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금융 본질 경쟁력을 둘러싼 산업 패러다임 전쟁
[KtN 박준식기자] 금융은 산업 구조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성장 동력이 약화된 한국 경제에서 자본시장 개혁의 본질은 무엇인가. 최근 금융위원회가 내놓은 '증권업 기업금융 경쟁력 제고방안'은 단순한 규제 정비를 넘어 증권업 전체 생태계를 재구성하려는 정책적 신호로 해석된다.
외형 성장에 안주해온 국내 증권업계에 대한 금융당국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증권업 본연의 경쟁력이 없는 자본시장은 지속가능하지 않으며,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지 못하는 금융업은 구조적 전환 없이 생존할 수 없다는 경고다.
외형성장의 역설, 증권업 구조적 취약성
한국 증권업은 지난 10년간 외형적 성공 모델로 평가받아 왔다. 종합금융투자사업자(종투사)의 자기자본은 2012년 22조원에서 2024년 66조원으로 세 배 넘게 확대됐다. 그러나 이 성장은 부동산PF, 단기 유동성 운용, 채무보증 등 특정 산업군과 자산군에 대한 편중된 구조 위에 세워졌다.
국내 종투사의 총자산 대비 모험자본 비중은 2.23%에 불과하다. 수익구조 역시 IB업무 수익 중 절반 가까이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채무보증에 치중돼 있다. 이는 글로벌 투자은행(IB)이 기업금융 전반에 걸쳐 장기적 자금 공급과 시장 신뢰 구축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해온 방식과는 전혀 다른 궤적이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이런 구조적 취약성을 지적하며 "우리 경제가 성숙기에 접어든 지금, 자본시장 발전의 열쇠는 증권업 본연의 기업금융 경쟁력에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자금 공급자의 정체성이 무엇인가를 묻는 근본적 질문이다.
글로벌 IB와 국내 증권업, 격차의 본질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자산운용과 기업금융 기능을 유기적으로 결합해 장기 자산 축적과 리스크 관리 역량을 강화해왔다. JP모건, 골드만삭스 등은 자기자본 대비 모험자본 운용 비율을 10% 이상 유지하며, M&A, 채권, 주식, 벤처투자 등 기업금융 풀라인 전략을 통해 글로벌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반면 한국 증권업은 IB업무가 사실상 부동산PF 채무보증과 전단기 투자 중심으로 왜곡되었다. IB수익 중 채무보증 비중이 48%를 넘어서면서, 기업금융 본연의 리스크 감내와 시장지원 기능은 약화되었다. 이는 글로벌 IB와의 경쟁에서 구조적 격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정책적 전환, 종투사 제도개편의 구조
금융당국은 이번 '증권업 기업금융 경쟁력 제고방안'을 통해 산업구조 개편의 방향을 구체화했다. 핵심 전략은 기업신용공여 확대, 모험자본 공급 의무화, IMA 제도 구체화, 해외진출 인센티브 강화 등이다. 이는 기업금융 기능을 복원하고 증권업이 단기 수익 모델을 넘어 본질적 금융업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구조적 인센티브를 강화한 설계로 해석된다.
기업금융 생태계 복원 없이는 미래 없다
이번 제도개선은 시작일 뿐이다. 한국 증권업의 생존 조건은 결국 내부 혁신과 구조 전환 역량에 달려 있다.
기업 선별 역량과 리스크 감내 문화 구축 없이는 글로벌 자본시장 경쟁이 불가능하다. 해외사업 확장과 글로벌 자산군 운용 체계 구축은 필수적 과제다. 투명하고 책임 있는 금융업 수행을 위한 내부 통제 고도화가 무엇보다 시급하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기업의 옥석을 가려 투자자와 연결하고, 위험을 감내하며 자금을 공급하는 금융업 본연의 기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제 증권업의 경쟁력은 자산 규모나 외형이 아니라, 금융업 본질로서의 구조와 역량이 될 것이다. 한국 자본시장은 숫자가 아니라 구조로 경쟁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후원=NH농협 302-1678-6497-21 위대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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