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n Realities, 사람 얼굴과 CCTV 결합한 'The Watchers' 설치…거리에서 촬영 사실 인지하기 어려운 현실 다뤄
스마트폰에서 안경으로 옮겨간 카메라…촬영자와 주변 사람의 정보 격차, 공공장소의 사생활 보호 문제 부상
[KtN 정석헌기자]영국 런던 소호의 거리에서 감시 카메라에 사람의 얼굴이 달렸다. 검은 모자와 안경을 쓴 얼굴이 건물 앞에 설치된 카메라 구조물에 붙어 있고, 또 다른 얼굴은 가로수 사이에서 행인들을 바라보는 듯한 모습으로 놓였다. 얼굴의 피부와 눈, 안경테까지 실제 사람과 비슷하게 제작됐다. 거리에 익숙하게 자리 잡은 감시 카메라가 사람의 얼굴을 갖게 된 것이다.
기술기업 이븐 리얼리티스(Even Realities)가 런던 소호에서 선보인 설치 프로젝트 'The Watchers'다. 감시 카메라와 사람의 머리를 결합한 조형물을 통해 카메라가 탑재된 스마트 안경의 촬영 문제를 다뤘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이 자신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는지 알아차리기 어려워진 현실을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프로젝트는 크리에이티브 제작 스튜디오 더 로빈 컬렉티브(The Robin Collective), 특수효과 아티스트 윌 하비(Will Harvey)와 협업해 제작했다. 3D 스캔과 프린팅, 실리콘 캐스팅 기술을 활용해 사람의 얼굴을 정교하게 재현하고 감시 카메라의 형태와 결합했다.
이븐 리얼리티스는 런던 소호의 버윅 스트리트(Berwick Street)에 설치물을 선보이는 한편, 상점과 술집, 운동시설 등을 배경으로 한 단편 영상도 공개했다. 공개된 조형물과 영상은 스마트 안경을 통한 촬영이 특정 장소에 한정되지 않고 일상생활 전반에서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을 다룬다.
어두운 공간에 놓인 세 개의 얼굴은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본다. 가운데에는 검은 모자와 안경을 쓴 얼굴이 정면을 향하고, 양옆에는 또 다른 인물의 머리가 배치됐다. 목 아래에는 흰색 지지대가 있고, 머리 뒤쪽에는 감시 카메라를 연상시키는 구조물이 이어진다.
얼굴은 사람의 신체에서 분리돼 있지만 표정과 안경, 모자의 형태는 일상에서 마주치는 인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머리와 목, 감시 장치가 결합된 형태는 사람과 기계의 구분을 흐린다.
조형물에는 두 가지 시각적 요소가 함께 사용됐다. 사람의 얼굴은 일상적인 대면 관계를 떠올리게 하고, 감시 카메라는 영상을 기록하는 장치를 상징한다. 사람의 머리를 감시 장치에 결합하면서 얼굴을 바라보는 행위와 기계로 촬영하는 행위를 하나의 형태로 표현했다.
일반적인 감시 카메라는 건물 외벽이나 천장, 기둥 등에 설치된다. 렌즈와 본체가 드러나 있어 카메라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감시 카메라 형태의 조형물에 사람의 얼굴을 붙인 'The Watchers'는 촬영 장치가 사람의 외형과 결합하는 상황을 드러낸다.
스마트 안경에서도 카메라는 사람의 얼굴 가까이에 놓인다. 렌즈는 안경테에 포함되고, 착용자가 고개를 움직이면 촬영 방향도 달라진다. 스마트폰처럼 별도의 기기를 손에 들지 않아도 사진이나 영상을 촬영할 수 있다.
스마트 안경은 안경의 외형을 유지하면서 디지털 기능을 추가해 왔다. 음성 명령과 통화, 음악 재생, 실시간 번역 등에 더해 일부 제품에는 카메라와 인공지능 기능이 결합됐다. 사용자는 손을 쓰지 않고 주변 환경을 촬영하거나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카메라가 일상적인 안경테 안으로 들어오면서 주변 사람이 촬영 사실을 알아차리는 방식도 달라졌다.
스마트폰은 사진이나 영상을 찍기 위해 기기를 들어 올리고 방향을 맞추는 행동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주변 사람도 기기의 위치와 촬영자의 자세를 통해 촬영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스마트 안경은 착용한 상태 그대로 촬영할 수 있다. 상대방을 바라보는 행동과 카메라를 촬영 대상 쪽으로 향하게 하는 행동이 겹칠 수 있다. 평범하게 대화하는 사람의 안경이 촬영 장치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휴대전화 촬영과 차이가 생긴다.
촬영 여부를 알아차리기 어려워지면 촬영자와 주변 사람이 가진 정보에도 차이가 생긴다. 촬영자는 녹화 기능이 작동하는지 알고 있지만, 맞은편에 있는 사람은 영상을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를 수 있다.
카메라를 착용한 사람의 편의와 촬영 대상자의 정보 접근이 달라지는 것이다. 촬영에 참여할 의사가 없는 사람도 우연히 카메라의 시야에 들어갈 수 있고, 자신의 모습이 기록되는 상황을 인식하지 못할 수 있다.
런던 소호의 상점가에 설치된 조형물은 기존 도시시설과 가까운 위치에 놓였다. 건물 외벽과 간판, 거리의 시설물 사이에 사람의 얼굴이 부착된 카메라 형태의 구조물이 나타난다.
사람의 얼굴은 간판보다 작은 크기지만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는 높이와 위치에 놓여 있어 주변 건물과 함께 시야에 들어온다. 조형물의 외형은 일상적인 거리의 시설물과 낯선 사람의 얼굴을 함께 떠올리게 한다.
소호는 상점과 음식점, 공연장 등이 밀집한 런던의 상업·문화지역이다. 관광객과 지역 주민, 직장인 등이 좁은 거리와 상업시설을 함께 이용한다. 여러 사람이 오가는 장소라는 점에서 카메라가 탑재된 개인용 기기의 촬영 문제를 다루기에 적합한 배경이다.
거리에서 누군가 사진을 촬영할 때 주변 사람의 모습이 함께 담기는 일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일상적인 촬영도 크게 늘었다. 사람들은 여행과 모임, 공연, 식사 등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기록하고 온라인에 공유한다.
스마트 안경은 카메라를 별도로 꺼낼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촬영 과정을 더욱 간편하게 만든다. 기기를 착용한 상태에서 순간적인 상황을 기록하고, 착용자의 시점에 가까운 영상을 제작할 수 있다.
촬영 과정이 간편해지는 만큼 주변 사람의 입장에서는 촬영 사실을 파악하기 어려울 수 있다. 촬영자가 기기를 손에 들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기술의 변화가 사람 사이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다. 누군가를 바라보는 행동은 일상적인 사회적 접촉이지만 상대방의 모습을 녹화하는 행위에는 정보 수집이 수반된다. 기존에는 비교적 구분되던 두 행동이 안경이라는 하나의 기기를 통해 동시에 이뤄질 수 있다.
사람들은 공공장소에서 다른 사람의 시선을 받는 데 익숙하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자신을 바라보는 일과 얼굴·음성·행동이 디지털 파일로 저장되는 일은 성격이 다르다.
직접 보는 행위는 대체로 그 순간에 이뤄진다. 녹화된 영상은 촬영 이후에도 보관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거나 온라인에 게시할 수 있다. 특정 인물의 행동이 원래의 장소와 관계를 벗어나 새로운 상황에서 공개될 수도 있다.
스마트 안경의 촬영을 둘러싼 사생활 논란은 이러한 기록과 유통의 가능성에서 비롯된다. 상대방이 촬영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기록을 거부하거나 촬영 범위에서 벗어날 기회도 줄어들 수 있다.
2026년 인간과 컴퓨터의 상호작용을 다루는 국제 학술대회 CHI에서 발표된 연구도 착용형 카메라를 사용하는 사람과 주변 사람의 인식 차이를 다뤘다.
중국에서 52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과 20명을 대상으로 한 후속 인터뷰에서는 카메라 안경의 착용자와 주변 사람이 기대하는 개인정보 보호 수준에 차이가 나타났다. 주변 사람들은 촬영 사실을 알 수 있는 정보와 사전 동의, 촬영 데이터에 대한 통제를 착용자가 제공하려는 수준보다 더 강하게 요구했다.
촬영 장소와 상황에 따라 사생활 보호에 대한 기대도 달라졌다.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오가는 공개된 거리와 개인적인 대화가 이뤄지는 장소, 신체가 노출될 수 있는 공간에서 촬영을 받아들이는 정도가 같지 않았다.
카메라가 있다고 해서 모든 촬영이 부적절한 것은 아니다. 여행과 공연, 스포츠 활동을 기록하는 기능은 이용자에게 편의를 제공한다. 시각장애인의 주변 환경 인식이나 길 찾기처럼 카메라를 활용한 보조기술도 발전하고 있다.
반면 촬영자의 편의가 주변 사람의 선택권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촬영 장소와 목적에 따라 촬영 대상자가 기대하는 사생활 보호 수준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가로수 사이에 설치된 조형물은 사람의 얼굴과 긴 지지대, 감시 카메라를 닮은 장치로 구성됐다. 어두워지는 거리와 나무를 배경으로 얼굴 부분이 드러나며, 사람의 시선과 감시 장치의 방향이 겹쳐 있다.
길을 걷는 사람의 눈높이보다 높은 곳에 얼굴이 놓였다는 점도 특징이다. 일상적인 대화에서는 상대방과 비슷한 높이에서 얼굴을 마주하지만, 설치물에서는 사람의 머리가 감시 카메라처럼 높은 곳에서 거리를 향한다.
조형물은 실제 카메라의 촬영 성능을 시연하는 장치가 아니라 착용형 촬영 기술에 대한 비판을 담은 설치물이다. 인간의 얼굴을 감시 장치로 바꾼 표현을 통해 촬영 기술이 사람의 시선과 결합할 때 발생하는 불편함을 시각화했다.
고정형 CCTV와 카메라 탑재 스마트 안경은 촬영 방식과 운영 주체에서도 차이가 있다.
CCTV는 일정한 장소에 설치돼 정해진 범위를 촬영한다. 운영 주체와 촬영 목적을 확인할 수 있는 안내가 마련되기도 한다. 카메라가 설치된 위치가 고정돼 있다는 점에서 촬영 범위를 예측하기도 상대적으로 쉽다.
스마트 안경은 사람과 함께 이동한다. 착용자는 거리와 식당, 사무실 등 여러 장소를 오가며 카메라를 사용할 수 있다. 기기를 착용한 사람이 누구인지와 실제 촬영 여부를 주변 사람이 항상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안경테에 카메라가 내장된 제품 가운데는 촬영 중임을 알리는 표시등을 갖춘 제품도 있다. 그러나 작은 불빛만으로 주변 사람이 촬영 상태를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는지는 별도의 문제다.
2026년 CHI에 발표된 또 다른 연구에서는 카메라 안경의 촬영 알림과 사생활 보호 방식을 분석했다. 연구진은 촬영 대상자의 얼굴을 기기 내부에서 기본적으로 흐리게 처리하고, 당사자의 동의가 있을 때만 원래 모습을 복원하는 기술을 제안했다.
연구에 참여한 주변 사람들은 촬영 이전부터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반면 안경 착용자들은 촬영의 편의성이 제한되는 점을 부담으로 받아들였다. 촬영 기능을 활용하는 사람과 영상에 포함되는 사람의 요구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이 실험에서도 나타났다.
촬영 표시등은 기록 사실을 알리는 하나의 방법이다. 주변 사람이 표시를 보지 못하거나 표시의 의미를 모른다면 고지 기능은 제한될 수 있다. 기록을 거부할 의사를 밝히거나 촬영 이후 자신의 정보가 어떻게 처리되는지 파악할 수 있는 수단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븐 리얼리티스의 'The Watchers'는 카메라가 사람의 시선과 결합하는 상황을 극단적인 조형물로 표현했다.
사람의 얼굴을 카메라 위에 부착한 형태는 안경의 렌즈 안에 카메라가 들어가는 실제 스마트 안경과 반대의 구성을 취한다. 스마트 안경에서는 촬영 장치가 사람의 얼굴에 숨겨지지만 설치물에서는 사람의 얼굴이 감시 장치에 붙는다.
카메라의 존재를 알아차리기 어려운 스마트 안경의 특징을 반대로 드러낸 표현이다. 렌즈와 얼굴의 관계를 뒤집으면서 평범한 안경에 내장된 촬영 장치가 주변 사람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생각하게 한다.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한 윌 하비의 특수효과 제작 기술도 이러한 표현에 사용됐다. 실리콘으로 만든 피부의 질감과 안경, 모자를 결합해 실제 거리에서 마주칠 법한 얼굴을 재현했다. 사람과 비슷한 외형이 기계적인 감시 장치에 놓이면서 두 요소 사이의 차이가 더욱 두드러진다.
이븐 리얼리티스는 설치 프로젝트를 공개하면서 카메라가 탑재된 스마트 안경에 대한 규제 강화도 요구했다.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인 윌 왕(Will Wang)은 10월 12일 공개서한에서 적절한 개인정보 보호 규정이 마련될 때까지 공공장소에서 카메라 안경의 사용을 한시적으로 제한하자는 입장을 밝혔다. 카메라가 주변 환경을 파악하는 데 유용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착용자와 주변 사람의 사생활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븐 리얼리티스는 카메라가 없는 스마트 안경을 판매하는 기업이다. 번역과 메시지 확인 등 정보를 제공하는 기능에 집중하면서 촬영 기능을 제외한 제품을 선보였다.
따라서 'The Watchers'는 공공장소의 사생활 보호 문제를 다루는 설치 프로젝트인 동시에 자사 제품과 다른 기술적 선택을 강조하는 기업 캠페인이기도 하다.
카메라가 없는 안경을 판매하는 기업이 카메라 안경 규제 강화를 주장한다는 사실은 캠페인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사생활 보호를 위한 사회적 논의와 기업의 제품 전략은 서로 다른 기준에서 살펴봐야 한다.
카메라를 제거하면 안경을 통한 영상 촬영이 발생하지 않지만 주변 환경을 시각적으로 인식하는 기능에도 제약이 따른다. 반대로 카메라를 유지하면 촬영과 인식 기능을 활용할 수 있는 대신 주변 사람의 정보가 어떻게 수집되고 처리되는지 관리해야 한다.
착용자의 편의성과 주변 사람의 사생활 보호는 제품을 설계하는 단계에서 함께 고려할 사항이다. 녹화 표시와 저장 방식, 촬영 대상자의 보호 기능, 정보 처리 범위 등 구체적인 기술적 선택에 따라 촬영이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도 달라질 수 있다.
런던 소호의 설치 프로젝트가 다룬 사안은 실제 스마트 안경이 거리와 상점, 운동시설 등으로 들어오면서 더욱 현실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카메라를 손에 들지 않고도 촬영할 수 있는 기술은 이용자에게 편의를 제공하지만 주변 사람은 자신의 모습이 기록되는 상황을 인지하지 못할 수 있다.
스마트 안경은 촬영 장치를 작게 만들고 일상적인 안경의 형태에 결합했다. 촬영자의 움직임은 줄어들었고 카메라는 사람의 얼굴과 가까워졌다. 기록을 남기는 과정이 간편해진 만큼 촬영 사실을 알리는 방식과 주변 사람의 의사를 존중하는 기술적 장치가 중요해지고 있다.
이븐 리얼리티스의 'The Watchers'는 이러한 변화를 사람의 얼굴과 감시 카메라를 결합한 조형물로 표현했다. 런던 소호의 거리에는 안경을 쓴 얼굴들이 감시 장치의 위치에 놓였고, 일상적인 시선과 영상 촬영의 차이가 작품의 주제가 됐다.
카메라 탑재 스마트 안경이 확산하는 상황에서 촬영 여부를 알리는 기능과 촬영 대상자의 권리, 영상의 저장과 활용 방식에 대한 논의도 이어지고 있다. 사람의 시선과 카메라의 시선이 가까워질수록 촬영하는 사람과 촬영되는 사람 사이의 정보 격차를 줄이는 기술과 사회적 기준이 필요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