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지향적 감각과 전통 소재의 충돌, 그리고 패션의 새로운 실험
빌링스 게이트 마켓에서 열린 실험적 무대
[KtN 임우경기자] 2025 S/S 런던 패션위크에서 가장 도전적인 컬렉션 중 하나로 평가받은 JW Anderson의 쇼는 빌링스 게이트 마켓(Billingsgate Market)에서 열렸다. 빅토리아 시대부터 이어진 런던의 대표적인 해산물 시장에서 펼쳐진 이번 컬렉션은 브랜드 특유의 아이러니한 유머와 실험적 접근을 극대화한 무대였다.
영국 패션계의 대표적인 도전자로 자리 잡은 조나단 앤더슨(Jonathan Anderson)은 늘 기존의 미적 질서를 깨는 방식으로 디자인을 탐구해왔다. 이번 시즌 역시 이러한 태도가 극적으로 드러났다. 앤더슨은 화려한 요소를 배제하는 대신, 소재의 한정성과 디지털적 조작을 결합하여 패션의 본질적 가치를 재정의하려는 시도를 했다.
기존의 컬렉션과 비교했을 때, 이번 시즌의 JW Anderson은 미래적 감각과 전통적인 수작업 공예 기법이 공존하는 독창적인 균형을 유지했다. 특히 트롱프뢰유(trompe l’oeil) 기법을 이용한 디지털 프린트가 적용된 미니멀한 디자인은 패션이 물질적 한계를 넘어 시각적 차원에서 어떻게 확장될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실험이었다.
▌트렌드 분석 ①: 실험적 미니멀리즘(Experimental Minimalism)과 소재 제한의 미학
이번 시즌 JW Anderson 컬렉션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의도적으로 제한된 소재의 사용이었다.
▶새틴 실크, 캐시미어 니트, 송아지 가죽, 시퀸의 절제된 활용
현대 패션은 다양한 혼합 소재와 과도한 장식적 요소가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지만, 앤더슨은 이를 완전히 배제했다. 극도로 제한된 소재를 선택함으로써, 디자인의 구조와 질감이 더욱 도드라지도록 연출했다. 화려함을 부정하는 듯한 미니멀리즘이지만, 소재의 고급스러움을 극대화하며 절제미를 강조했다.
▶극단적 단순함 속에서 발견하는 디테일의 중요성
미니멀한 실루엣 속에서도 미묘한 텍스처 변주를 통해 깊이 있는 룩을 연출했다. 니트와 새틴 실크의 조합, 시퀸의 제한적 사용은 단순하면서도 정제된 방식으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는 현대 럭셔리가 ‘과시적 소비’에서 벗어나, ‘조용한 럭셔리(Quiet Luxury)’와 같은 감성적 경험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JW Anderson은 이번 컬렉션에서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하면서도, 고급스러움을 유지하는 방법을 탐구하며 새로운 형태의 미니멀리즘을 제시했다.
▌트렌드 분석 ②: 디지털 프린팅과 트롱프뢰유(Trompe l’oeil)의 활용
이번 시즌 JW Anderson의 가장 혁신적인 부분은 트롱프뢰유(trompe l’oeil) 기법을 이용한 디지털 프린트였다.
▶트롱프뢰유의 개념과 패션에서의 활용
트롱프뢰유는 원래 회화에서 사용된 기법으로, 착시 효과를 통해 평면적인 이미지가 입체적으로 보이도록 만든다. 패션에서는 이러한 기법을 사용하여 소재의 물성을 재현하거나, 기존 의상과 전혀 다른 효과를 부여하는 데 활용된다. 이번 시즌 JW Anderson은 옷 자체의 질감과 구조를 디지털 프린팅으로 왜곡하거나 강조하는 방식으로 신선한 시도를 선보였다.
▶디지털 패션과 물리적 패션의 경계를 허물다
트롱프뢰유 프린트가 적용된 미니 원피스는 마치 디지털 렌더링 된 듯한 효과를 주며, 물리적 의상과 가상 의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후드, 버튼, 스트링, 주름 등의 디테일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지만, 디지털 프린트로 표현되면서 ‘착시 효과’를 극대화했다. 이는 패션이 단순한 물리적 형태를 넘어, 가상과 현실이 결합된 하이브리드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시도였다.
디지털 프린트와 트롱프뢰유의 활용은 패션이 더 이상 단순한 소재적 탐구에 머무르지 않고, 시각적 경험과 개념적 실험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트렌드 분석 ③: 스페이스 에이지(Space Age)의 부활과 미래지향적 디자인
이번 시즌 JW Anderson 컬렉션은 1960년대 ‘스페이스 에이지(Space Age)’ 무드의 재해석이 중심을 이뤘다.
▶스페이스 에이지 미니 원피스의 부활
1960년대 피에르 가르뎅(Pierre Cardin), 앙드레 쿠레주(André Courrèges) 등이 선보였던 미래지향적인 실루엣을 재현했다. 구조적이면서도 간결한 미니 원피스는 과거와 현대, 그리고 미래를 연결하는 강렬한 스타일 코드였다. 이를 통해 클래식과 미래적 감각이 공존하는 디자인을 선보이며, ‘레트로 퓨처리즘(Retro-Futurism)’이라는 개념을 다시 소환했다.
▶우주 시대 패션과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만남
디지털 패션의 발전과 함께, 물리적 패션에서도 ‘미래적 감각’을 강조하는 흐름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스페이스 에이지 패션은 단순히 과거의 유행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과 디자인의 융합을 통해 새롭게 해석되고 있다. 이번 컬렉션은 단순히 1960년대 패션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미래’와 ‘현재의 미래’를 혼합하는 실험적 시도로 평가할 수 있다.
▌실험적 패션의 한계와 가능성
JW Anderson은 패션이 물리적 한계를 넘어 가상과 현실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발전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번 컬렉션이 지나치게 실험적이어서, 일반 소비자들에게 접근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JW Anderson은 아트와 패션의 경계를 허물며 독창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지만, 브랜드의 장기적인 방향성이 확립될 필요가 있다.
▌미래 패션을 탐구하는 JW Anderson, 어디로 가는가?
JW Anderson의 2025 S/S 컬렉션은 미니멀리즘과 디지털 혁신, 그리고 미래적 패션이 결합된 실험적 무대였다. 그는 제한된 소재와 착시 효과를 활용해 패션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탐구했다. 하지만 이러한 실험적 패션이 장기적으로 브랜드의 아이덴티티와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실험과 상업성 사이에서 JW Anderson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후원=NH농협 302-1678-6497-21 위대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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