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셋·타탄·해리스 트위드의 재조합…벨로니 쇼룸과 위르겐 텔러의 초상에 가려진 컬렉션의 변화
[KtN 박인경기자]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ne Westwood) FW26은 새로운 옷을 꺼내기보다 익숙한 옷의 위치를 바꿨다. 코르셋은 니트웨어 위로 올라왔고, 해리스 트위드(Harris Tweed) 코트 아래에는 브리프형 하의와 스타킹이 놓였다. 팬츠는 종아리 위에서 끊겼으며 수트와 구두 사이에는 무늬 양말이 들어갔다. 브랜드를 알아보게 하는 요소는 선명했지만, 2026 가을·겨울을 이전 시즌과 갈라놓을 새 설계는 뚜렷하지 않았다.
안드레아스 크론탈러(Andreas Kronthaler)가 고른 촬영지는 이탈리아 바를라시나의 벨로니(Belloni) 쇼룸이다. 150년 넘게 가구를 제작해 온 벨로니의 금박 소파와 고전주의풍 의자, 대형 도자기, 회화가 캠페인 전반을 채웠다. 밀라노에서 생활하는 크론탈러가 이탈리아 문화와 가까워진 개인적 변화를 장소에 반영했고, 위르겐 텔러(Juergen Teller)와 도빌레 드리지테(Dovile Drizyte)가 촬영에 참여했다.
벨로니 쇼룸은 의상을 돋보이게 하는 배경으로 물러서지 않는다. 붉은 직물과 금박, 짙은 목재, 복잡한 벽면 장식이 인물과 옷 주변을 빈틈없이 채운다. 검정과 차콜, 네이비가 많은 FW26 의상은 화려한 실내와 대비를 이루지만 어두운 원단의 표면과 봉제 구조는 약하게 전달된다. 캠페인을 기억하게 만드는 힘은 확보했으나 컬렉션을 읽는 데 필요한 정보는 줄었다.
크론탈러가 손댄 부분은 품목보다 비율이다. 코트와 재킷은 길고 크게 만들고, 안쪽의 하의는 짧게 줄였다. 넓어진 어깨와 두꺼운 몸판 아래로 다리가 길게 노출되면서 상체와 하체의 무게 차이가 커졌다. 여러 겹을 쌓아 보온성을 높이는 겨울 레이어링과 달리 바깥옷에 부피를 몰고 안쪽을 비웠다.
코트 아래에 놓인 브리프와 스타킹은 도발적인 장식에 머물지 않는다. 팬츠가 차지하던 면적을 없애면서 코트의 길이와 부피를 더 크게 느끼게 한다. 신체를 자연스럽게 보정하지 않고 특정 부위를 과장하거나 잘라내는 웨스트우드식 비례가 긴 아우터와 짧은 하의로 옮겨졌다.
코르셋도 같은 원리에 따라 배치됐다. 드레스 안에서 몸을 받치던 구조물이 니트와 상의 전면으로 나왔다. 허리와 가슴은 조이고, 주변에는 천이 느슨하게 흐르도록 남겼다. 한 벌 안에서 단단하게 고정한 부분과 풀어놓은 부분이 갈린다. 코르셋의 역사적 형태를 그대로 복원하기보다 몸을 나누는 선만 현대적인 니트와 드레이프에 적용했다.
코르셋을 겉옷으로 바꾸고 타탄과 역사 복식을 비트는 방식은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오래된 디자인 언어다. FW26의 차이는 코르셋 자체보다 함께 놓인 품목에서 나온다. 니트웨어와 브리프, 스타킹이 코르셋 주변에 들어왔고, 두꺼운 트위드 코트와 노출된 다리가 맞붙었다. 새 요소를 만들기보다 기존 요소 사이의 간격을 넓힌 구성이다.
수트는 재킷과 팬츠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허리를 좁힌 재킷 아래에서 팬츠 길이가 짧게 끊기고, 무늬 양말과 굽 높은 구두가 이어진다. 바지와 구두의 색을 맞춰 다리를 하나의 선으로 정리하는 남성복의 관습을 따르지 않았다. 팬츠 끝과 양말, 신발 앞코가 각각 드러나면서 다리의 비례가 여러 구간으로 나뉜다.
남성 인물에게 스타킹과 짧은 하의, 굽 있는 구두를 입히고 여성 인물에게 각진 재킷과 두꺼운 체크 아우터를 배치한 스타일링도 이어졌다. 여성복 요소를 남성복에 붙이거나 남성복을 여성에게 입히는 단순한 교환은 아니다. 재킷과 코트, 브리프와 스타킹을 성별에 따라 분리하지 않고 한 옷장 안에서 다시 조합했다.
젠더 구분을 흐리는 방식 역시 웨스트우드의 과거 작업과 이어진다. FW26에서 새롭게 읽히는 부분은 노출의 강도와 아우터의 부피다. 짧은 하의와 스타킹을 앞세운 스타일이 여러 착장에서 반복되면서 남성복과 여성복의 구분보다 상체를 얼마나 크게 만들고 다리를 어디까지 드러낼지가 중요해졌다.
소재는 한 계절의 감각으로 정리되지 않았다. 해리스 트위드와 펠트형 테일러링처럼 두껍고 형태를 지탱하는 원단 옆에 시스루와 광택 있는 프린트 직물을 놓았다. 울과 맨다리, 코트와 얇은 스타킹, 단단한 재킷과 흘러내리는 드레스가 한 컬렉션 안에서 맞섰다. 겨울옷의 기능보다 서로 다른 촉감과 무게의 차이를 앞세운 선택이다.
색은 검정과 차콜, 네이비가 넓은 면적을 차지한다. 빨강과 분홍, 주황, 청색은 셔츠와 코르셋, 양말, 프린트에 나뉘어 들어갔다. 밝은 색을 착장 전체에 펼치지 않고 어두운 옷 사이에 끼워 넣어 허리와 다리, 얼굴 주변에 시선을 모았다. 벨로니 쇼룸의 금색과 붉은색까지 더해지면서 일부 착장에서는 색보다 실내 장식이 강하게 남았다.
타탄도 정통적인 체크 수트로 정리되지 않았다. 분홍 셔츠와 짧은 팬츠, 스타킹을 함께 배치하고 서로 다른 크기의 체크를 섞었다. 해리스 트위드 역시 단정한 외투보다 노출된 다리를 강조하는 바깥 구조로 쓰였다. 영국 복식의 전통을 계승한다기보다 익숙한 소재가 지닌 안정감을 일부러 끊는 방식이다.
위르겐 텔러의 사진은 의상의 불균형을 인물의 자세로 이어갔다. 출연진은 반듯하게 서거나 가구 중앙에 앉지 않고 몸을 기울이고 눕거나 다리를 벌렸다. 옷의 주름과 흐트러진 여밈도 고르게 정리하지 않았다. 텔러와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오랫동안 이어온 즉흥적인 초상 방식이 벨로니 쇼룸에서도 반복됐다. 두 사람의 협업은 2017년 당시에도 이미 10년을 넘어선 상태였다.
텔러의 촬영은 매끈한 럭셔리 광고와 거리를 두지만 FW26에서 새로 생긴 문법은 아니다. 인물의 굳은 표정과 어색한 자세, 일상적인 조명은 이전 협업에서도 여러 차례 등장했다. 장소는 런던에서 이탈리아로 옮겨졌지만 촬영법은 익숙한 범위 안에 머물렀다.
에이전시 모델과 거리에서 발탁한 인물을 섞은 캐스팅도 옷보다 초상에 힘을 보탰다. 일로나 ‘치치올리나’ 스탈러(Ilona ‘Cicciolina’ Staller)의 참여는 캠페인의 이탈리아 배경을 강화했다. 출연진의 연령과 체형, 태도가 넓어진 만큼 사진의 인상도 다양해졌지만, 같은 조건에서 착장을 비교하기는 어려워졌다. 인물의 존재감이 강한 사진에서는 재킷의 길이와 드레스의 구조가 가려졌다.
크론탈러의 밀라노 생활은 촬영지와 출연진을 바꿨다.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영국적 유산을 과거의 런던에만 묶어두지 않고 현재 생활하는 지역으로 옮긴 선택이다. 그러나 장소와 인물의 변화가 의상의 변화로 이어졌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벨로니 쇼룸을 걷어내고 옷만 남기면 코르셋과 타탄, 비정형 테일러링, 젠더 혼합이라는 익숙한 브랜드 어휘가 다시 나타난다.
2026년 국내 소비 담론은 정통성을 찾는 ‘근본이즘’과 가격의 구성을 따져보는 ‘프라이스 디코딩’을 함께 제시했다. ‘근본이즘’은 고전적인 가치와 믿을 수 있는 원조에서 안정감을 찾는 흐름이며, ‘프라이스 디코딩’은 상품 가치와 브랜드 가치를 나눠 가격의 근거를 따지는 소비 태도를 가리킨다.
비비안 웨스트우드 FW26은 ‘근본이즘’에 가까운 컬렉션이다. 코르셋과 타탄, 해리스 트위드를 다시 꺼내 브랜드의 출발점과 연결했고, 텔러와의 오랜 협업도 유지했다. 웨스트우드라는 이름을 알아보게 만드는 장치는 충분하다.
‘프라이스 디코딩’의 기준에서는 설명이 부족하다. 고가 패션의 가격을 설득하려면 원단과 재단, 제작 방식, 착용성이 구체적으로 전달돼야 한다. FW26 캠페인은 금박 가구와 출연진의 인상을 강하게 남겼지만 트위드의 표면과 코트의 구조, 코르셋 니트의 제작 완성도는 충분히 드러내지 못했다. 브랜드의 역사와 분위기는 확인되지만 상품 가치까지 읽기는 어렵다.
아카이브를 활용하는 일도 반복과 재해석 사이에서 갈린다. FW26은 웨스트우드의 유산을 훼손하지 않았고, 길이와 착용 순서를 바꿔 현재의 스타일로 조정했다. 반면 코르셋과 타탄, 스타킹과 비대칭 재단만으로는 이전 컬렉션과의 차이를 크게 벌리지 못했다. 새롭게 느껴지는 인상의 상당 부분은 옷보다 벨로니 쇼룸과 텔러의 사진, 거리 캐스팅에서 나왔다.
공식 룩북과 실제 판매 제품이 공개되면 판단 기준도 달라질 수 있다. 코르셋 니트웨어와 해리스 트위드 코트의 재단, 브리프형 하의와 시스루 드레스의 상품 비중이 확인돼야 한다. 캠페인의 강한 연출을 걷어낸 뒤에도 FW26의 디자인이 남는지, 웨스트우드의 유산이 다시 팔리는 상징에 머물렀는지는 제품에서 갈릴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