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명: In the Beginning 9
[KtN 임민정기자] 파란 물결이 스며든다. 미세한 입자의 떨림과 금빛 잔향이 어우러진 화면은 마치 세계가 막 태동하는 순간을 응축한 듯한 긴장감을 품는다. 허은선(HUH EUN SUN)의 In the Beginning 9는 시간의 근원, 존재의 출발점에서 발화하는 감각의 움직임을 시각화한 작품이다.
창작의 배경과 영감의 원천
In the Beginning 9는 말 그대로 ‘시작’에 대한 작가의 내면적 사유를 응축한 작업이다. 허은선은 인간의 감각이 처음 깨어나는 찰나의 순간, 감정과 물질이 아직 분리되지 않은 원초적 시간으로 회귀하고자 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존재가 형체를 갖기 전, 감각과 물질이 마주치며 생성되는 파장을 표현하고 있다.
특히 이 시리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푸른 색채는 단순한 색의 선택이 아니라, 감각의 밀도와 정서를 동시에 담아내는 매개다. 푸른색은 세계의 맨 처음을 상징하며, 허은선에게 있어 ‘감각의 기원’이자 ‘존재의 출현’이다.
작품 제목의 함의
In the Beginning 9는 시리즈의 아홉 번째 작품으로, ‘태초(In the Beginning)’라는 제목은 물리적 시간 이전의 감각적, 존재론적 출발을 상징한다. 작가는 “감각은 시작의 조건이며, 물질은 흔적을 남긴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감각의 맨 앞단에서 생성되는 형태들을 화면 위에 얹는다. 이로써 관객은 시각적 형태 이전의 상태를 직면하게 된다.
작품 구성과 구도적 특징
색의 흐름: 화면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짙은 코발트 블루는 물질이 아닌 감각의 파장으로 읽힌다. 점진적으로 번지는 물감의 결은, 마치 파문처럼 퍼지며 내면의 떨림을 자극한다.
금박의 흔적: 은은하게 반사되는 금박의 미세한 입자는 화면에 감각의 시간성을 부여하며, 기억과 감정의 잔향을 상징한다.
좌측의 물결 질감: 작품 좌측 상단에 보이는 물결무늬는 실제 물리적 흔적처럼 보이지만, 이는 감각의 반복된 떨림이 남긴 시각적 음영이다. 이는 마치 공명하는 듯한 시각적 리듬을 형성하며 관객의 심박을 은밀하게 자극한다.
재료와 기법의 독창성
허은선은 이 작품에서 ‘mixed et feuille d’or’ 기법, 즉 혼합재료와 금박을 사용하여 시간성과 감각의 층위를 구성한다. 물과 안료의 조합은 색의 번짐을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유도하고, 금박은 그 위에 고정된 흔적을 남긴다.
그녀의 회화는 계획된 조형이 아닌, 감각의 흐름에 따라 생성된다는 점에서 독창적이다. 이는 동양의 수묵화적 여백과도 통하며, 색과 질감, 흔적이 공존하는 화면은 정제된 감각 실험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허은선의 예술 세계
In the Beginning 9는 허은선이 지난 수년간 일관되게 추구해온 ‘감각의 흔적’이라는 테마의 결정체다. Dancing with Silence 시리즈에서 ‘사라지는 감각의 여운’을 다뤘다면, 이번 작품은 ‘생성되는 감각의 첫 움직임’에 천착하고 있다. 그녀의 작업은 물질성과 감각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회화라는 평면 매체를 시공간적 감각장으로 확장시키는 시도이다.
갤러리 A의 온라인 전시
이번 갤러리 A 온라인 전시는 ‘감각의 생성과 사라짐’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그 중 In the Beginning 9는 시작의 찰나, 감각이 형체를 이루기 직전의 순간을 포착하며, 전시 전체의 주제를 시각적으로 열어주는 ‘시발점’으로 기능한다.
허은선의 이 작품은 특히 온라인 전시의 화면 구성에서 강력한 몰입감을 유도하는 시각적 밀도를 지니며, 디지털 공간에서의 감각적 연결이라는 주제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관객과의 정서적 연결과 해석의 여지
이 작품 앞에서 관객은 “내 안의 가장 오래된 감각은 무엇이었을까?”라는 질문을 떠올리게 된다. 푸른 물결은 개인의 기억 속 파편들과 겹쳐지며, 잊혔던 감정의 기원을 자극한다. 감상자는 이를 단순히 시각적 정보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내면과 연결된 감각적 흔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이처럼 In the Beginning 9는 단일한 해석을 강요하지 않는다. 각자가 겪은 삶의 출발점, 내면의 기억, 무의식적 감각을 되짚어보게 하는 열린 구조를 갖는다.
작품명: In the Beginning 9
작가: 허은선 (HUH EUN SUN)
크기: 100x80cm
재료: 혼합 기법 및 금박(Mixed et feuille d'or sur toile)
제작 연도: 2021년
가격: 5,200
작가 노트 요약:
“감각은 기억보다 먼저 도착한다. 나는 감각이 형체를 이루기 전, 그 떨림의 결을 남기고 싶었다. In the Beginning 시리즈는 존재의 기원을 묻는 작업이며, 내면의 가장 조용한 시작점을 들여다보는 통로다.” – 허은선(HUH EUN SUN)
In the Beginning 9는 허은선 회화의 내적 철학을 가장 응축된 형태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감각, 흐름, 흔적, 존재의 출현이라는 테마를 고유한 시각언어로 풀어낸 이 작업은, 갤러리 A 온라인 전시의 감각적 문을 여는 시작점이자, 관객과 예술이 가장 원초적인 층위에서 만나게 하는 통로다.
후원=NH농협 302-1678-6497-21 위대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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