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찰률은 오르지만, 고가 경매 시장은 닫혀 있다… 불균형 구조의 이면을 들여다보다
[KtN 임민정기자] 2024년 기준, 경매 시장에서 가장 높은 낙찰가를 기록한 상위 100인의 작가 중 여성은 단 9명에 불과했다. 전년도 11명보다 오히려 감소한 수치다. 여성 작가들의 시장 유입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나, 고가 낙찰과 장기적 시장 포지셔닝에서는 여전히 구조적 장벽이 존재한다. ‘페미니즘 아트’의 확산이나 젠더 다양성의 흐름과 달리, 고가 미술시장은 보이지 않는 위계와 배제를 유지하고 있다.
저가 다수, 고가 소수: 여성 작가 수급의 불균형 구조
2024년 울트라 컨템퍼러리(1974년 이후 출생) 부문에서 낙찰된 상위 10개 작품 중 절반이 여성 작가의 작품이었다. 이는 여성 작가들이 시장에 활발히 진입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신호다. 그러나 판매 가격은 대부분 200만~300만 달러 수준에 머물렀고, 1,000만 달러 이상 낙찰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이는 여성 작가가 ‘시장의 입구’에서는 활발히 유입되지만, ‘고가의 상층부’로 진입하는 구조에서는 철저히 배제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특히 동시대 남성 작가들이 반복적으로 3,000만~6,000만 달러 수준의 낙찰을 기록하는 것과 비교하면 이 격차는 더욱 분명하다.
‘미술사적 위계’가 만든 유리천장
바스키아, 워홀, 피카소, 모네… 고가 미술시장을 지배하는 이름들은 여전히 남성 중심의 정전(正典)이다. 여성 작가들은 ‘소수의 예외적 존재’로만 고가 시장에 접근 가능하며, 그마저도 대부분 사후 재조명된 경우에 한정된다.
이러한 위계는 단순히 경매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큐레이션·비평·미술관 소장·아트페어 배치 등 미술 생태계 전반에 걸친 ‘보이지 않는 장벽’에 기인한다. 여성 작가가 전시장에서 주목을 받아도, 그것이 경매에서의 고가 낙찰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시장이 여전히 ‘남성 정전’ 중심의 평가 프레임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플랫폼과 인프라의 재구성: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가
Avant Arte, Lehmann Maupin, Almine Rech 등 일부 플랫폼은 여성 작가 중심의 에디션 판매를 확대하고 있으며, 디지털 기반의 접근성을 높이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이 여전히 ‘입문자 가격대’에서만 거래된다는 점이다. 평균 단가 600~6,000달러 수준의 저가 유통은 진입 장벽을 낮추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고가 작가로의 성장 사다리를 제공하진 못한다.
경매 하우스에서도 일부 조정이 이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저가 여성 작가 → 중가 남성 작가 → 고가 남성 거장’이라는 위계 구조는 해소되지 않았다. 이 사다리는 ‘재능’보다 ‘관계와 인프라’에 의해 구축된다는 점에서, 단순히 여성 작가 수의 증가만으로는 구조적 전환을 기대하기 어렵다.
제도적 개입의 모색: 시장 외부에서의 변화 동력
몇몇 미술관은 여성 작가의 소장 비중을 공개하고, 젠더 기반 소장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테이트 모던, 구겐하임 등도 ‘젠더 공정성 보고서’를 발표하며 이슈화에 동참했으나, 정작 고가 경매 낙찰가에 영향을 미치는 소장 이전·비영리 기관의 추천 리스트 구성 등에서는 여전히 남성 작가 중심의 네트워크가 작동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성비의 문제가 아니라, 예술 생태계가 어떤 작가를 ‘투자할 만한 작가’로 인정하느냐의 결정 구조와 맞닿아 있다. 공공기관의 소장·추천·전시 순환 구조가 민간 시장과 별도로 작동하지 않는 한, 여성 작가의 고가 진입은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존재의 증가’만으로는 ‘가치의 상승’을 보장하지 않는다
여성 작가의 시장 유입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 희망적인 신호다. 그러나 그것이 곧 ‘고가 작가’로의 전환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존재의 가시성이 늘어날수록, 오히려 시장 구조의 비대칭성이 더욱 선명해지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단순한 수치 증가가 아니라, ‘고가 진입 사다리’를 전면적으로 재설계하는 작업이다. 평가 기준의 다변화, 수장 방식의 재구성, 전시와 경매 간의 연계 시스템 조정 등이 그것이다. 여성 작가의 시장 구조를 단순히 ‘가능성’으로 호명하기보다, 그 가능성이 작동할 수 있는 구조적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오늘의 예술시장에 주어진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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