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이후의 이미지, 구조가 기준이 된 시대

THE FACE IN SALAM 디지털 아트, 작가 Michael PARK.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THE FACE IN SALAM 디지털 아트, 작가 Michael PARK.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임민정기자]디지털 아트가 남긴 가장 분명한 흔적은 새로운 형식이 아니다. 기술도, 플랫폼도 아니다. 디지털 아트가 남긴 것은 이미지를 대하는 기준의 변화다. 무엇을 그렸는가보다 어떻게 구성되었는가를 먼저 묻는 태도, 감상의 결과보다 인식의 과정을 중시하는 시선이 정착됐다. 이 변화는 특정 장르 안에 머물지 않는다. 시각문화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회화와 사진, 영상은 오랫동안 재현의 문제를 중심으로 작동해 왔다. 대상이 무엇이며, 그것이 얼마나 설득력 있게 제시되는지가 중요했다. 디지털 아트 이후, 이 기준은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 이미지의 대상은 중요하지 않다. 화면이 어떤 구조를 갖고 있는지, 시선이 어떻게 이동하는지, 반복과 분할이 어떤 리듬을 만드는지가 판단의 기준이 된다. 이미지는 설명이 아니라 조건이 된다.

디지털 아트가 반복적으로 보여준 것은 이미지의 불안정성이다. 화면 속 형상은 언제든 교체 가능하고, 동일한 구조 안에서 다른 이미지로 대체될 수 있다. 이때 이미지의 개별성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구조가 유지된다는 사실이다. 디지털 아트는 이 구조의 지속성을 전면에 드러냈다. 이미지가 사라져도 구조는 남는다.

〈THE FACE IN SALAM〉은 이 지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얼굴은 여전히 화면에 등장하지만, 더 이상 중심이 아니다. 표정은 고정되지 않고, 형상은 분절되어 있다. 얼굴은 누군가를 대표하지 않는다. 구조 안에 놓인 하나의 이미지로 기능한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얼굴이 아니라, 얼굴이 처리되는 방식이다. 분할과 반복, 배열이 인식의 방향을 결정한다.

디지털 아트 이후의 이미지는 감정 이입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공감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대신 관람자는 화면을 읽는다. 어디서 시작해야 하는지, 무엇을 지나야 하는지, 어디에서 멈추게 되는지를 인식한다. 이 과정에서 감정은 부차적인 요소가 된다. 이해는 감정의 축적이 아니라 구조의 파악으로 이루어진다.

이 변화는 예술 내부에만 머물지 않는다. 광고, 패션, 디자인, 미디어 전반에서 동일한 방식이 반복된다. 이미지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라기보다, 사고를 유도하는 장치로 사용된다. 화면은 설득하지 않는다. 배치한다. 선택을 강요하지 않는다. 경로를 제공한다. 디지털 아트가 먼저 실험한 이 방식은 이미 일상적인 시각 환경의 기준이 되었다.

디지털 아트가 남긴 또 하나의 유산은 시간에 대한 감각이다. 선형적 시간은 약화되고, 반복과 누적이 중심이 된다. 이미지는 한 번 소비되고 사라지지 않는다. 다시 나타나고, 다시 읽히며, 이전의 경험 위에 겹쳐진다. 이해는 단번에 완성되지 않는다. 여러 차례의 노출을 통해 서서히 형성된다. 이는 디지털 이미지가 작동하는 기본 조건이기도 하다.

컨템포러리 미술은 이 변화를 담아낼 수 있는 제도적 틀을 제공했다. 그러나 디지털 아트가 남긴 기준은 컨템포러리라는 범주를 넘어선다. 디지털 아트는 더 이상 특정 장르의 이름으로만 기능하지 않는다. 이미지를 판단하는 하나의 관점이 되었다. 구조를 읽는 시선은 이제 일반적인 감상 태도가 되었다.

이 시리즈에서 살펴본 디지털 아트의 문법은 특별한 경우의 나열이 아니다. 이미 보편화된 조건의 정리다. 격자, 분할, 반복, 시선, 시간, 인간 이미지의 재배치는 모두 하나의 방향을 가리킨다. 이미지는 더 이상 감상의 대상이 아니다. 인식이 형성되는 공간이다.

디지털 아트는 이미지를 새롭게 만들지 않았다. 이미지를 다르게 작동하게 만들었다. 그 차이는 크다. 표현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구조는 앞으로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기술이 바뀌고, 플랫폼이 교체되더라도, 이미지를 읽는 방식은 되돌아가지 않는다.

디지털 아트 이후의 세계에서 이미지는 더 이상 설명되지 않는다. 배열되고, 조직되며, 인식된다. 그 변화는 조용히 진행되었고, 이미 완료 단계에 가깝다. 디지털 아트가 남긴 것은 작품의 목록이 아니다. 이미지를 바라보는 기준이다. 그리고 그 기준은 지금도 화면 위에서 작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