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116.8cm 아크릴 회화… 초록 들판·노란 꽃·청록 수면이 만든 밝음의 속도
[KtN 박준식기자]노란 꽃은 초록 들판 곳곳에서 밝게 떠오르지만, 작품 중앙을 가로지르는 짙은 물길은 그 밝음을 한 번 가라앉힌다. 박희열(Hee Yeol, Park)의 ‘A Happy Day’는 제목처럼 환한 하루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지만, 캔버스 안의 자연은 마냥 가볍게 열리지 않는다. 초록은 빽빽하게 쌓이고, 물길은 낮게 흐르며, 붉은 둥근 형상은 들판 아래쪽에서 시선을 붙잡는다.
‘A Happy Day’는 97×116.8cm 크기의 캔버스에 아크릴로 제작됐다. 작품 전반을 채우는 색은 초록이다. 나무와 풀, 들판과 물가 주변까지 초록 계열로 이어지며 자연의 밀도를 만든다. 짙은 초록과 밝은 초록, 노란빛을 머금은 초록이 겹쳐져 들판은 넓게 트이기보다 촘촘하게 차오른다. 박희열의 자연은 빈 공간을 남겨두기보다 색을 쌓아 올리는 쪽에 가깝다.
상단의 나무들은 일정한 간격으로 서 있다. 줄기와 잎은 세밀한 식물 묘사보다 덩어리와 붓질의 반복으로 정리됐다. 나무들은 깊은 숲으로 물러나기보다 초록의 장벽처럼 놓인다. 아래쪽 풀과 중간의 물길, 위쪽 나무들이 차례로 쌓이면서 작품은 먼 곳으로 열리는 풍경보다 눈앞에 가득 들어찬 자연으로 다가온다.
중앙의 짙은 물길은 작품의 속도를 바꾼다. 노란 꽃과 밝은 초록이 곳곳에서 올라오는 가운데, 청록과 어두운 녹색이 섞인 수면은 가로로 길게 놓여 있다. 이 물길은 단순한 배경 요소가 아니다. 들판의 밝은 기운을 한 번 눌러주고, 시선을 아래위로 흩어지지 않게 붙잡는다. 꽃이 위로 떠오른다면, 물은 아래로 가라앉히는 역할을 한다.
노란 꽃은 ‘A Happy Day’에서 가장 또렷한 리듬을 만든다. 왼쪽 아래, 중앙 오른쪽, 오른쪽 아래에 나뉘어 놓인 꽃들은 초록 사이를 밝게 끊는다. 꽃들은 한곳에 몰려 있지 않고 캔버스 곳곳에 흩어져 있다. 그 배치 때문에 시선은 들판 한가운데에 머물지 않고 좌우와 아래위로 이동한다. 노란색은 작품을 환하게 만들지만, 짙은 물길과 초록의 밀도 속에서 작은 빛처럼 작동한다.
아래쪽의 붉은 둥근 형상은 노란 꽃 사이에서 다른 온도를 만든다. 특정 대상을 사실적으로 설명하기보다 색의 초점처럼 놓인 이 붉은 형상은 작품의 밝은 흐름을 한 번 더 강하게 끌어당긴다. 노란 꽃이 여러 지점에서 밝은 박자를 만든다면, 붉은색은 그 박자를 한곳에 모은다. 초록과 노란색만으로 이어졌다면 더 가벼웠을 풍경에 붉은색이 다른 농도를 더한다.
‘A Happy Day’라는 이름은 작품을 밝은 방향으로 읽게 한다. 그러나 캔버스 안의 자연은 제목의 낙관을 그대로 따라가지 않는다. 꽃은 밝지만 들판은 빽빽하고, 초록은 생기를 만들지만 쉽게 비워지지 않는다. 중앙의 물길은 환한 꽃밭 사이에 어두운 띠처럼 놓여 있다. 박희열은 행복한 하루를 활짝 열린 풍경으로만 그리지 않고, 밝은 색과 낮은 색이 서로 밀고 누르는 구조로 남긴다.
박희열 회화에서 초록은 자주 자연의 밀도를 만드는 색으로 쓰인다. ‘A Happy Day’에서도 초록은 들판을 설명하는 색에 머물지 않는다. 풀과 나무, 물가와 배경을 이어 붙이며 작품 전체의 기초를 이룬다. 초록이 넓게 깔려 있기 때문에 노란 꽃은 더 밝게 보이고, 붉은 형상은 더 선명하게 튀어나온다. 색들은 따로 놓이지 않고 서로의 온도를 바꾼다.
아크릴의 선명한 발색도 이 작품의 인상을 키운다. 노란 꽃은 짧고 두드러진 붓질로 떠오르고, 초록 들판은 여러 겹의 색으로 채워진다. 수면은 짙은 청록색으로 눌려 있고, 붉은 형상은 하단에서 강한 점처럼 놓인다. 세부 묘사의 정밀함보다 색의 충돌과 반복이 먼저 읽힌다. 자연은 특정 장소의 기록보다 색들이 만든 감각의 배열로 남는다.
꽃이 많다고 해서 작품이 단순한 꽃밭으로 정리되지는 않는다. 노란 꽃은 밝지만 작고, 물길은 어둡지만 중앙을 길게 차지한다. 위쪽 나무들은 단정하게 서 있으나, 아래쪽 풀과 꽃은 더 촘촘하게 번진다. 이 차이가 작품에 속도의 차이를 만든다. 위쪽은 세워지고, 중앙은 가라앉고, 아래쪽은 흩어진다. 밝은 하루라는 이름 아래 서로 다른 움직임이 함께 놓인다.
박희열의 풍경은 자주 마음속에서 다시 구성된 자연처럼 보인다. ‘A Happy Day’에서도 들판과 꽃, 물과 나무는 알아볼 수 있지만, 실제 장소를 설명하는 정보는 많지 않다. 대신 초록의 축적, 노란 꽃의 반복, 청록 수면의 가로 띠, 붉은 형상의 시선 고정이 작품을 이끈다. 풍경은 외부의 경관이라기보다 하루의 감각을 색으로 나눈 구조에 가깝다.
밝은 색이 많을수록 작품은 쉽게 낙관적으로 읽힐 수 있다. ‘A Happy Day’는 제목과 노란 꽃 때문에 그런 방향으로 곧장 다가온다. 그러나 짙은 물길과 빽빽한 초록은 그 읽기를 늦춘다. 꽃은 들판을 환하게 만들지만, 물은 그 사이에 낮은 정지감을 놓는다. 붉은 형상은 밝음에 온도를 더하지만, 자연 전체를 장악하지는 않는다.
‘A Happy Day’의 밝음은 환하게 열린 들판에서 나오지 않는다. 노란 꽃은 곳곳에서 떠오르고, 초록은 빽빽하게 쌓이며, 짙은 물길은 그 사이를 가로지른다. 박희열은 이 작품에서 행복한 하루를 들뜬 표정으로 그리지 않는다. 밝은 색들이 서로를 밀고 누르는 자리에서, 하루의 감각은 더 천천히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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