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의미를 둘러싼 권력과 저항의 재정의
[KtN 박준식기자] 광장은 민주주의의 얼굴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광장은 철거 명령의 대상이 되고, 시민의 정치 표현은 ‘질서 위반’으로 낙인찍히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천막 철거 지시는 단지 행정적 조치가 아니다. 그것은 광장의 의미가 권력의 논리 안에서 어떻게 재해석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며, 민주주의 공간에 대한 국가 권력의 재배치를 상징한다.
‘정치 공간’의 상실, 제도 밖에서 외치는 민주주의
광장은 언제나 제도 정치의 보완장치였다. 4·19, 6월 항쟁, 촛불 혁명까지, 한국 사회는 정치 시스템이 마비될 때마다 시민들이 직접 나서 광장에서 새로운 민주주의의 방향을 제시해 왔다.
그러나 지금의 광장은 더 이상 희망의 공간이 아니다. 여의도에서 밀려난 정당, 지연된 사법 판단에 분노한 시민들이 선택한 이 공간은, 역설적으로 ‘제도로부터 배제된 정치’의 상징이 되었다.
이 상황은 민주주의가 제도로 구현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자, 제도가 시민을 포용하지 못한다는 증명이다. 광장은 남아 있지만, 그것은 기능적 정치 공간이 아닌, 거대 정당조차 임시로 의탁해야 하는 제도 정치의 실패를 드러내는 피난처가 되었다.
권력은 왜 광장을 무력화하려 하는가
오세훈 서울시장이 내린 철거 명령은 이 공간에 대한 정치적 위상 하락을 더욱 극적으로 드러낸다. 행정 집행이라는 이름의 조치는 광장을 물리적 장소로 환원시키고, 그 안의 상징과 목소리를 제거하려 한다.
이는 공간의 정치적 의미를 '불법’이라는 행정용어로 대체하는 시도이며, 공공성과 시민성이 정권의 판단에 따라 배제될 수 있다는 위험한 정치적 신호다.
서울시장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정치는 실내로 돌아가야 한다’는 질서 회복의 명분이다. 그러나 정치는 왜 광장을 버렸고, 시민은 왜 실내로 돌아가지 못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 철거는, 단순한 행정이 아닌 퇴행이다.
공공장소의 사유화: 권력은 공간의 주인이 아니다
서울시는 광화문이 ‘시민 전체의 공간’이기 때문에 일부 정당의 점유는 불법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정치의 역사는 그 공간을 누구의 이름으로, 어떤 목적으로 점유하는지가 정당성의 기준이 되어 왔다.
‘시민 전체’를 대표하는 행정 주체가, 오히려 시민의 정치적 표현을 통제하는 순간, 공공 공간은 실질적으로 국가 권력이 독점하는 사유물로 전락한다.
정치적 점유는 정당성에 의해 평가받아야 한다. 지금의 천막당사는 공당이 내란 위기, 탄핵 지연, 권력의 침묵에 맞서 광장을 선택한 결과물이며, 그 정당성은 단순한 ‘도로법 위반’으로 제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한국 정치, 다시 광장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은 광장을 봉쇄함으로써 권력을 지탱했다. 지금의 정치 권력은 그런 직접적 탄압이 아닌, ‘관리’와 ‘행정 절차’라는 중립적 수사를 통해 같은 결과를 낳고 있다.
이는 포스트 권위주의적 통치 기술이며, 형식은 민주주의를 따르지만 내용은 시민 통제를 강화한다. 가장 두려운 점은 이것이 반복될수록 ‘광장이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은 정치 질서’가 정상화된다는 사실이다.
정치가 광장을 무력화할 때, 시민은 다시 거리로 밀려난다. 정치는 왜 광장을 다시 두려워하고 있는가. 그 두려움은 권력의 불안에서 기인하며, 불안한 권력은 언제나 표현을 먼저 통제한다.
민주주의는 ‘공간을 둘러싼 해석권’에서 시작된다
지금 한국 정치는 공간을 통제함으로써 정치적 긴장을 해소하려 한다. 그러나 정치는 공간을 해석하는 싸움이며, 해석의 다양성을 보장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멈춘다.
광장은 시민이 제도를 감시하는 유일한 물리적 통로다. 그 통로를 철거할 수는 없다. 철거되는 것은 천막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해석력이고, 정치에 대한 시민의 신뢰다.
오세훈 시장의 결정은 이 시대 정치가 또다시 ‘광장 없는 민주주의’를 가능하다고 착각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러나 정치 공간을 제어하려는 권력은 언제나 시민의 기억 속에 퇴장당해 왔다. 광장을 지우려는 정치야말로, 결국 스스로를 지우는 길임을 역사는 명확히 증명해 왔다.
후원=NH농협 302-1678-6497-21 위대한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