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단 한 번 얼굴을 남기고 연극은 끝까지 무대 밖에 둬
빈민가 낙인이 증거를 앞선 배심원실…소년을 말할수록 드러나는 판단자의 삶
레비나스의 타자 윤리와 휴먼인더루프의 함정…인간의 개입만으로 확보되지 않는 공정성
[KtN 박준식기자]소년에게는 이름이 없다. 열여섯 살, 빈민가에서 성장했고 아버지를 칼로 찔러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는다. 영화에서는 법정에 앉은 얼굴이 단 한 번 등장하지만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연극에서는 얼굴도 목소리도 없다. 생사를 결정하는 열두 명은 긴 논쟁 동안 소년을 끊임없이 호명하지만 정작 소년은 자신을 설명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
레지날드 로즈의 ‘12인의 성난 사람들’은 피고의 진술보다 피고를 판단하는 사람들의 말을 전면에 놓는다. 살인 혐의는 소년에게 있지만 무대와 화면을 점유하는 쪽은 배심원들이다. 논쟁이 이어질수록 소년의 삶보다 열두 명의 직업과 계급, 가족관계와 편견이 더 선명해진다. 배심원실은 사건의 진실만 가려내는 장소가 아니라 한 인간을 해석하는 과정에 판단자의 삶이 얼마나 깊이 개입하는지 드러내는 공간으로 바뀐다.
피고의 부재는 서사의 빈칸이 아니다. 소년을 직접 말하게 하지 않는 형식은 타인을 판단하는 인간의 한계를 작품 전체에 남긴다. 관객도 소년의 사정과 감정을 완전하게 알 수 없다. 열두 명과 같은 불완전한 정보만 가진 채 증언의 신빙성, 편견의 개입, 사형 평결의 무게를 함께 감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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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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