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의결 제도의 본래 취지와 괴리된 현실… 자영업자와 플랫폼 사이, 공정의 균형이 무너졌다
[KtN 최기형기자] 4월 11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배달의민족과 쿠팡이츠가 동의의결을 신청했다. ‘무료 배달’이라는 과장 광고와 경쟁 플랫폼보다 낮은 가격을 강요한 ‘최혜대우’ 조항으로 조사를 받는 가운데 제출된 신청이다. 공정위는 양사로부터 받은 자진 시정 방안을 검토 중이며, 법 위반 여부를 판단하기에 앞서 사건 종결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동의의결은 본래 사업자의 자율적인 개선 의지를 촉진하고 행정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제도다. 그러나 플랫폼 시장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한 위법 행위와 미흡한 피해 회복 노력은, 이 제도가 사실상 제재 회피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우려를 키우고 있다. 배달앱을 운영하는 기업들이 자정 노력보다는 형식적인 절차로 위기를 모면하려 한다는 비판은, 플랫폼 경제의 구조적 불균형과 직결된다.
배달의민족과 쿠팡이츠, 가격지배력 행사와 책임 회피의 구조화
배달의민족은 포장 주문에도 6.8%의 수수료를 부과하고 있으며, 쿠팡이츠는 입점 음식점에 경쟁사보다 가격을 낮추라는 요구를 지속해왔다. 쿠팡이츠의 이 같은 ‘최혜대우’ 요구는 과거 오픈마켓 사업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어 2022년 공정위 시정조치를 받은 바 있다. 반복되는 문제 발생은 단순한 실수가 아닌 구조적 관행임을 시사한다.
‘무료 배달’이라는 표현 또한 명백한 마케팅 전략의 일부였으며, 소비자에게 무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비용은 음식점과 배달기사에게 전가되었다. 플랫폼 기업들은 이를 통해 광고 효과를 극대화하면서도 비용 부담은 회피하는 방식으로 시장을 지배해왔다. 결과적으로 소비자는 정확한 정보에 기반한 선택을 할 수 없었고, 입점업체는 수익성 악화를 감수하면서도 플랫폼 종속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사회적 대화 기구에 참여한 이후에도 쿠팡이츠는 구체적인 개선안을 제시하지 않았으며, 배달의민족은 자영업자 단체와의 면담조차 회피한 채 농성장을 외면해왔다. 공정위 조사 이후에도 공식적인 사과나 실질적인 피해 회복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자발적인 시정 의지가 실질적으로 결여된 상황으로 평가된다.
동의의결은 기업에 면책 특권을 주는 제도가 아니다
동의의결은 법 위반 여부를 묻지 않고 사건을 종결할 수 있기 때문에, 기업이 실질적인 개선 없이 사안을 넘기는 방식으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 특히 플랫폼이 가격결정권과 노출 알고리즘을 독점하고 있는 구조에서는, 자율 시정만으로는 시장 공정성을 회복하기 어렵다.
공정위가 배달앱 기업들의 동의의결을 수용할 경우, 플랫폼 권력에 대한 실질적 제재가 불가능해지고, 유사한 불공정행위가 반복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책적 후퇴로 간주될 수 있다. 입점업체와 소비자 모두에게 구조적인 피해가 발생한 상황에서, 공정위가 자율 규제에 의존하는 것은 법 집행 기관으로서의 책무를 회피하는 행위로 비춰질 수 있다.
자영업자 단체는 지난 2월부터 배달의민족 본사 앞에서 장기 농성에 돌입해 수수료 구조와 배달비 문제에 대한 실질적인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국회 또한 쿠팡이츠와 입점업체, 배달노동자가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를 중재했지만, 실효성 있는 결과는 도출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동의의결 수용은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기보다는 문제를 은폐하는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다.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 자율 아닌 구조 개입이 필요하다
플랫폼은 단순한 기술 기업이 아니다. 가격 설정, 광고 노출, 수수료 구조, 계약 조건 등 시장의 핵심 메커니즘을 설계하는 실질적 권력의 중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랫폼 기업은 여전히 ‘중개자’라는 정체성을 내세우며 책임을 분산하고 있다. 한국의 플랫폼 규제가 여전히 사후적 조정과 자율 시정에 의존하고 있는 점은, 이러한 권력 집중을 견제하지 못하는 결정적 이유다.
배달앱 기업들의 시장지배력은 입점업체의 자율성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으며, 이는 곧 소비자 선택의 왜곡과 시장 경쟁의 위축으로 이어진다. 자율 규제는 시장에 일정한 윤리적 기준을 부여할 수는 있으나, 반복적 불공정행위와 권력 집중이 구조화된 상태에서는 한계가 명확하다. 특히 가격을 통제하고 비용을 외부화하는 플랫폼 모델은 규제의 대상이 되어야 하며, 단순한 시정조치 이상의 제도적 재설계가 필요하다.
공정위의 판단은 시장의 구조를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
배달의민족과 쿠팡이츠의 동의의결 신청은 플랫폼 시장에서 ‘공정’이라는 개념이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사례다. 공정위가 이 신청을 수용할 경우, 규제 당국이 실질적 권력자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시그널이 될 수 있으며, 자영업자와 소비자의 권리 보장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자율’이라는 미명 하에 반복되는 위법 행위의 면죄부가 아니라, 실질적인 피해 회복과 구조적 개선을 담보하는 제도적 개입이다. 플랫폼 경제에 요구되는 공정은 선택적 도덕성이 아니라 제도적 정의의 문제이며, 공정위가 내릴 판단은 향후 한국 플랫폼 생태계의 방향을 결정하는 기준점으로 작용하게 된다.
후원=NH농협 302-1678-6497-21 위대한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