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F]액터스하우스 - 류승룡3
'무빙' 오열부터 '정가네' 침묵까지…류승룡, 액터스 하우스서 털어놓은 속내
번아웃 겪던 베이비부머 류승룡이 제주 올레길에서 찾은 '스스로를 위한 선물'
[KtN 김동희기자] 치열한 자기 탐구 끝에 연기의 정수를 길어 올린 배우 류승룡이 신작 '정가네'를 통해 보여줄 깊은 울림과 대체 불가한 내공에 스크린 안팎의 뜨거운 기대가 모이고 있다.
9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우동 신세계백화점 문화홀에서 열린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액터스 하우스'의 주인공으로 나선 배우 류승룡은 "쉼 없이 자신을 채근하며 달려온 시간 끝에 비로소 스스로에게 선물을 주는 법을 배우고 있다"며 30여 년에 걸친 치열한 연기 인생을 담담히 풀어냈다.
[치열했던 경쟁 세대의 질주와 연기의 시작]
1970년생으로 인구가 가장 많던 베이비붐 세대 끝자락에 태어난 류승룡에게 생존과 경쟁은 일상이었다. 도태되면 끝이라는 불안감 속에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도 발레, 한국무용, 피아노 등 연기에 보탬이 되는 기술이라면 가리지 않고 배웠다. 중학교 시절 국립극장에서 우연히 관람한 연극 '파우스트'의 강렬한 충격은 연극부 진학과 서울예대 연극과 입학, 그리고 '난타' 무대로 이어졌다. 1990년대 작가주의 한국 영화의 전성기를 목격하며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린 그는 미세한 호흡과 눈빛으로 관객과 교감하는 매체 연기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 소진의 위기에서 만난 화두 "더 파면 진짜가 나온다"]
2004년 영화 '아는 여자'로 본격적인 상업 영화 활동을 시작한 초기에는 이국적인 마스크 탓에 강렬하고 거친 배역이 주로 주어졌다. 다양한 인간 군상을 체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경험을 넓혀가던 그는 2010년대에 접어들며 충무로를 대표하는 다작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최종병기 활'을 촬영하던 무렵, 영혼이 소모되고 있다는 깊은 회의가 찾아왔다. 당시 이준익 감독을 찾아가 털어놓은 고민은 연기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이 감독은 "땅을 파면 손가락이 아프지만, 더 깊이 파면 맑은 물이 나온다. 연기도 더 파내려 가야 진짜 정수가 나온다"고 조언했고, 이 말은 '내 아내의 모든 것', '광해, 왕이 된 남자'로 이어지는 거침없는 도약의 엔진이 됐다.
[희극과 비극을 관통하는 본질 "내가 안 믿으면 누가 믿나"]
천만 관객을 모은 '7번방의 선물'부터 최근작인 넷플릭스 '닭강정', 영화 '아마존 활명수'에 이르기까지 류승룡의 코미디는 정교한 계산과 지독한 진심에서 비롯됐다. 지적장애인을 연기하며 희화화를 경계했던 바탕에는 '딸을 목숨보다 사랑하는 아버지라는 단단한 코어'가 있었고, 황당무계한 설정의 코미디물에서도 "배우 스스로 믿지 못하면 관객을 설득할 수 없다"는 연기 철칙을 고수했다. 반면 디즈니+ '무빙' 13회에서 장주원이 흘린 통곡은 13년 전 누나를 먼저 떠나보냈을 때 산처럼 거대했던 아버지가 흘린 눈물의 형상을 가슴에 품어 완성한 장면이었다. 틀에 박힌 표현을 거부하고 인물의 서사 깊숙이 침잠한 결과였다.
['천태만상의 아버지' 넘어 세대를 잇는 가교로]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로 백상예술대상 대상을 거머쥐고, 전날 제21회 서울드라마어워즈 국제경쟁부문 남자연기상을 수상한 직후 부산을 찾은 그는 '아버지 전문 배우'라는 수식어마저 자유로움의 영역으로 확장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천태만상이듯, 정형화된 틀을 깨고 인물 본연의 결을 찾는 과정에서 진정한 자유를 얻었다는 고백이다. 이번 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 - 스페셜 프리미어'에 초청된 김지현 감독의 신작 '정가네' 역시 30년간 단절됐던 형제의 침묵과 관계의 균열을 언어 이전의 감각적인 이미지로 포착해 기대를 모은다.
제주 올레길을 걸으며 비로소 자신을 다독이고 비워내는 치유의 시간을 마주했다는 류승룡은 남은 배우 인생의 지향점을 세대 간의 소통으로 규정했다. 작품을 통해 시대에 유의미한 질문을 던지고 윗세대와 아랫세대를 잇는 든든한 징검다리가 되겠다는 그의 다짐은 치열하게 자신을 파내려 간 끝에 마침내 마주한 거장의 울림이었다.
후원=NH농협 302-1678-6497-21 위대한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