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단 앤더슨, 나이키, LVMH — 정체성을 유지하지 못하는 브랜드는 얼마든지 대체될 수 있다
[KtN 임우경기자] 패션 산업은 항상 이미지로 설명되어 왔다. 디자이너의 이름, 아이코닉한 로고, 단기적인 협업, 매출의 곡선과 주가의 등락이 산업의 건강을 설명하는 언어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 더 조용히 움직이는 것은 '구조'다. 그리고 지금, 2025년의 봄, 구조는 더 이상 뒷단의 언어가 아니다. 구조가 곧 브랜드의 미래를 말한다.
2025년 3월, 로에베, 나이키, LVMH는 각기 다른 상황 속에서 산업의 구조적 전환점을 드러내는 세 개의 장면을 연출했다. 하나는 크리에이티브 리더의 퇴장이고, 다른 하나는 성장 피로의 신호이며, 마지막 하나는 권력 구조의 영속화다.
이 세 사건은 '정체성'이라는 단어 앞에서 서로 닿아 있다. 브랜드는 무엇을 유지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것은 누구의 손에서 운영되는가?
‘디자이너 시대’의 퇴장: 조나단 앤더슨 이후의 로에베
로에베는 2025 FW 컬렉션을 포기했다. 대신 조나단 앤더슨의 주요 아카이브를 중심으로 한 전시를 열었다. 그 조용한 형식은 곧 그가 브랜드를 떠날 것이라는 사실을 예고했고, 며칠 후 그의 퇴장이 공식화되었다.
앤더슨은 로에베를 현대화한 인물이었다. 퍼즐백, 구조적 가죽, 미술과의 융합은 단순한 제품군이 아닌, 브랜드의 언어를 완성한 작업이었다. 그러나 그 언어는 오롯이 그 개인의 감각에 의존해 있었다. 브랜드가 스스로 말하지 못한 결과다.
이제 로에베는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앞으로도 그럴 수 있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후임 디자이너가 누구인지보다 중요한 것은, ‘앤더슨의 시스템이 브랜드 내부에 얼마나 구조화되었는가’이다.
성장 서사의 균열: 나이키는 왜 멈췄는가
나이키는 11.5%의 분기 매출 하락을 예고했다. 이는 단순한 소비 침체가 아니라, 브랜드가 자신의 중심을 잃었을 때 소비자가 가장 먼저 반응한다는 정직한 신호다.
나이키는 지난 10년간 스포츠웨어 브랜드를 넘어서는 데 집중했다. 고가화, 협업, 이미지 중심의 마케팅은 한때 소비자의 충성도를 끌어올렸지만, 그 정체성은 흐려졌다. 러닝화와 농구화라는 기능적 정체성은 희미해졌고, 브랜드는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엘리엇 힐 CEO는 SKIMS와의 협업, 핵심 제품군의 리뉴얼로 회복을 시도하고 있지만, 소비자는 더 이상 단일한 메시지에 반응하지 않는다. 브랜드는 단지 무엇을 만드는가가 아니라, ‘왜 만들고 있는가’를 말해야 할 시점에 있다.
권력의 제도화: LVMH와 아르노 가문
베르나르 아르노는 CEO 정년을 85세로 연장하는 안건을 상정했다. 이미 그의 다섯 자녀는 그룹 내 주요 브랜드의 핵심 직책을 맡고 있다. LVMH는 더 이상 하나의 그룹이 아니라, 설계된 가문 구조다.
이 구조는 단기적으로는 안정성과 연속성을 제공한다. 그러나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세습 가능한 브랜드는 많지만, 세습 가능한 철학은 드물다. 창의성, 예술성, 문화 감각은 전수되는가, 아니면 다시 생성되어야 하는가?
럭셔리가 권력 구조의 상징이 되는 순간, 그것은 시장의 감각과 괴리될 수 있다. 감동은 시스템이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브랜드는 이제 구조로 말해야 한다
패션 브랜드는 더 이상 디자이너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정체성은 인스타그램의 한 장면이나 한 시즌의 협업이 아니라, 운영 시스템과 소비자 커뮤니케이션 구조에서 재생산되어야 한다.
앤더슨의 퇴장, 나이키의 하락, 아르노의 연임은 모두 같은 언어로 말하고 있다. ‘지속 가능한 브랜드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지금 브랜드에게 필요한 것은 또 다른 디자이너가 아니다. 내부 구조와 외부 이미지, 소비자 신뢰와 리더십 구조가 얼마나 일관되게 작동하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일이다.
정체성은 더 이상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이제 구조가 말해야 할 차례다.
후원=NH농협 302-1678-6497-21 위대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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