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 삼각형과 꽃잎형 띠를 동심원에 쌓고, 희미한 보조선으로 제작의 시간을 남긴 연필 작업

최혜정 CHOI HyuJung Circle7 –geometry Circle7 –geometry Year 2026 Medium Pencil on paper Dimensions 65x65 Category flat painting
최혜정 CHOI HyuJung Circle7 –geometry Circle7 –geometry Year 2026 Medium Pencil on paper Dimensions 65x65 Category flat painting

[KtN 박준식기자]종이 한가운데 찍힌 작은 검은 점에서 수많은 삼각형이 바깥으로 퍼진다. 촘촘한 흑백 무늬는 둥근 구체처럼 부풀어 오르고, 원의 가장자리에는 꽃잎과 잎을 닮은 형태가 겹겹이 둘러섰다. 완성된 문양 밖으로는 지워지지 않은 방사선과 원호가 희미하게 이어진다.

최혜정(CHOI HyuJung)의 2026년작 ‘Circle7 – geometry’는 65×65cm 종이와 연필로 제작한 평면 작업이다. 중심을 향해 압축된 검은 면과 외곽으로 흩어지는 가는 선을 한 종이에 놓아, 정교하게 짜인 기하학적 구조와 해당 구조가 만들어진 과정을 함께 담았다.

중심의 검은 점을 둘러싼 첫 번째 원에는 가느다란 선이 방사형으로 펼쳐진다. 바깥으로 갈수록 검은 삼각형과 흰 삼각형이 번갈아 이어지고, 각 단위는 원주가 넓어지는 흐름에 맞춰 조금씩 커진다. 같은 무늬를 기계적으로 복제하지 않고 중심과의 거리에 따라 폭과 각도를 조절한 구성이다.

흑백 삼각형의 반복은 평평한 종이에 깊이를 만든다. 중앙의 작은 원은 안쪽으로 들어간 구멍처럼 읽히지만, 주변의 조밀한 무늬는 앞으로 부풀어 오른 반구처럼 다가온다. 시선이 머무는 위치에 따라 오목한 공간과 볼록한 덩어리가 번갈아 나타난다.

검은 면과 흰 면의 대비도 회전감을 키운다. 삼각형의 꼭짓점은 중심과 원주를 번갈아 향하고, 기울기는 원을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시선은 중심점에 모였다가 삼각형의 배열을 따라 외곽으로 밀려난다. 원주를 한 바퀴 돈 뒤에는 다시 가운데로 끌려 들어간다.

중앙의 흑백 패턴은 작품에서 가장 강한 시각적 무게를 갖는다. 검은 면이 넓고 무늬가 촘촘해 외곽의 꽃잎형 구조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다. 원 전체가 여러 겹의 장식으로 이루어졌지만 관람 순서는 중앙에서 시작해 바깥으로 이동하도록 정리돼 있다.

중앙 원형을 둘러싼 외곽에는 서로 다른 무늬의 띠가 이어진다. 둥근 흰 형태가 연속된 층, 회색 꽃잎이 겹치는 층, 검은 삼각형이 톱니처럼 반복되는 층이 차례로 배치됐다. 무늬와 농도는 달라도 하나의 중심과 같은 원주를 공유한다.

상하좌우에는 끝이 뾰족한 잎 모양이 놓였다. 내부를 채운 촘촘한 사선은 중앙의 삼각형과 다른 속도를 만든다. 대각선 방향에는 검은 면의 비중이 큰 꽃잎형 구조가 자리해 밝은 잎과 대비된다. 원형 구도 안에 수직축과 수평축, 대각선축이 함께 들어오면서 여덟 방향의 대칭이 형성된다.

외곽에 놓인 작은 점도 같은 질서를 따른다. 밝은 점과 검은 점이 짝을 이루며 네 모서리 방향에 배치됐다. 중앙의 거대한 원과는 떨어져 있지만 흰 여백에 별도의 좌표를 만들고, 시선이 종이 가장자리까지 이동하도록 한다.

여러 겹의 무늬가 쌓이면서 외곽의 세부는 한 번에 분리되지 않는다. 꽃잎형 윤곽과 톱니 모양의 삼각형, 잎 내부의 사선이 맞닿는 부분에서는 각 장식 단위의 경계가 흐려진다. 중앙의 구조가 선명한 초점을 만든다면 외곽은 형태가 겹치며 밀도가 높아지는 영역이다.

원 바깥의 희미한 선은 작품의 인상을 바꾼다. 중심에서 뻗어 나온 직선과 외곽의 형태를 잡은 원호, 교차 지점이 종이 위에 남아 있다. 검게 완성한 문양만 보존하지 않고 구도를 세우는 데 사용한 기준선까지 작업의 일부로 받아들인 구성이다.

보조선이 모두 지워졌다면 작품은 정교한 장식 문양이나 인쇄된 패턴에 가까워질 수 있다. 거의 보이지 않는 선이 원 바깥으로 뻗으면서 닫힌 문양은 다시 주변의 흰 공간과 연결된다. 중앙에는 완성된 결과가 밀집하고, 가장자리에는 형태를 찾고 조정한 시간이 남는다.

연필의 농도도 일정하지 않다. 검은 삼각형 안에는 심이 지나간 방향이 남아 있고, 회색 꽃잎의 밝기도 부분마다 조금씩 다르다. 도형은 대칭과 반복의 규칙을 따르지만 손의 압력과 덧칠 횟수까지 균일하지는 않다. 계산된 구조 위에 제작자의 움직임이 그대로 겹쳐졌다.

‘Circle7 – geometry’라는 작품명은 원과 기하학을 전면에 둔다. 중심점과 동심원, 반복되는 삼각형, 여덟 방향으로 뻗은 외곽 형태가 일정한 축과 간격을 공유한다. 꽃잎이나 잎을 닮은 요소도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옮기기보다 대칭 구조에 맞춰 단순화됐다.

방사형 대칭과 꽃잎형 윤곽은 만다라를 떠올리게 한다. 다만 특정 종교의 도상이나 수행 체계를 직접 옮긴 형태라기보다 하나의 중심을 기준으로 무늬를 반복하고 확장한 시각적 구성에 가깝다. 상징을 먼저 정하기보다 중심과 원주, 삼각형과 곡선이 맺는 관계가 작품의 형식을 결정한다.

최혜정은 작업을 “작가의 시선으로 해석한 신과 인간의 시(詩), 서(書), 화(畵)의 놀이터”라고 설명한다. 시·서·화를 각각의 무늬에 나눠 대응시키기보다 연필을 다루는 과정에서 접점을 찾을 수 있다. 삼각형과 선의 반복은 일정한 운율을 만들고, 수없이 이어진 연필선은 글씨를 쓰듯 손을 움직인 시간을 남긴다. 흑백의 농담과 중심축을 세운 배치는 회화의 구성을 이룬다.

신과 인간이라는 표현도 특정 도형보다 제작 원리에서 읽힌다. 완전한 원과 정교한 대칭을 향하는 설계는 이상적인 질서를 떠올리게 하고, 고르지 않은 연필 농도와 남겨진 보조선은 사람의 손과 시간을 드러낸다. 완벽한 구조를 향한 계산과 실제 제작에서 생긴 작은 편차가 같은 종이 위에 놓였다.

온라인 전시관 아뜰리에 아미스에 공개된 ‘Circle7 – geometry’는 멀리서 볼 때와 가까이에서 살필 때의 인상이 다르다. 멀리서는 하나의 정돈된 원형 문양이 먼저 들어오고, 가까이에서는 삼각형을 채운 연필 결과 회색 면의 농도 차이, 외곽에 남은 기준선이 드러난다. 완성된 이미지와 제작 과정이 관람 거리에 따라 번갈아 앞선다.

동시대미술의 유통 환경도 초고가 작품 중심의 거래액과 실제 거래 작품 수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2024년 7월부터 2025년 6월까지 공개경매를 집계한 자료에서 세계 동시대미술 거래액은 감소했지만, 거래 작품 수는 5년 연속 최고치를 기록했다. 5000달러 이하 작품의 거래가 늘면서 연간 거래량은 14만6750점으로 증가했다.

10년 전 6만2640점이던 동시대미술 거래 작품 수는 2024~2025년 14만6750점으로 134% 늘었다. 온라인 경매의 확산과 새로운 구매층의 유입, 시장에 진입하는 작가의 증가가 거래 저변을 넓힌 배경으로 제시됐다.

공개경매와 온라인 전시관은 운영 방식이 다르지만, 물리적 전시장 밖에서 작품을 발견하고 접하는 통로가 늘어난 흐름은 공통적이다. 종이와 연필로 제작한 ‘Circle7 – geometry’가 온라인 공간에서 관람자와 만나는 방식도 확장된 동시대미술의 공개 환경과 나란히 놓인다.

‘Circle7 – geometry’는 중심의 완결성과 외곽의 제작 흔적을 한 종이에 병치한다. 검은 삼각형은 원을 단단하게 닫고, 희미한 방사선은 닫힌 구조를 다시 바깥으로 연다. 작품은 정교한 문양의 완성에서 멈추지 않고, 질서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연필을 움직인 시간을 종이 가장자리까지 남긴다.

저작권자 © KtN (K trendy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