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서니 바카렐로, 넓은 어깨·높은 버튼·허리선으로 남성 테일러링 재구성
[KtN 임우경기자]생 로랑(Saint Laurent)이 파리 패션위크에서 2027 여름 남성복을 안개 속에 세웠다. 앤서니 바카렐로(Anthony Vaccarello)는 후지코 나카야(Fujiko Nakaya)의 안개 설치 ‘Cloud #07156’을 쇼의 배경으로 삼았고, 모델들은 흰 안개와 회색 콘크리트 공간 사이에서 수트, 트렌치코트, 베스트, 금속성 소재의 표면을 차례로 드러냈다.
회색 테일러드 수트는 이번 남성복의 기준선을 가장 차분하게 제시한다. 재킷의 어깨는 넓고 단단하게 잡혔지만, 몸통은 과도하게 조이지 않는다. 높은 위치에 놓인 세 개의 버튼, 길게 내려오는 라펠, 여유 있게 떨어지는 팬츠가 한 벌 안에서 균형을 이룬다. 안쪽의 라임 톤 상의는 무채색 수트 사이를 짧게 가른다. 강한 색이 전면을 차지하지 않고 재킷 틈에서만 드러나면서, 생 로랑식 절제는 단조로운 미니멀리즘이 아니라 계산된 노출에 가까워진다.
선글라스와 광택 있는 슈즈는 회색 수트의 온도를 낮춘다. 얼굴을 가리는 검은 렌즈는 모델의 표정을 지우고, 유광 슈즈는 바닥 가까이에서 빛을 받는다. 상체의 넓은 어깨와 하체의 느슨한 팬츠선이 충돌하지 않는 이유는 색과 소재가 낮은 톤으로 정리돼 있기 때문이다. 바카렐로의 수트는 몸을 과시하기보다, 몸 주변에 세워진 선을 통해 남성복의 긴장을 만든다.
금빛 트렌치코트는 같은 컬렉션 안에서 가장 강한 표면감을 맡는다. 벨트로 허리를 조인 롱 코트는 큰 칼라, 견장, 더블브레스트 여밈, 길게 떨어지는 벨트 끝을 갖춘 전통적 트렌치 구조를 유지한다. 다만 전체를 덮은 금속성 광택이 실용복의 인상을 지우고, 코트는 빛을 머금은 조형물처럼 움직인다. 갈색 계열 팬츠와 투톤 슈즈는 금빛의 밀도를 낮추며 룩을 과시 쪽으로만 밀어붙이지 않는다.
같은 금빛이라도 수트에서는 효과가 달라진다. 골드 수트는 트렌치코트보다 더 직접적으로 남성 테일러링의 관습을 흔든다. 맨살에 가깝게 열린 재킷, 길게 뻗은 라펠, 각진 어깨, 슬림하게 떨어지는 팬츠가 한 방향으로 이어진다. 금속성 소재는 수트의 엄격함을 부드럽게 만들지만, 재단의 선은 흐트러지지 않는다. 금색이 장식으로만 보이지 않는 이유는 재킷의 구조가 끝까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베이지 수트는 회색 수트보다 현실적인 온도를 갖는다. 밝은 뉴트럴 톤은 얼굴과 상체를 부드럽게 받치고, 흰 티셔츠는 재킷의 격식을 낮춘다. 그러나 넓은 어깨와 앞 중심의 세 개 버튼, 여유 있는 팬츠 주름은 수트의 긴장을 유지한다. 이 룩은 포멀웨어와 데이웨어 사이에 놓인다. 생 로랑은 수트를 완전히 해체하지 않고, 안쪽 이너와 팬츠의 여유로 착용자의 태도를 바꾼다.
베스트 착장은 재킷을 덜어낸 뒤에도 수트의 구조가 어떻게 남을 수 있는지 보여준다. 민소매 베스트는 상체의 면적을 과감하게 비우고, 깊게 잡힌 팬츠 주름은 하체의 볼륨을 세운다. 목을 감싼 오커 톤 패브릭은 노출된 상체를 장식으로 덮지 않고 세로선을 보강한다. 허리선에 짧게 드러나는 광택 소재와 투톤 슈즈는 베이지·그레이 계열 착장 안에 다른 표면감을 넣는다. 재킷이 사라진 자리에는 어깨, 목, 허리, 팬츠 주름이 나뉘어 수트의 잔상을 만든다.
넓게 세운 어깨와 높게 잡은 허리선은 이번 남성복의 실루엣을 지탱하는 축이다. 회색과 베이지 수트는 어깨의 각도로 긴장을 만들고, 골드 트렌치코트는 벨트로 긴 길이와 부피를 통제한다. 골드 수트는 광택을 재단 안에 묶고, 베스트 룩은 상체를 비워도 팬츠의 주름과 목 장식으로 중심선을 세운다. 바카렐로가 선택한 절제는 옷을 작게 만드는 방식이 아니라, 옷의 힘이 드러나는 위치를 제한하는 방식에 가깝다.
색채는 회색, 베이지, 브라운을 바탕으로 움직인다. 라임과 오커는 짧게 들어오고, 골드는 가장 강한 색으로 등장한다. 다만 골드조차 형태를 압도하지 않는다. 코트에서는 벨트와 칼라, 수트에서는 어깨와 라펠이 광택을 통제한다. 색이 먼저 보이지만, 오래 남는 것은 재단이다.
후지코 나카야의 안개 설치는 옷을 흐리게 만드는 장치에 머물지 않는다. 안개는 소재의 광택을 늦게 드러내고, 어깨선과 팬츠의 낙차를 더 선명하게 만든다. 생 로랑 2027 여름 남성복의 첫 인상은 화려한 금빛보다 그 금빛을 다루는 방식에 남는다. 앤서니 바카렐로는 남성복의 힘을 장식의 양이 아니라 버튼의 위치, 어깨의 각도, 허리의 조임, 소재가 빛을 받는 순간에서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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