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창작 논쟁 속 여전히 큰 회화의 비중…장지 위 꽃과 선의 반복에서 드러나는 구승희의 ‘채움’

[K-ART, 구승희②] 점처럼 보이는 작은 꽃, 손으로 채운 시간의 밀도.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ART, 구승희②] 점처럼 보이는 작은 꽃, 손으로 채운 시간의 밀도.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준식기자]인공지능이 이미지 생성에서 미술 제작의 영역까지 들어오면서 ‘누가 만들었는가’와 ‘어디까지가 창작인가’를 둘러싼 논의가 커지고 있다. 2024~2025년 현대미술 경매에서는 AI 생성 또는 보조 작품 37점이 거래됐고, AI 학습 데이터와 독창성·저작권 문제도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같은 기간 회화는 전 세계 현대미술 경매 낙찰 작품의 44%를 차지했다. 디지털 기술의 확대가 곧바로 회화의 퇴장을 의미하지 않는 가운데, 손으로 축적한 시간과 반복이 작품에서 어떤 차이를 만드는지도 다시 볼 만한 대목이다.

구승희의 작업에서는 작은 꽃이 그 시간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멀리서 보면 점처럼 흩어진 작은 형태들이 가까이에서는 꽃으로 구분된다. 한두 송이가 아니라 머리와 옷, 인물 주변까지 되풀이되면서 색의 면을 만들고 공간의 밀도를 바꾼다. 작가가 말해온 ‘일상의 작은 행복’은 여기서 의미에만 머물지 않고 실제 그림을 이루는 최소 단위가 된다.

구승희, ‘행복’, 장지 채색, 99×66cm, 2017. 사진=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구승희, ‘행복’, 장지 채색, 99×66cm, 2017. 사진=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2017년 ‘행복’에서는 이 구조가 비교적 또렷하다. 붉은 바탕 앞에 선 여성의 노란 머리는 하나의 단색 덩어리가 아니라 수많은 꽃과 세밀한 선의 집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품에는 크기와 색이 다른 꽃들이 모여 있고, 작은 꽃과 나비를 닮은 형상은 머리 가장자리에서 바깥 공간으로 흩어진다. 큰 형태를 먼저 만들고 세부를 덧붙인다기보다 작은 단위의 축적이 머리와 주변 공간을 만들어내는 방식에 가깝다.

구승희가 작은 꽃에 부여한 의미는 거창하지 않다. 바람을 느끼거나 물을 마시고, 강아지를 안고, 아이와 책을 보는 것처럼 쉽게 지나치는 일상을 작은 꽃에 연결해왔다. 큰 꽃에는 사람마다 다른 행복의 색을 담고, 잘 보이지 않는 작은 꽃에는 평범한 생활 속에서 놓치기 쉬운 행복을 겹쳐놓았다.

작품에서 더 중요한 것은 꽃의 의미보다 꽃이 사용되는 방식이다. 작은 꽃 하나만 놓고 보면 장식에 가깝지만 수없이 반복되면 인물과 배경을 구분하는 밀도가 되고, 시선이 이동하는 방향까지 만든다. ‘행복’에서는 머리에 응집된 꽃과 주변으로 빠져나가는 꽃이 동시에 존재하면서 인물 안쪽과 바깥쪽을 연결한다. 꽃을 ‘행복의 상징’으로만 설명했을 때 빠지는 회화적 기능이 바로 이 부분이다.

구승희, ‘담아서’, 장지 채색, 162×130cm, 2021.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구승희, ‘담아서’, 장지 채색, 162×130cm, 2021.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2021년 ‘담아서’에서는 작은 꽃이 인물의 손과 결합한다. 흰 꽃들이 한 손 가까이에 모였다가 다른 손이 향하는 쪽으로 흩어지고, 얼굴과 시선도 같은 방향을 따른다. ‘행복’에서 머리와 품을 채우던 꽃이 ‘담아서’에서는 이동 경로를 만들면서 정지한 인물에 작은 동세를 더한다. 반복된 꽃의 수보다 꽃이 어느 위치에 놓였는지가 작품의 성격을 바꾼 것이다.

이 차이는 구승희의 반복을 볼 때 중요하다. 같은 꽃을 계속 그린다는 사실만으로 작업의 지속성을 평가할 수는 없다. 꽃이 머리에 붙어 있는지, 손에서 움직이는지, 주변 공간을 채우는지에 따라 같은 형태라도 역할은 달라진다. 반대로 위치와 관계의 변화가 크지 않은 작품에서는 작은 꽃이 조형적 긴장보다 익숙한 장식으로 먼저 읽힐 가능성도 있다.

구승희 작품 대부분의 바탕이 되는 장지채색은 이런 반복을 물리적인 제작 과정과 연결한다. 장지 위에 분채를 사용하고, 원하는 색을 얻기 위해 얇은 색층을 여러 차례 쌓아가는 방식이다. 종이의 성질 때문에 밑작업이 중요하고, 색을 한 번에 두껍게 올리기보다 얇게 반복해 쌓는 과정이 이어진다. 정확한 횟수보다 여러 단계의 밑작업과 채색이 필요하다는 점이 제작방식의 핵심에 가깝다.

색 역시 한 번의 붓질로 끝나지 않는다. 원하는 발색을 얻기 위해 같은 부분을 다시 칠하고, 머리와 피부처럼 작품에서 반복되는 부분에도 여러 번의 채색이 들어간다. 실제 작품에서는 디지털 이미지로 볼 때보다 색이 겹쳐진 깊이가 나타난다는 설명도 이 제작 방식과 연결된다.

구승희, 햇살 가득 장지채색 47×35cm 2026. 사진=구띠커피갤러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구승희, 햇살 가득 장지채색 47×35cm 2026. 사진=구띠커피갤러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2026년 ‘햇살 가득’에서는 인물 뒤에 해바라기를 연상시키는 큰 꽃들이 원을 이루며 반복된다. 작은 꽃을 빽빽하게 흩어놓는 방식과는 다르지만, 동일한 형상을 반복해 하나의 큰 구조를 만든다는 점에서는 기존 작업과 이어진다. 작품 목록상 ‘햇살 가득’은 장지채색으로 제작됐으며, 이번 출품작 가운데 2026년 작업군에 포함된다.

구승희, 피어나는 행복 장지 채색 80×65cm 2026. 사진=구띠커피갤러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구승희, 피어나는 행복 장지 채색 80×65cm 2026. 사진=구띠커피갤러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피어나는 행복’에서는 인물의 얼굴과 노란 머리 주변에 여러 색의 꽃이 집중된다. 꽃은 머리 위에 붙거나 주변을 둘러싸며 얼굴과 배경 사이의 경계를 흔든다. ‘행복’에서 노란색에 집중됐던 머리의 밀도가 2026년 작업에서는 다양한 색의 꽃과 결합하는 방향으로 이동한 것을 볼 수 있다. 43번 ‘피어나는 행복’ 역시 장지채색으로 분류된다.

이처럼 ‘채움’은 구승희 작품에서 두 가지 방향으로 작동한다. 하나는 빈 곳을 작은 꽃과 선으로 메우는 물리적 행위이고, 다른 하나는 반복된 시간이 작품의 표면에 남는 방식이다. 작가는 작은 문양과 꽃을 하나씩 더하고 원하는 색이 나올 때까지 채색을 반복해왔다. 노동의 양 자체가 작품의 가치를 보장하지는 않지만, 어떤 반복이 작품의 구조를 만들고 어떤 반복이 장식에 머무는지는 충분히 구분해서 볼 수 있다.

AI가 이미지 생성의 속도를 크게 높인 지금도 회화가 현대미술 거래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런 차이를 생각하게 한다. 2024~2025년 현대미술 경매에서 회화는 낙찰 작품의 44%를 차지했고, AI 작품의 등장은 기존 매체를 대체하기보다 창작의 독창성과 인간의 개입을 다시 논의하게 만들었다. 구승희의 장지채색 역시 ‘손으로 그렸다’는 이유만으로 별도의 가치를 얻는 것은 아니다. 반복된 손의 시간이 작품 안에서 실제 구조와 색, 공간의 차이로 남을 때 제작방식이 비로소 조형언어와 연결된다.

구승희, 행복을 그리다 장지 채색 80×65cm 2026. 사진=구띠커피갤러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구승희, 행복을 그리다 장지 채색 80×65cm 2026. 사진=구띠커피갤러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2026년 ‘행복을 그리다’에서도 꽃과 노란 머리라는 익숙한 어휘는 유지된다. 작품 목록에서 67번으로 분류된 이 작업은 장지채색이며, 같은 해 제작된 ‘피어나는 행복’과 함께 최근 작품군을 이룬다.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꽃이 많다는 사실보다 반복된 형태가 얼굴과 머리, 주변 공간을 어떻게 다시 조직했는지다.

구승희의 작은 꽃은 멀리서 점이고 가까이에서는 하나의 꽃이다. 의미로 읽으면 평범한 하루에서 발견하는 작은 행복이고, 제작 과정으로 보면 한 번에 완성되지 않는 반복 노동의 흔적이다. 회화적으로는 여러 꽃이 모여 색의 밀도와 공간의 방향을 만든다.

이 세 층위가 함께 작동할 때 작은 꽃은 장식 이상의 역할을 갖는다. 반대로 익숙한 꽃과 얼굴이 비슷한 위치에서 되풀이될 때에는 반복 자체가 작품의 차이를 약하게 만들 수 있다. 구승희의 ‘채움’을 읽는 핵심도 꽃을 얼마나 많이 그렸는지가 아니라, 하나씩 더해진 시간이 각 작품에서 얼마나 다른 구조를 만들어냈는가에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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