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물학·경영·SAP·브랜딩을 지나 미술로 이어진 경력
힐리언스에서 만난 방혜자의 ‘빛’…작가의 작품과 기록을 남기는 구조를 고민하다
NFT 열풍보다 ‘아카이빙’에 먼저 주목…아트토큰 창업과 아트큐브 2R2로 확장

홍지숙 아트큐브 2R2 관장·아트토큰 대표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자연광이 색유리를 통과해 내부로 스며드는 공간은 홍지숙 아트큐브 2R2 관장·아트토큰 대표에게 한 작가와의 인연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준식기자] 힐리언스 선마을의 명상동굴에는 방혜자의 빛이 스테인드글라스로 남아 있다. 자연광이 색유리를 통과해 내부로 스며드는 공간은 홍지숙 아트큐브 2R2 관장·아트토큰 대표에게 한 작가와의 인연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홍지숙 관장이 방혜자를 처음 만난 곳도 힐리언스였다. 선마을 증축 과정에 관여하던 시기 한국을 찾은 방혜자가 이곳에서 머물렀고, 두 사람은 작품과 그림, 공간을 두고 이야기를 나눴다. 홍 관장은 작은 체구의 작가가 만들어내는 작품의 힘과 빛에 강하게 끌렸다고 회고했다. 이후 방혜자가 명상동굴을 찾으면서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을 공간에 설치하는 인연으로까지 이어졌다. 

한 작가를 좋아하게 된 개인적인 경험은 시간이 흐르며 한국 미술의 기록과 유통을 바라보는 문제의식으로 넓어졌다. 방혜자는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오랫동안 작업했고 프랑스에서도 활동 기반을 쌓았지만, 홍 관장은 국내 일반 대중이 작가와 작품을 접할 기회는 충분하지 않았다고 기억한다. 좋은 작품이 존재하는 것과 한 작가의 이름과 작업이 사회 안에 오래 남는 일은 별개의 문제였다.

힐리언스에서 처음 만난 방혜자의 빛은 스테인드글라스로 공간에 남았고, 한 작가를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방법에 대한 고민은 아트토큰과 아트큐브 2R2로 이어졌다.
힐리언스에서 처음 만난 방혜자의 빛은 스테인드글라스로 공간에 남았고, 한 작가를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방법에 대한 고민은 아트토큰과 아트큐브 2R2로 이어졌다.

홍 관장의 이력은 처음부터 미술계를 향하지 않았다. 서울대학교에서 미생물학을 공부한 뒤 경영학으로 방향을 옮겼고, 경영정보시스템(MIS)과 인사관리 분야를 거쳐 독일 기업용 소프트웨어 기업 SAP의 HR 모듈 구축과 컨설팅 업무를 경험했다. 이후 브랜드와 기업 전략, 웰니스 분야까지 활동 영역을 넓혔다.

미생물학과 정보시스템, 인사관리, 브랜드는 미술관 운영과 상당히 멀어 보이는 분야다. 홍 관장의 경력에서는 오히려 서로 다른 영역을 연결하는 방식이 반복된다. 시스템을 분석하고 사람과 조직을 이해하는 일에서 브랜드가 전달하는 이미지와 경험으로 관심이 옮겨갔고, 브랜드를 공부하면서 미술을 하나의 소통 언어로 보기 시작했다.

“미술이라는 게 모든 것의 언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브랜드가 기업과 제품의 이미지를 전달한다면 미술 역시 사람과 사회가 감각과 생각을 전달하는 강력한 언어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었다. 미술사 공부가 이어졌고, 우연한 제안으로 직접 그림을 배우면서 관람자의 위치에만 머물던 미술과의 관계도 달라졌다. 

홍지숙 관장은 프랑스에서 방혜자의 작품을 대하는 관심과 국내 일반 대중의 인지도 사이의 차이를 체감했고, 한 작가가 평생 축적한 작업을 보다 많은 사람이 접할 방법을 고민했다. /사진= 홍지숙 아트큐브 2R2 관장·아트토큰 대표   ,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홍지숙 관장은 프랑스에서 방혜자의 작품을 대하는 관심과 국내 일반 대중의 인지도 사이의 차이를 체감했고, 한 작가가 평생 축적한 작업을 보다 많은 사람이 접할 방법을 고민했다. /사진= 홍지숙 아트큐브 2R2 관장·아트토큰 대표   ,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그림은 취미에서 끝나지 않았다. 동료들과 작업을 이어가며 전시에 참여했고 해외에서도 작품을 선보였다. 직접 작업하고 전시를 준비하는 경험은 미술을 바깥에서 바라보는 경영자의 시선과 다른 감각을 남겼다. 작품 한 점이 완성되기까지 필요한 시간과 작가가 오랫동안 하나의 주제를 밀고 가는 과정, 전시장에서 작품이 관객과 만나는 방식까지 몸으로 경험하게 됐다.

힐리언스에서 방혜자를 만난 시기는 이런 경험들이 겹쳐지던 때였다.

방혜자는 홍 관장에게 유명 작가 한 사람 이상의 의미로 남았다. 프랑스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도 한지와 천연안료 등 한국적 재료를 자신의 조형 언어로 발전시키고, ‘빛’이라는 한 주제를 평생 밀고 간 작업 태도는 홍 관장이 작가를 바라보는 기준에도 영향을 미쳤다.

홍지숙 관장의 프랑스 전시 때에도 방혜자가 파리로 나와 지인들을 초대하고 전시를 도왔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홍지숙 관장의 프랑스 전시 때에도 방혜자가 파리로 나와 지인들을 초대하고 전시를 도왔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방혜자와의 관계는 전시장 밖에서도 이어졌다. 홍 관장은 방혜자가 후배 작가를 지원하고 한국 문화를 해외에 알리는 일에도 관심이 컸다고 기억한다. 홍 관장의 프랑스 전시 때에도 방혜자가 파리로 나와 지인들을 초대하고 전시를 도왔다. 두 사람은 전시와 아트페어에서도 인연을 이어갔다. 

작가의 생애와 작품을 가까이서 접할수록 다른 문제가 보이기 시작했다.

좋은 작품이 있다고 해서 작가의 기록이 저절로 남는 것은 아니다. 작품 이미지와 제작연도, 전시 이력, 작가의 글과 발언, 비평, 소장처가 체계적으로 축적되지 않으면 한 작가의 작업세계는 시간이 흐른 뒤 부분적으로만 남게 된다. 생전에 작가를 알고 있던 사람들의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흩어진다.

홍지숙 관장은 당시의 생각을 설명하면서 NFT를 통해 단기간 높은 가격을 만드는 일보다 작품을 아카이빙하고 오랫동안 남기는 구조에 관심을 가졌다고 말했다. /사진= 아트큐브 2R2 전시현장,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홍지숙 관장은 당시의 생각을 설명하면서 NFT를 통해 단기간 높은 가격을 만드는 일보다 작품을 아카이빙하고 오랫동안 남기는 구조에 관심을 가졌다고 말했다. /사진= 아트큐브 2R2 전시장,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홍 관장이 디지털 기술을 미술과 연결하기 시작한 출발에는 바로 이 문제가 자리했다.

2019년 전후 NFT와 블록체인 기술이 세계적으로 빠르게 확산되던 시기, 시장의 관심은 주로 디지털 이미지의 거래가격과 투자 수익에 쏠렸다. 홍 관장의 관심은 조금 다른 곳을 향했다. 좋은 한국 작가들의 작품과 자료를 디지털로 기록하고 작가의 레거시를 남기는 데 블록체인을 활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었다.

홍 관장은 당시의 생각을 설명하면서 NFT를 통해 단기간 높은 가격을 만드는 일보다 작품을 아카이빙하고 오랫동안 남기는 구조에 관심을 가졌다고 말했다. 한국에는 좋은 작가가 많지만 충분한 기록을 남기지 못한 채 작품과 서사가 흩어지는 일이 아쉬웠고, IT 기술을 활용해 이를 보완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홍지숙 관장은 프랑스에서 방혜자의 작품을 대하는 관심과 국내 일반 대중의 인지도 사이의 차이를 체감했고, 한 작가가 평생 축적한 작업을 보다 많은 사람이 접할 방법을 고민했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홍지숙 관장은 프랑스에서 방혜자의 작품을 대하는 관심과 국내 일반 대중의 인지도 사이의 차이를 체감했고, 한 작가가 평생 축적한 작업을 보다 많은 사람이 접할 방법을 고민했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방혜자의 작업은 그 고민을 구체화하는 계기가 됐다. 홍 관장은 프랑스에서 방혜자의 작품을 대하는 관심과 국내 일반 대중의 인지도 사이의 차이를 체감했고, 한 작가가 평생 축적한 작업을 보다 많은 사람이 접할 방법을 고민했다. 작품을 디지털로 기록하고 휴대전화나 TV 같은 일상적인 기기에서도 접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한 생각도 이때 함께 커졌다. 

2021년 설립한 아트토큰은 이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회사 이름에는 당시 급성장하던 블록체인 시장의 언어가 들어갔지만 홍 관장이 바라본 미술과 기술의 관계는 거래에만 머물지 않았다. NFT 전시와 디지털 콘텐츠 제작을 시작했고, 작가의 작품을 IP로 축적해 미디어 콘텐츠로 확장하는 플랫폼을 운영하는 방향으로 사업 범위를 넓혔다. 

디지털로 출발한 사업이 다시 물리적인 전시 공간으로 이어진 점도 흥미롭다. 아트큐브 2R2에서는 디지털 아트만을 다루지 않는다. 회화와 설치, 전통적 재료를 사용하는 작업부터 미디어 기반 작업까지 함께 전시한다. 기술이 원작을 대체하는 방향보다 실물 작품과 작가의 서사를 관객에게 연결하고, 디지털은 기록과 확장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구조다.

홍지숙  관장은 힐리언스에서 자신의 작업에도 자연과 공간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홍지숙  관장은 힐리언스에서 자신의 작업에도 자연과 공간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홍 관장의 경력을 따라가면 미생물학에서 경영학, IT에서 브랜드, 웰니스에서 미술, 다시 블록체인과 전시공간으로 이어지는 이동이 반복된다. 분야는 계속 바뀌었지만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고 서로 다른 영역을 연결하려는 방식은 남아 있다.

홍 관장은 힐리언스에서 자신의 작업에도 자연과 공간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지를 좋아하고, 자연 속에서 사용되는 색에 익숙해지면서 직접 작업하는 그림에도 선마을의 색과 감각이 스며들었다.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사람인 동시에 직접 그림을 경험한 사람이라는 위치는 미술을 상품이나 콘텐츠만으로 판단하지 않게 만든 배경 가운데 하나다. 

방혜자의 작업 앞에서 시작된 고민도 결국 같은 곳으로 돌아온다. 좋은 작품을 만드는 일과 그 작품이 다음 세대까지 살아남는 일 사이에는 기록과 연구, 전시와 유통이라는 긴 과정이 필요하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NFT 시장의 등락이나 하나의 기술이 성공했는지는 그보다 뒤의 문제였다. 홍 관장이 블록체인에서 먼저 본 것은 작품을 사고파는 새로운 수단보다 작가가 남긴 시간을 기록하는 방법이었다.

힐리언스에서 처음 만난 방혜자의 빛은 스테인드글라스로 공간에 남았고, 한 작가를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방법에 대한 고민은 아트토큰과 아트큐브 2R2로 이어졌다. 홍지숙 관장이 미술 안으로 들어온 과정에는 하나의 직업을 버리고 다른 직업을 택한 단절보다, 과학과 시스템, 브랜드와 공간, 작가와 기술을 차례로 연결해온 시간이 놓여 있다.

저작권자 © KtN (K trendy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