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한 여성을 둘러싼 직물과 식기, 찻주전자와 실내 풍경…1983년 연필 드로잉에 담긴 관찰과 일상의 밀도

[KtN 박준식기자]한 여성이 의자에 앉아 정면을 바라본다. 배는 불러 있고 한 손은 의자 등받이에 걸쳤으며, 다른 손에는 작은 천이나 물건이 쥐어져 있다. 발에는 편안한 신발을 신었다. 왼쪽에는 여러 겹의 직물이 쌓여 있고 음식이 담긴 접시가 놓여 있다. 오른쪽에는 과일과 찻주전자가 보인다. 벽에는 작은 그림과 시계가 걸렸다. 유리 스탄벡 쉬가예프(Yuristanbek Shygaev)의 1983년작 ‘림마(Rimma)’는 한 사람의 얼굴만 떼어낸 초상이 아니다. 인물이 살아가는 실내와 생활의 흔적을 함께 그린 드로잉이다.

유리 스탄벡 쉬가예프(Yuristanbek Shygaev), ‘림마(Rimma)’, 1983, 종이에 연필, 50×40㎝, 작가 소장.

작품의 중심은 림마다. 얼굴은 비교적 세밀하게 그렸지만 표정을 극적으로 만들지는 않았다. 머리카락은 가운데를 나눠 뒤로 묶었고, 눈과 코, 입은 짧고 절제된 선으로 잡았다. 시선은 관람자를 향하는 듯하면서도 정확히 마주치지는 않는다. 웃음도 긴장도 크게 드러나지 않는 얼굴이다.

몸의 자세에서는 생활의 무게가 먼저 느껴진다. 등을 곧게 세워 정식으로 포즈를 취하기보다 의자에 몸을 맡기고 앉았다. 오른팔은 자연스럽게 옆으로 벌어지고 손목은 등받이 위에 놓인다. 왼팔은 아래로 내려오고, 두 다리는 나란히 바닥을 딛는다. 임신으로 불러온 배는 옷의 윤곽 안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쉬가예프는 배를 과장하지 않는다. 모성을 상징하는 특별한 자세를 취하게 하지도 않았다. 임신한 몸은 작품의 중요한 사실이지만 인물 전체를 설명하는 단 하나의 표지가 되지는 않는다. 림마는 임신이라는 상태를 보여주기 위해 배치된 인물보다 자신의 생활공간에 앉아 있는 한 사람에 가깝다.

1983년의 쉬가예프는 현실을 직접 관찰하고 기록하는 작업과 조형언어에 대한 탐색을 함께 이어가고 있었다. 초기 그래픽 작업에서 사람과 마을, 생활공간은 중요한 소재였다. 눈앞의 현실을 충실하게 바라보면서도 인물 하나를 고립시키기보다 주변의 사물과 공간까지 작품 안으로 끌어들였다.

‘림마’에서는 그런 태도가 유난히 선명하다. 인물만 남기고 배경을 지웠다면 전통적인 인물 습작에 가까워질 수 있었다. 쉬가예프는 반대로 주변을 적극적으로 채웠다. 직물과 접시, 음식과 과일, 커튼과 가구, 찻주전자까지 한 사람의 주위에 촘촘하게 놓았다.

왼쪽 공간의 밀도는 특히 높다. 여러 장의 직물이 선반 위에 겹겹이 쌓여 있고, 표면마다 서로 다른 무늬가 들어간다. 굵은 줄무늬와 점, 반복되는 장식이 연필선의 방향을 달리하면서 천의 질감을 구분한다. 아래쪽에 놓인 직물에서도 문양이 이어진다.

직물을 단순한 배경 장식으로 처리하지 않았다는 점이 눈에 들어온다. 쉬가예프는 천의 접힌 방향과 무늬를 상당한 밀도로 그렸다. 인물의 옷이 비교적 넓고 단순한 면으로 남아 있는 것과 대비된다. 림마의 몸 주변으로 생활의 물성이 겹겹이 쌓이는 구조다.

탁자 위의 접시와 음식도 같은 역할을 한다. 작은 접시 하나를 그리는 데도 가장자리와 내용물, 그림자를 구분했다. 뒤편에는 또 다른 그릇이 놓여 있고 오른쪽 선반에는 둥근 과일 여러 개가 모여 있다. 바닥에는 찻주전자가 놓였다.

찻주전자는 작품 아래쪽에서 예상보다 큰 비중을 차지한다. 둥근 몸통과 길게 뻗은 주둥이, 손잡이가 선명하다. 인물의 발과 가까운 위치에 놓이면서 화면 아래쪽의 빈 공간을 채운다. 주전자의 둥근 형태는 림마의 불러온 배와 느슨하게 호응하고, 직선이 많은 가구와 바닥 사이에 곡선을 더한다.

여기에서 사물을 곧바로 상징으로 읽을 필요는 없다. 주전자와 음식, 직물은 우선 림마가 생활하는 공간에 놓인 물건들이다. 쉬가예프는 일상적인 사물에 특별한 의미를 선언하기보다 한 사람의 삶이 어떤 물건들 사이에서 이어지는지를 세밀하게 남겼다.

인물과 사물의 관계는 선의 밀도로도 나뉜다. 림마의 얼굴에는 필요한 만큼의 선만 들어간다. 머리카락과 눈매, 코와 입 주변에서 명암을 조절하지만 얼굴 전체를 짙게 덮지는 않았다. 상의와 치마 역시 넓은 부분을 밝게 남겼다.

반대로 주변에는 짙은 연필선이 집중된다. 왼쪽 위의 천과 천장 가까운 공간에는 검은 선이 여러 겹 쌓였고, 탁자 아래와 의자 주변에도 짙은 해칭이 들어간다. 오른쪽 가구의 가장자리와 바닥의 찻주전자에도 명암이 깊어진다.

밝은 인물이 어두운 주변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윤곽선을 과도하게 굵게 만들지 않고 주변의 선을 짙게 쌓아 인물을 앞으로 꺼냈다. 연필 하나만으로 중심과 주변의 시각적 위계를 만든 방식이다.

동시에 배경은 단순히 인물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장치에 머물지 않는다. 작품을 오래 볼수록 시선은 림마의 얼굴에서 주변으로 퍼진다. 왼쪽의 직물과 접시를 지나 커튼과 창문으로 올라가고, 오른쪽의 작은 액자와 과일을 거쳐 다시 아래의 찻주전자로 내려온다.

초상의 중심과 생활의 주변이 분리되지 않는다.

창문은 작품의 깊이를 만드는 중요한 요소다. 커튼 사이로 좁게 열린 창이 보이고 그 안에 건물의 일부가 들어온다. 실내의 사물만으로 닫힐 수 있었던 공간에 바깥이 연결된다. 하지만 바깥 풍경을 넓게 펼치지는 않았다. 림마가 앉아 있는 실내의 밀도를 유지하면서 외부 공간이 존재한다는 정도만 남겼다.

벽에 걸린 작은 액자와 시계도 실내의 시간을 더한다. 모든 물건을 정확한 원근과 비례에 맞춰 정돈하기보다 실제 생활공간을 바라보며 시선이 머문 흔적처럼 배치했다. 왼쪽은 사물이 겹치고 오른쪽은 상대적으로 비어 있으며, 중앙의 림마가 두 공간 사이를 잡는다.

완벽한 좌우대칭은 없다. 오히려 불균형이 작품을 살아 있게 한다. 왼쪽에는 직물과 음식, 탁자와 커튼이 겹치면서 선이 밀집한다. 오른쪽에는 벽과 가구의 넓은 면이 남는다. 림마의 오른팔이 비어 있는 쪽으로 뻗으면서 두 영역을 연결한다.

몸의 윤곽도 공간을 나누는 선으로 작동한다. 머리에서 어깨로 내려온 선은 오른팔을 따라 가구 쪽으로 길게 뻗는다. 반대편에서는 왼팔과 치마의 윤곽이 아래로 내려가 발끝까지 이어진다. 불러온 배의 둥근 곡선은 작품 중앙에서 가장 넓은 여백을 만든다.

인물의 옷에 복잡한 무늬를 넣지 않은 선택도 주변과의 관계를 바꾼다. 왼쪽의 직물은 패턴으로 가득하지만 림마의 옷은 거의 비어 있다. 인물 내부의 선을 줄이면서 얼굴과 손, 몸의 자세가 더욱 분명해졌다. 복잡한 생활공간 속에서 사람을 찾게 만드는 방식이다.

손은 얼굴만큼 중요하다. 오른손은 의자 등받이에 힘을 빼고 놓여 있고, 왼손은 작은 물건을 가볍게 쥔다. 손가락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묘사하면서도 동작을 과장하지 않았다. 일상적인 자세를 그대로 붙잡으려는 관찰이 드러난다.

신발 역시 특별한 장식 없이 구체적으로 그렸다. 발등을 가로지르는 끈과 밑창, 발의 방향이 분명하다. 초상화에서 쉽게 생략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쉬가예프는 발끝까지 인물의 자세를 이어간다. 얼굴만으로 사람을 설명하지 않고 몸 전체가 공간을 차지하는 방식을 기록했다.

‘림마’가 흥미로운 까닭은 여기에서 초상의 범위가 넓어지기 때문이다.

작품 제목은 한 사람의 이름이다. 그러나 쉬가예프가 그린 것은 얼굴만이 아니다. 림마가 앉아 있는 의자, 주변에 쌓인 직물, 먹을거리와 그릇, 창문과 커튼, 벽의 작은 물건까지 함께 들어온다. 한 사람을 그린다는 일이 그 사람이 놓인 생활의 환경까지 그리는 일로 확장된다.

같은 해 제작된 ‘누드’에서도 인체와 주변의 옷, 가구와 생활용품은 한 공간 안에서 함께 움직인다. ‘누드’가 벗은 몸과 비어 있는 옷의 관계를 선과 색으로 압축했다면, ‘림마’에서는 연필선의 밀도를 이용해 한 사람과 생활공간을 훨씬 촘촘하게 묶었다.

두 작품 사이에는 매체의 차이도 크다. 색채 리놀륨 판화에서는 색면과 강한 윤곽, 생략이 중요했다. 연필 드로잉인 ‘림마’에서는 선을 쌓고 지우며 농도를 세밀하게 조절할 수 있다. 쉬가예프는 같은 시기에도 하나의 방식만 고집하지 않고 매체에 따라 현실을 다르게 조직했다.

판화에서 형태를 줄였다면 드로잉에서는 관찰을 늘렸다. 하지만 두 방향이 서로 반대인 것은 아니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결정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탐구에 속한다. ‘림마’의 복잡한 실내에서도 모든 것이 같은 강도로 묘사되지는 않는다. 얼굴과 손, 직물과 찻주전자처럼 필요한 곳에 선을 집중하고 넓은 옷과 벽 일부는 비워두었다.

쉬가예프의 작품 세계가 이후 신화와 원형, 인간과 동물의 관계로 깊어졌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초기 인물 드로잉은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후기의 인물은 현실의 한 사람을 넘어 오래된 기억과 신화적 형상을 품는다. 구체적인 얼굴보다 형상 사이의 관계가 더 중요해지는 작품도 나타난다.

‘림마’에는 아직 그런 신화적 변환이 없다. 한 사람의 이름이 제목으로 남아 있고 얼굴과 몸, 생활공간이 구체적으로 그려져 있다. 후기의 쉬가예프를 초기작에 미리 대입하기보다 현실의 사람을 얼마나 가까이 바라봤는지를 읽는 편이 작품에 더 가깝다.

후기의 상징은 현실을 보지 않은 자리에서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초기의 쉬가예프는 산과 집을 보고, 마을과 사람을 보고, 한 사람의 얼굴과 손을 바라봤다. 실내에 놓인 천의 무늬와 작은 그릇, 신발의 끈까지 선으로 옮겼다. 관찰은 이후 형태를 압축하고 변형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특히 ‘림마’에서는 사람과 주변을 함께 보는 시선이 중요하다. 인물을 이해하기 위해 배경을 지우지 않았다. 오히려 주변을 더 많이 그렸다. 생활공간을 채운 사물들은 림마의 신분이나 성격을 설명하는 표식으로 단순화되지 않고 실제 삶의 밀도를 만든다.

임신한 몸 역시 같은 방식으로 놓인다. 쉬가예프는 배를 감추지 않았지만 과장하지도 않았다. 여성의 얼굴과 손, 옷과 자세를 함께 그리면서 임신을 일상의 몸 안에 놓았다. 작품의 정서는 모성에 대한 찬양이나 극적인 감상보다 한 사람의 현재 상태를 차분하게 바라보는 데 가깝다.

1983년이라는 시점에서 이런 관찰은 쉬가예프의 이후 변화와 연결되는 중요한 바탕이 된다. 현실의 형태를 충분히 익힌 뒤 작가는 점차 사실적 재현의 범위를 넘어갔다. 선은 대상을 설명하는 역할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움직임을 얻었고, 형상은 현실의 외관을 넘어 기억과 신화를 담는 기호로 확장됐다.

그 긴 흐름의 앞쪽에 ‘림마’가 있다.

의자에 앉은 여성 한 사람과 주변의 생활용품을 그린 작은 실내에서 쉬가예프는 이미 인물을 혼자 두지 않았다. 몸 옆에 직물을 쌓고, 음식과 그릇을 놓고, 창을 열어 바깥과 연결했다. 바닥에는 찻주전자를 남겼다. 한 사람의 존재가 주변의 생활과 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수많은 연필선으로 묶었다.

‘림마’는 그래서 얼굴의 닮음을 확인하는 초상에 머물지 않는다. 사람을 둘러싼 시간까지 함께 기록한 초상에 가깝다. 한 여성이 살아가는 공간과 몸의 상태, 주변에 놓인 물건들이 같은 시간 안에 존재한다.

훗날 쉬가예프가 인간과 동물, 자연과 신화를 하나의 조형질서 안에서 만나게 했다면 1983년의 ‘림마’에서는 훨씬 가까운 현실에서 관계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과 사물, 몸과 공간, 실내와 바깥을 분리하지 않고 한 장의 종이 위에 놓았다.

한 사람을 그리기 위해 얼굴만 보지 않았던 시선. ‘림마’에서 쉬가예프의 초기 예술을 읽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그 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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