부피 차이는 인체 비례까지 바꾼다. 상체가 넓고 길어질수록 다리는 가늘고 길게 강조된다. 신체를 자연스럽게 보정하기보다 위아래의 차이를 크게 벌려 낯선 윤곽을 만든다.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코르셋과 크리놀린, 비대칭 재단을 통해 다뤄온 과장된 신체 비례가 현대적인 아우터와 짧은 하의로 옮겨졌다.
오버사이즈 재킷과 케이프형 아우터도 같은 흐름을 따른다. 넓은 소매와 비틀린 밑단은 상체 주변에 여러 겹의 주름을 만들고, 안쪽에는 짧은 하의와 스타킹을 배치했다. 재킷과 셔츠, 팬츠가 순서대로 이어지는 수트의 기본 구성을 해체하고 아우터와 속옷 사이의 중간 단계를 줄였다.
스타킹은 보조 액세서리에 머물지 않는다. 무릎 위까지 올라오는 얇은 스타킹과 무늬 양말은 짧아진 하의와 신발 사이의 빈 공간을 채운다. 팬츠 길이가 줄어든 자리에 색과 질감, 문양을 넣으면서 다리 전체가 스타일링의 중심으로 들어왔다.
검은색이나 짙은 갈색 스타킹은 코트와 재킷의 무게를 아래로 이어 주고, 양말에 들어간 무늬는 단색 수트의 흐름을 끊는다. 신발도 낮고 안정적인 겨울 구두보다 굽이 높거나 앞코가 뾰족한 형태가 두드러진다. 보온과 활동성을 우선하는 계절용 스타일보다 다리의 길이와 각도를 강조하는 연출에 가깝다.
브리프형 하의를 겉으로 드러내는 방식도 여러 착장에서 확인된다. 재킷 아래에 셔츠와 팬츠를 갖춰 입지 않고 짧은 상의와 브리프, 스타킹을 연결했다. 속옷을 그대로 겉옷으로 바꿨다기보다 테일러링 사이에서 감춰지던 부위를 노출해 수트의 순서를 다시 조정했다.
코르셋형 니트웨어도 같은 맥락에 놓인다. 코르셋은 드레스 안에서 허리를 잡는 구조물이 아니라 상의 전면에 드러나는 옷으로 사용됐다. 니트의 유연한 표면 위에 허리와 가슴을 조이는 구조를 더하고, 주변에는 드레이프와 느슨한 주름을 남겼다. 몸을 조이는 부분과 풀어 놓는 부분이 뚜렷하게 나뉜다.
남성복과 여성복을 나누는 기준도 길이와 스타일링에서 흐려졌다. 남성 인물에게 짧은 하의와 스타킹, 굽 있는 신발을 입히고 여성 인물에게는 넓은 어깨의 재킷과 두꺼운 체크 코트를 배치했다. 남성복에 여성적인 장식을 붙이는 수준을 넘어 같은 재킷과 코트가 서로 다른 신체에서 다른 비율을 갖도록 구성했다.
체크 재킷과 검은 코트는 남녀 출연진에게 비슷한 크기와 길이로 적용됐다. 달라지는 부분은 안에 받쳐 입은 옷과 다리의 노출, 신발 높이다. 남성 수트와 여성 드레스를 서로 교환하는 구분보다 재킷·브리프·스타킹·구두를 하나의 공용 옷장 안에서 조합하는 방식에 가깝다.
젠더 구분을 약화한 스타일링은 웨스트우드의 새로운 방향이라기보다 오랫동안 이어온 작업의 연장선에 있다. 브랜드는 펑크와 뉴로맨틱, 역사 복식을 거치며 남성용 재킷의 허리를 조이고 여성용 코르셋을 겉옷으로 꺼내 왔다. FW26은 기존 방식을 길어진 아우터와 짧은 하의, 스타킹 노출로 다시 조절했다.
시스루 소재는 두꺼운 겨울 원단과 나란히 놓였다. 얇은 회색 드레스 아래로 검은 속옷과 팬츠가 드러나고, 투명한 겉감은 허리와 다리 주변에서 길게 흘러내린다. 몸을 가리는 드레스의 길이는 유지하면서 소재의 투명도를 높여 안쪽의 옷까지 한꺼번에 노출했다.
투명한 소재와 해리스 트위드(Harris Tweed)는 계절감과 촉감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트위드는 두껍고 표면이 거칠며 형태를 지탱한다. 시스루는 얇고 몸의 움직임을 따라 흘러내린다. FW26은 두 소재를 한 컬렉션 안에 두고 겨울옷을 하나의 무게와 질감으로 정리하지 않았다.
두꺼운 코트 아래 맨다리를 드러내는 방식도 같은 대비를 만든다. 아우터는 한겨울의 보온성과 무게를 떠올리게 하지만 하의는 계절의 보호 기능과 거리가 멀다. 실제 일상복의 완성도보다 캠페인 안에서 소재와 신체의 차이를 크게 벌리는 데 비중을 둔 스타일링이다.
봉제선과 마감도 숨기지 않았다. 드레스와 드레이프 의상에서는 이어 붙인 선과 가장자리, 속에 받친 옷이 밖으로 드러난다. 완성된 옷의 외형만 남기지 않고 제작 과정에서 안쪽에 놓이는 요소를 표면으로 꺼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반복해 온 뒤집힌 구조와 미완성 마감이 FW26에서도 이어졌다.
색은 검정과 차콜, 네이비가 중심을 잡는다. 빨강과 분홍, 주황, 청색은 셔츠와 타탄, 프린트, 스타킹에 나뉘어 들어갔다. 밝은 색을 착장 전체에 넓게 펼치기보다 어두운 아우터 안쪽이나 소매, 다리 주변에 제한적으로 배치했다. 벨로니 쇼룸의 금색과 붉은색이 강한 만큼 의상에서는 어두운 색의 면적을 넓게 유지했다.
타탄은 재킷과 코트, 팬츠에 사용됐지만 전통적인 영국식 수트로 정리되지 않았다. 분홍 셔츠와 짧은 팬츠, 스타킹과 함께 입거나 서로 다른 크기의 체크를 겹쳤다. 패턴 자체의 상징성보다 착장 안에서 색과 길이를 나누는 기능이 커졌다.
해리스 트위드와 타탄, 코르셋, 비대칭 테일러링은 비비안 웨스트우드를 대표해 온 요소다. FW26 캠페인에서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 어휘를 찾기는 어렵다. 변화는 익숙한 요소를 배치한 위치에서 나타난다. 코르셋은 상의 밖으로 나오고, 스타킹은 치마 아래에서 벗어났으며, 아우터는 길어지고 하의는 속옷에 가까워졌다.
반복된 브랜드 요소가 안정적인 정체성을 유지하는 대신 아카이브 의존도도 높였다. 타탄과 코르셋, 젠더 혼합만으로는 이전 시즌과 FW26의 차이를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캠페인 연출과 출연진의 개성이 더해지면서 새롭게 보이는 부분도 있지만, 옷만 떼어 놓으면 기존 웨스트우드 컬렉션에서 익숙한 구성이 적지 않다.
브리프와 스타킹을 전면에 내세운 스타일이 실제 겨울 시장에서 어느 정도 확산될지도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 캠페인에서는 노출이 강한 착장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실제 판매용 컬렉션의 품목 구성과 주문 비중은 공개되지 않았다. 이미지에서 두드러진 스타일과 매장에서 중심이 되는 상품이 같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비비안 웨스트우드 FW26은 겨울 패션의 품목을 새로 만들기보다 옷을 입는 순서를 바꿨다. 긴 코트와 짧은 하의, 두꺼운 트위드와 시스루, 남성복 재킷과 브리프·스타킹을 한 착장에 묶었다. 계절성과 실용성보다 신체를 어디까지 가리고 어느 부분을 드러낼지에 무게를 둔 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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