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각을 점과 그물로 옮기고 거울 속 자아까지 해체…고통의 재현을 넘어 동시대 미술의 관람 방식을 바꾼 70여 년
[KtN 임민정기자]일본 현대미술가 야요이 쿠사마(Yayoi Kusama)가 지난 14일 도쿄의 한 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97세. 야요이 쿠사마 스튜디오는 27일 사망 소식을 발표하며 쿠사마가 생의 마지막까지 붓을 놓지 않았다고 밝혔다. 사인은 공개되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압도한 환각을 점과 그물, 증식과 거울의 형식으로 옮긴 쿠사마는 개인의 고통을 고백하는 데 머물지 않았다. 작품 앞에 서 있던 관람객을 작품 안으로 끌어들이고, 하나뿐이라고 믿었던 자아가 무한히 복제되다가 사라지는 경험을 만들었다. 야요이 쿠사마 스튜디오, AP
1929년 일본 나가노현 마쓰모토에서 태어난 쿠사마는 어린 시절부터 꽃과 점, 빛이 주변으로 번지는 환각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식탁보의 붉은 꽃무늬가 천장과 벽, 자신의 몸과 우주까지 뒤덮는 감각은 훗날 ‘자기소멸(self-obliteration)’이라는 말로 정리됐다. 세계와 자신을 가르는 경계가 무너지고 개별적인 존재가 무한한 반복 속으로 흩어지는 경험이었다.
쿠사마가 선택한 대응은 환각을 밀어내는 일이 아니었다. 눈앞에 출현한 점과 꽃을 더 많이 그리고, 더 넓게 펼치고, 마침내 주변 공간 전체로 옮겼다. 자신을 위협하던 이미지를 스스로 반복함으로써 수동적인 공포를 능동적인 제작으로 바꿨다. 환각이 예고 없이 찾아오는 침입이었다면 그림은 붓을 쥔 사람이 시작과 중단을 결정할 수 있는 행위였다. 쿠사마에게 창작은 고통을 없애는 치료라기보다 고통과 함께 살아갈 질서를 만드는 노동에 가까웠다.
점 하나에는 중심도 방향도 없다. 모든 점은 다른 점과 거의 같은 크기와 위상을 갖는다. 점이 캔버스 전체로 퍼지면 관람객의 시선은 머물 중심을 잃는다. 서양 회화가 오랫동안 전경과 배경, 중심과 주변, 주체와 대 대상을 구분해 질서를 세웠다면 쿠사마의 반복은 위계를 허문다. 어느 한 점도 특별하지 않으며, 어느 한 부분도 전체를 대표하지 않는다. 작은 단위가 끝없이 이어지는 동안 개별 점은 사라지고 관계와 리듬만 남는다.
1957년 미국으로 건너가 이듬해 뉴욕에 정착한 쿠사마는 대형 캔버스를 작은 반원형 붓질로 채운 ‘인피니티 네츠(Infinity Nets)’ 연작을 발표했다. 물감의 흔적은 캔버스 끝에서 멈추지만, 구성은 테두리 밖으로 계속 이어질 것 같은 상태를 만든다. 무한은 작품 안에 완성된 거대한 형상이 아니었다. 눈에 보이는 범위 너머에서도 반복이 계속되리라는 감각으로 존재했다.
1950년대 말 뉴욕 미술계에서는 추상표현주의의 크고 격렬한 몸짓이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쿠사마의 그물은 거대한 캔버스를 다룬다는 점에서 같은 시대의 회화와 맞닿았지만, 제작 방식은 달랐다. 한 번의 붓질에 작가의 감정과 개성을 응축하기보다 거의 같은 동작을 오랫동안 반복했다. 천재적 자아를 과시하는 몸짓 대신 자아가 지워질 때까지 지속하는 노동을 놓았다. 개인의 서명을 강화하던 회화의 시대에 쿠사마는 손의 흔적을 무수히 겹쳐 개별 흔적을 식별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반복은 쿠사마에게 보호와 위협이라는 두 얼굴을 가졌다. 점을 하나씩 찍는 동안 작업자는 규칙과 호흡을 되찾을 수 있다. 같은 점이 모든 사물을 덮고 몸까지 삼키면 개인은 고유한 윤곽을 잃는다. 통제하기 위한 반복이 다시 자신을 없애는 반복으로 바뀌는 구조다. 쿠사마의 작품이 밝은 색과 단순한 무늬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경쾌한 외형 아래에는 자신을 보존하기 위해 자신을 지워야 하는 역설이 놓여 있다.
1960년대 초반에는 천으로 만든 남근 형태를 의자와 소파, 신발 등에 촘촘하게 부착한 ‘애큐뮬레이션(Accumulation)’ 연작을 제작했다. 익숙한 생활용품은 같은 돌기가 무성하게 증식하면서 사용 기능과 안정된 윤곽을 잃었다. 성적 욕망과 공포를 연상시키는 형태를 수없이 되풀이해 특정한 신체의 상징성을 약화시키는 방식이었다. 하나의 남근이 권력과 욕망을 나타낼 수 있다면 수백 개로 불어난 남근은 서로를 압도하지 못한 채 무늬가 된다. 반복은 강한 상징을 확대하면서 동시에 무력화했다.
수천 개의 천 조형물을 직접 만들어 붙이는 작업은 많은 시간과 체력을 요구했다. 쿠사마는 1965년 ‘인피니티 미러 룸—팔리의 들판(Infinity Mirror Room—Phalli’s Field)’에서 거울을 사용했다. 제한된 수의 조형물은 반사면 안에서 셀 수 없이 늘어났다. 손으로 사물을 계속 생산하지 않아도 반복을 무한에 가깝게 확장할 수 있게 됐다. 거울은 노동의 물리적 한계를 넘은 장치인 동시에 작품과 관람객의 관계를 바꾼 장치였다. 허시혼미술관
거울 앞에서 사람은 자신의 모습을 확인한다. 쿠사마의 거울방에 들어서면 확인은 곧 혼란으로 바뀐다. 반사된 몸이 사방에 출현하면서 실제 몸과 반사상 사이의 우선순위가 무너진다. 수많은 ‘나’가 생겼지만 어느 것도 완전한 원본의 지위를 유지하지 못한다. 자아는 확대되는 대신 복제될수록 희석된다. 거울은 자신을 더 많이 보게 만들면서 자신이 유일한 존재라는 확신을 빼앗는다.
1966년 제33회 베네치아비엔날레에서 선보인 ‘나르시스 가든(Narcissus Garden)’은 거울과 자아, 욕망과 상품의 관계를 야외로 옮겼다. 쿠사마는 공식 초청이나 허가 없이 이탈리아관 앞 잔디에 은색 반사구 1500개를 펼쳐 놓았다. 주변 건축물과 하늘, 관람객의 얼굴은 공마다 작고 둥글게 맺혔다. 금색 기모노를 입은 쿠사마는 ‘당신의 나르시시즘을 팝니다’라는 문구를 내걸고 반사구를 한 개당 1200리라, 당시 약 2달러에 판매하려 했다. 비엔날레 측은 판매를 중단시켰다. 뉴욕현대미술관
‘나르시스 가든’의 관람객은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동시에 자신이 비친 공을 사려는 소비자가 된다. 자기 이미지가 상품 표면에 등장하고, 상품을 소유하려는 욕망이 다시 자신의 얼굴로 돌아온다. 쿠사마는 미술시장을 작품 바깥의 제도로만 비판하지 않았다. 작품을 구매하고 싶은 관람객의 욕망까지 설치 안에 포함했다. 1500개의 공은 예술품의 유일성과 희소성도 흔들었다. 모두 비슷한 공 가운데 하나를 산다는 행위에는 유일한 작품을 소유한다는 전통적인 미술품 구매의 논리가 작동하기 어렵다.
나르키소스 신화에서 주인공은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다가 그 이미지와 결합하지 못한 채 죽는다. 쿠사마의 반사구에도 관람객의 얼굴이 나타나지만, 표면이 둥글어 모습은 일그러지고 주변 풍경과 섞인다. 관람객이 사랑하거나 소유할 수 있는 완전한 자아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반사된 얼굴은 잠시 맺혔다가 사람이 움직이면 사라진다. 자아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위치와 빛, 주변 사물에 따라 계속 달라지는 이미지가 된다.
쿠사마가 말한 자기소멸은 개인을 완전히 포기하는 허무주의와도 거리가 있었다. 자아의 경계를 풀어 세계와 다시 연결하려는 움직임이 함께 들어 있었다. 몸에 점을 그리고 사람과 사물, 공간을 같은 무늬로 덮으면 개인을 구분하던 피부와 윤곽은 약해진다. 한 사람이 사라진 자리에는 더 큰 연속성이 생긴다. 자기소멸은 고립된 개인이 우주와 분리돼 있다는 감각을 넘어서는 방식이기도 했다.
1960년대 후반 뉴욕의 공원과 문화시설 주변에서 벌인 누드 퍼포먼스와 반전 행사는 자기소멸을 사회적 행위로 넓혔다. 쿠사마는 참가자의 몸에 점을 그려 넣고 여러 신체를 하나의 반복 안에 배치했다. 점으로 뒤덮인 몸은 성적 대상이나 개인 소유물로만 남지 않았다. 다른 몸과 이어지는 표면이 됐다. 성과 신체를 둘러싼 수치심, 베트남전쟁, 보수적인 규범에 맞선 활동은 개별 자아를 넘어 공동체와 정치의 문제로 이어졌다.
일본인 여성이자 이민자였던 쿠사마는 백인 남성 중심의 뉴욕 전위미술계에서 활동했다. 작품은 동시대 미니멀리즘과 팝아트, 퍼포먼스의 흐름과 맞닿아 있었지만 오랫동안 중심적인 위치를 얻지 못했다. 쿠사마가 1965년 인터뷰에서 “죽은 뒤 어떻게 분류될지 상상할 수 없다. 아웃사이더라는 사실이 좋다”고 말한 대목에는 소속되지 못한 현실과 분류를 거부하는 태도가 함께 담겼다. 회화와 조각, 설치와 퍼포먼스, 패션과 문학을 넘나든 작업도 하나의 미술사적 범주에 고정되기 어려웠다.
1973년 일본으로 돌아온 쿠사마는 1977년부터 도쿄의 정신의료시설에서 생활했다. 낮에는 인근 작업실로 이동해 회화와 조각을 제작하고 소설과 시를 썼다. 의료시설에서 생활했다는 이력만으로 작품을 설명하면 쿠사마의 예술은 정신질환이 낳은 기이한 이미지로 축소된다. 수십 년 동안 작업실로 출근해 제작을 이어간 시간에는 영감보다 규율, 충동보다 노동이 더 많이 쌓였다. 환각은 쿠사마가 선택할 수 없는 경험이었지만, 어떤 재료와 크기, 색, 형식으로 바꿀지는 작가의 판단이었다.
쿠사마의 예술은 고통이 곧 창조성이라는 낭만적인 통념과도 맞지 않는다. 고통 자체가 작품을 만든 것이 아니라, 감당하기 어려운 경험을 반복 가능한 형식으로 번역한 노동이 작품을 만들었다. 점과 그물은 병의 표지가 아니라 병에 압도되지 않기 위해 구축한 문법이었다. 개인의 내면에서 출발한 문법이 다른 관람객의 몸과 감각을 움직일 수 있을 때 사적인 경험은 공적인 예술이 됐다.
호박은 점과 거울이 품은 불안에 다른 무게를 더했다. 쿠사마는 어린 시절부터 접한 호박의 둥글고 울퉁불퉁한 형태를 회화와 조각으로 반복했다. 호박은 끝없이 확장되는 그물이나 방향 감각을 잃게 하는 거울과 달리 땅에 단단히 놓인 유한한 몸을 지녔다. 둥근 부피는 안과 밖을 구분하고, 줄기는 위아래의 방향을 만든다. 표면을 뒤덮은 점은 호박을 우주적 무늬로 확장하지만, 불규칙한 굴곡은 사물이 지닌 구체적인 몸을 남긴다.
점이 자아의 경계를 흩뜨리고 거울이 원본의 지위를 무너뜨린다면, 호박은 소멸 속에서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물질의 감각을 붙든다. 쿠사마의 작업에서 무한은 언제나 유한한 매체를 통해 나타났다. 캔버스에는 가장자리가 있고, 거울방에는 벽이 있으며, 호박에는 껍질이 있다. 실제 공간은 제한돼 있지만 반복과 반사를 통해 끝이 없다는 감각을 일으킨다. 무한은 현실에 존재하는 거대한 크기가 아니라 유한한 인간이 끝을 상상하지 못할 때 생기는 경험이었다.
1993년 쿠사마는 일본 대표로 베네치아비엔날레에 참가했다. 27년 전 행사장 밖에서 비공식 설치를 벌였던 작가가 국가관 공식 대표로 돌아왔다. 1990년대 후반부터 미국과 일본의 주요 미술관이 뉴욕 시절 작품을 다시 조명했고 유럽과 아시아, 호주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이어졌다. 미술사 주변부에 있던 일본 여성 작가는 세계 미술관이 가장 많은 관람객을 모으는 작가 가운데 한 명으로 이동했다.
소셜미디어의 확산은 쿠사마의 거울방에 또 하나의 역설을 더했다. 자기소멸을 다룬 공간은 자신의 모습을 촬영하고 전시하는 장소로 소비됐다. 무한히 반복되는 거울 속에서 작은 존재가 되는 대신, 관람객은 가장 잘 나온 한 컷을 골라 자신의 계정에 올렸다. 쿠사마의 작품이 처음 제기한 나르시시즘의 문제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스마트폰과 결합해 더 직접적인 형태로 돌아왔다.
거울방을 ‘인증 사진 명소’로만 소비하는 흐름이 원래 작품을 완전히 배반한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쿠사마는 1960년대부터 자신의 몸과 의상, 퍼포먼스를 적극적으로 촬영하고 유통했다. 관람객이 작품 속 자신의 모습을 의식하고 외부에 전하는 과정까지 거울 작업이 일으키는 효과에 포함된다. 관람객은 자기 모습을 소유했다고 생각하지만, 촬영된 이미지에도 수많은 반사와 다른 사람, 조명과 벽이 들어온다. 완전히 독립된 자아를 기록하려는 시도는 끝내 주변 세계와 뒤섞인다.
패션과 가방, 화장품, 휴대전화로 확장된 점무늬도 순수미술과 상업의 단순한 대립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반복 가능한 점은 원래부터 하나의 원본에 묶이지 않는 형식이었다. 캔버스를 넘어 옷과 신체, 건물과 상품에 번지는 과정은 쿠사마가 오랫동안 추구한 증식의 논리와 맞닿는다. 동시에 세계 시장에서 즉시 알아볼 수 있는 브랜드가 되면서 자기소멸의 무늬가 작가 개인의 이름을 가장 강하게 각인하는 표식으로 바뀌었다.
제공된 사진에는 쿠사마가 검정과 황금색 점무늬로 덮인 의상을 입고 같은 무늬의 소파에 앉아 있다. 벽과 가구, 옷을 따라 이어지는 점은 인물의 몸을 주변에 섞어놓지만 붉은 단발머리와 얼굴은 중앙에 또렷하게 남는다. 사라지려는 몸과 기억되려는 초상이 한 자리에서 맞선다. 쿠사마의 자기소멸은 작가의 정체성을 없애지 않았다. 역설적으로 현대미술에서 가장 식별하기 쉬운 작가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야요이 쿠사마 스튜디오는 작가가 마지막까지 그림을 그리며 ‘영원한 사랑’과 ‘불멸의 영혼’을 탐구했다고 밝혔다. 작품을 통해 희망과 힘을 전하려 했던 뜻도 이어가겠다고 했다. 야요이 쿠사마 스튜디오
쿠사마가 남긴 무한은 죽음을 부정하는 영원성과 다르다. 반사상은 사람이 방을 떠나면 사라지고, 점을 찍던 손도 언젠가는 멈춘다. 한 인간의 노동이 끝난 뒤에도 이미 그려진 점은 다른 점과 연결되고, 거울은 새로 들어온 관람객의 몸을 다시 받아들인다. 유한한 존재가 반복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넘어가는 방식이 작품 안에 남는다.
97년의 생애 동안 쿠사마는 자신을 압도한 세계를 피하지 않고 같은 형식으로 되돌려줬다. 꽃이 자신을 덮었다면 꽃을 더 많이 그렸고, 점이 몸을 삼켰다면 세상 전체를 점으로 덮었다. 자신의 윤곽이 사라지는 공포는 관람객이 잠시 개별성을 내려놓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고통을 아름답게 꾸민 것이 아니라 고통이 작동하는 구조를 미술의 구조로 전환했다.
마지막 붓질이 멈춘 뒤 쿠사마의 점은 한 작가의 초상이나 특정한 질병의 기호로만 남지 않는다. 자아가 어디에서 시작하고 세계가 어디에서 끝나는지, 자신을 지키는 일과 자신에게서 벗어나는 일이 얼마나 가까이 놓여 있는지를 몸으로 경험하게 한다. 야요이 쿠사마가 만든 무한은 끝없이 넓은 공간이 아니라, 하나뿐이라고 믿었던 자신이 수많은 관계 속에서 잠시 사라졌다가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돌아오는 순간에 놓여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