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르트의 자기확신에서 디지털 시스템의 승인으로…‘햄릿’과 ‘올드보이’를 지나 도착한 우리 시대 인간의 조건
[KtN 신미희기자]은행 애플리케이션이 문재의 지문을 거부한다. 손가락은 문재의 몸에 붙어 있고, 문재도 자신이 누구인지 안다. 그러나 시스템의 판정은 다르다. 인증에 실패한 순간 문재의 확신은 아무런 권리를 만들지 못한다.
데카르트는 모든 것을 의심한 끝에 생각하고 있는 자기 자신만큼은 의심할 수 없다고 봤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명제는 존재의 근거를 외부의 권위가 아니라 사유하는 주체 안에 놓았다. 세계가 거짓일 수 있어도 의심하고 생각하는 내가 있다는 사실은 지워지지 않는다.
넷플릭스 시리즈 ‘들쥐’는 해당 명제를 뒤집는다. 문재는 생각하고 기억하며 자신이 누구인지 확신한다. 사회 안에서 문재의 확신은 존재를 보증하지 못한다. 지문과 계좌, 전화번호와 주거 기록이 문재를 부정하면 생각하는 주체도 자기 삶에 접근할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