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화되는 표현의 정치, 민주주의는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KtN 박준식기자] 정치는 언어로 작동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한국 정치 언어는 갈등을 설명하는 도구이기보다, 갈등 자체를 증폭시키는 무기가 되고 있다. ‘내란’, ‘파면’, ‘수괴’, ‘심판’, ‘국가 파괴자’와 같은 표현이 일상적인 정당 논평의 문장을 구성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무엇을 말하고 있으며, 이 언어는 우리 사회에 어떤 파열을 남기고 있는가.

말이 폭력성을 내포할 때, 정치는 감정을 부른다

정치적 담론이 감정의 언어로 치환되는 순간, 논리는 무력화된다. 최근 야당과 시민사회 일부의 언설은 그 수위와 밀도로 보아 ‘수사적 전략’이라기보다는 ‘의도된 규정’에 가깝다. ‘내란 수괴’, ‘계엄 2차 시도’, ‘시체 가방 3천 개’와 같은 표현은 사실 여부를 넘어선 상징적 언어다.

이 언어는 분노를 호출한다. 국민은 정보보다 감정에 먼저 반응하며, 이는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공론장의 기능을 축소시킨다. 말이 날카로워질수록 토론은 실종되고, 정치적 선택은 이성과 근거가 아닌 충성심과 분노에 기반하게 된다.

정당의 메시지가 ‘전쟁의 언어’로 치환되는 사회

특히 정당의 메시지가 ‘전쟁 서사’로 구성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야권 지도부와 국회의원 다수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헌정 회복’이 아닌 ‘내란 진압’이라는 서사로 말한다. 이는 정당의 존재 목적이 ‘정권 교체’가 아니라 ‘국가 구출’이라는 대의로 비약되는 현상이다.

정치의 본령은 경쟁과 설득이다. 그러나 현재의 언어는 설득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이는 일종의 이분법적 선포다. “국민 대 반국가 세력”, “광화문 대 용산”, “헌법 수호자 대 헌법 파괴자”라는 이분법은 정치 공간을 군사적 전선처럼 만든다.

 

언어의 전투화는 곧 공론장의 와해

정치 커뮤니케이션은 단지 발화 행위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의 전제 조건이다. 그러나 지금의 언어는 합의를 추구하지 않는다. 정치적 메시지는 ‘문장’이 아닌 ‘심판 선언’으로서 작동하며, 이는 사회의 수용 능력을 초과한 채 파열음을 낸다.

언론 또한 이 흐름에 무력해지고 있다. 단식, 천막당사, 장외 연설, 성명, SNS 선동에 이르기까지 모든 커뮤니케이션 행위가 언론의 중계와 확산을 통해 ‘현실의 감정화’를 심화시키고 있다. 언어는 더 이상 민주주의의 설계도이기를 멈추고, 분열과 혐오의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

사법 언어 vs 정치 언어의 단절

헌법재판소는 말하지 않고 있고, 정치권은 말을 멈추지 않는다. 이 구조는 국가 시스템의 두 축인 ‘사법’과 ‘정치’ 간 언어의 단절을 보여준다. 헌재의 침묵이 언어의 공백이라면, 정당의 언설은 과잉이다.

결과적으로 지금의 대한민국은 “헌법적 침묵”과 “정치적 과잉”이 공존하는 비정상적 언어 체제에 놓여 있다. 이 간극이 메워지지 않는다면, 헌정의 회복은 단순히 ‘결정’만으로 이뤄질 수 없을 것이다. 사회는 언어로 질서를 되찾아야 하고, 정치는 언어로 민주주의를 복원해야 한다.

이제는 ‘말의 복원력’을 고민해야 할 때

이제 우리는 정치적 언어가 다시 ‘소통의 도구’로 복원될 수 있는가를 질문해야 한다. 극단적 언설이 일상이 된 지금, 민주주의는 정당성뿐 아니라 ‘표현의 질’을 위협받고 있다. 민주주의는 제도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단어를 통해 존립하고, 문장을 통해 공존을 설계한다.

따라서 헌재의 판결 이전에, 정당과 사회는 스스로의 언어를 되돌아보아야 한다. 지금의 언어는 민주주의를 견인하는가, 아니면 파괴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정치의 회복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되찾아야 할 것은 권력 이전에, ‘말의 품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