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분 동안 맞부딪치는 미옥·호석·예지·상우의 서로 다른 삶
‘남의 것을 탐하지 말라’에서 출발한 욕망, 친절과 연대에도 스며든 계급의 거리
노동을 잃은 사람과 타인의 삶을 기록하는 사람 사이에서 다시 묻는 인간의 존엄

[가능한 사랑①] 해고 노동자와 다큐 감독 부부의 만남…이창동이 파고든 계급·욕망·사랑. 사진=영화 스틸,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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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김동희기자]해고 노동자 최호석은 직장을 잃은 뒤 이전과 같은 삶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아내 안미옥은 남편과 열 살 아들을 돌보며 생활을 이어간다. 다큐멘터리 감독 이예지는 해고 노동자들의 삶을 기록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두 사람에게 접근한다. 예지의 남편 상우는 호석 부부와는 경제적 조건부터 다른 삶을 살아왔다. 서로 만날 이유가 없었던 두 부부는 다큐멘터리 촬영을 계기로 가까워지고, 상대의 생활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감춰져 있던 욕망도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창동 감독이 ‘버닝’ 이후 8년 만에 내놓은 장편 ‘가능한 사랑’은 네 사람을 처음부터 선악이나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누지 않는다. 노동과 자본, 빈곤과 부유함, 기록하는 사람과 기록되는 사람의 차이는 분명하게 놓되 인물의 감정까지 계급표에 맞춰 정리하지 않는다. 호석과 미옥이 예지와 상우를 만나면서 부러움과 불편함을 느끼고, 예지와 상우 역시 자신들에게 없는 무엇을 상대 부부에게서 발견한다.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가능한 사랑’은 지난 12일 은사자상-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국제비평가협회(FIPRESCI)도 경쟁부문 최고작으로 선정했다. 베니스 공식 자료에 기록된 상영시간은 164분이다. 전도연이 미옥, 설경구가 호석, 조여정이 예지, 조인성이 상우를 맡았다.

[가능한 사랑①] 해고 노동자와 다큐 감독 부부의 만남…이창동이 파고든 계급·욕망·사랑.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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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첫 문장은 “남의 것을 탐하지 말라”다. 십계명의 마지막 계명이 164분의 출발점에 놓인다.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Krzysztof Kieślowski)의 ‘데칼로그 10’과 연결되는 문구지만, ‘가능한 사랑’은 남의 배우자를 탐하는 멜로드라마에 머물지 않는다. 베니스와 토론토에서 작품을 본 해외 비평 역시 욕망을 돈과 계급, 타인의 삶, 창작 행위까지 넓혀 읽었다.

미옥이 처음 마주하는 욕망은 거창하지 않다. 해고 전 평범하게 일하던 남편, 이전의 생활, 자신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예지 부부의 일상이 차례로 시야에 들어온다. 미옥은 예지가 건네는 관심을 받아들이면서 가까워진다. 동시에 두 사람 사이에는 말로 지울 수 없는 경제적 거리가 남는다.

호석에게 해고는 월급이 사라진 사건보다 훨씬 크다. 노동을 통해 얻었던 사회적 자리와 자기 존중이 함께 흔들렸다. 설경구는 21일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언론시사회와 기자간담회에서 호석을 해고 뒤 수치심과 죄책감, 분노가 뒤엉킨 인물로 설명했다. 이전에는 넉넉하지 않아도 노동하며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고 작은 행복을 누렸지만, 해고와 이후의 일을 지나며 자아가 깨졌다고 해석했다.

이창동 감독 ‘가능한 사랑’, 베네치아 은사자상에 이 대통령 축하    사진=2026. 09.13. labiennale , @jacopo_salvi
이창동 감독 ‘가능한 사랑’, 베네치아 은사자상에 이 대통령 축하    사진=2026. 09.13. labiennale , @jacopo_salvi

영화가 노동자를 다루는 방식도 여기에서 갈린다. 호석을 영웅적인 투사로 세우지도 않고 패배한 노동자로 소비하지도 않는다. 일터에서 밀려난 뒤 생활 안으로 돌아온 사람이 어떤 표정으로 아내를 대하고, 자신보다 훨씬 많은 것을 가진 사람 앞에서 몸을 움츠리고, 과거의 상처를 어떻게 품고 사는지를 오랜 시간 따라간다.

2009년 대규모 정리해고와 파업, 강제 진압에서 영화의 구상이 시작됐다는 이창동 감독의 설명도 21일 기자간담회에서 나왔다. 처음에는 노동자의 이야기를 직접 영화로 준비했지만 작업을 중단했고, 시간이 흐른 뒤 타인의 고통을 영화로 옮기는 사람의 윤리까지 이야기 안으로 들어오면서 다시 제작에 나섰다.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가 존재하는 이유도 노동 문제와 맞닿는다. 예지는 해고 노동자를 돕거나 지지하는 외부인에 머물지 않는다. 카메라를 들고 노동자의 집 안으로 들어오며 호석과 미옥의 이야기를 자신의 작품으로 옮기려 한다. 선의로 시작한 촬영이라도 질문하는 사람과 대답하는 사람, 편집하는 사람과 편집되는 사람 사이에는 힘의 차이가 생긴다.

예지가 미옥에게 친구가 되자고 말한다고 해서 차이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두 사람이 같은 식탁에 앉고 함께 시간을 보내도 한 사람은 상대의 삶을 작품으로 만들 수 있는 위치에 있다. 호석과 미옥에게는 실제 삶인 사건이 예지에게는 영화의 소재가 될 수 있다.

[가능한 사랑①] 해고 노동자와 다큐 감독 부부의 만남…이창동이 파고든 계급·욕망·사랑.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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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감독은 언론시사회에서 타인의 삶을 다루는 창작자의 윤리를 오랫동안 고민해왔다고 설명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영화적 재료로 소비하지 않으면서 당사자의 이야기로 남길 수 있는 방법을 평생 생각해왔다는 취지다. ‘가능한 사랑’ 안에서 예지가 카메라를 들고 있는 이유도 감독 자신의 위치와 떨어져 있지 않다.

예지를 악의적인 착취자로 만들었다면 관계는 훨씬 단순해졌을 것이다. 영화는 친절과 폭력을 서로 반대편에 놓지 않는다. 호의가 상대에게 불편함이 될 수 있고, 이해하려는 행동에도 권력관계가 따라붙을 수 있다. 미옥에게 친구가 되고 싶어 하는 예지의 마음과 노동자의 삶을 자신의 영화 안으로 가져오려는 감독의 욕망도 한 사람 안에서 동시에 움직인다.

조여정은 기자간담회에서 예지가 탐하는 것을 “남의 인생을 내 영화에 담고자 하는 욕망”으로 해석했다. 조인성은 상우에게 더 가지려는 욕망이 있다고 봤고, 설경구는 호석에게는 탐한 것보다 빼앗긴 것이 더 많다고 설명했다. 같은 계명을 네 인물에게 적용해도 욕망의 방향이 달라지는 셈이다.

상우가 두 부부 사이에 들어오면서 경제적 격차는 더욱 직접적인 형태를 띤다. 예지가 문화와 기록의 영역에서 미옥 부부에게 접근한다면 상우는 자본을 통해 얻은 생활 조건 자체를 가지고 등장한다. 미옥이 상우에게 느끼는 감정도 남녀 사이의 끌림 하나로 정리되지 않는다. 친절하고 여유 있는 태도, 자신이 살아보지 못한 생활, 호석과는 다른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함께 겹친다.

설경구·전도연·조여정·조인성 뭉쳤다…이창동 '가능한 사랑', 베니스 홀렸다  사진=2026. 09.06. 제83회 베니스영화제 공식 유튜브 채널 갈무리 (이창동 감독이 '버닝'(2018) 이후 8년 만에 내놓은 신작 '가능한 사랑'이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공식 상영을 시작으로 글로벌 영화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설경구·전도연·조여정·조인성 뭉쳤다…이창동 '가능한 사랑', 베니스 홀렸다  사진=2026. 09.06. 제83회 베니스영화제 공식 유튜브 채널 갈무리 (이창동 감독이 '버닝'(2018) 이후 8년 만에 내놓은 신작 '가능한 사랑'이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공식 상영을 시작으로 글로벌 영화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욕망은 그래서 사람에게만 향하지 않는다. 상대가 가진 돈, 직업, 생활 방식, 자유, 사회적 위치까지 대상이 된다. 경제적 격차는 배경으로 머물지 않고 부부관계와 우정, 호감이 작동하는 조건이 된다.

호석도 같은 구조 안에 있다. 해고 노동자가 부유한 사람의 재산을 부러워하는 익숙한 구도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이미 가지고 있던 노동의 자리와 평범한 생활을 빼앗긴 사람이라는 점에서 출발한다. 남의 것을 원하는 욕망보다 자신이 잃은 삶으로 돌아가려는 마음이 먼저 놓인다. 설경구가 기자간담회에서 호석의 감정을 수치심, 죄책감, 분노와 연결해 설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옥은 호석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남편과 함께 추락하는 데 머물지 않고 자신에게 닫혀 있던 외부의 삶을 바라본다. 예지와 가까워지는 일을 즐거워하면서도 계급의 차이에서 오는 미묘한 불편함을 느끼고, 상우를 접하면서 또 다른 감정에 닿는다. ‘가능한 사랑’이 미옥을 피해자의 아내라는 위치에 묶어두지 않는 대목이다.

[가능한 사랑①] 해고 노동자와 다큐 감독 부부의 만남…이창동이 파고든 계급·욕망·사랑.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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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사람이 함께 여름휴가를 떠난 뒤에는 다큐멘터리 감독과 촬영 대상이라는 첫 관계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두 가족이 같은 공간에 머물고 서로의 배우자를 가까이 접하면서 각자가 지켜온 생활의 균열도 드러난다. 경제적 위치가 다른 두 부부를 맞세우는 구도 위에 결혼생활의 결핍과 성적 긴장, 자존심, 부러움, 경멸과 호감이 겹친다.

이창동 감독은 현실을 한 가지 개념으로 정리하지 않는다. 해고 노동자를 다룬다고 해서 노동영화의 문법만 따르지 않고, 두 부부가 얽힌다고 해서 불륜극의 구조만 밀어붙이지 않는다. 다큐멘터리를 찍는 인물을 등장시킨 뒤에도 창작자 윤리에 관한 영화 하나로 좁히지 않는다. 감독은 21일 기자간담회에서 해고와 계급 갈등, 사람과 사람의 관계, 창작자의 윤리가 서로 얽힌 복잡한 세계를 다루려 했다고 설명했다.

계급을 바라보는 방식에서도 단순한 대립을 비껴간다. 돈이 많은 사람이 언제나 행복한 것도 아니고, 경제적 약자가 언제나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선택할 수 있는 범위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한쪽에게 휴가와 별장은 생활의 일부지만 다른 한쪽에게는 낯선 세계다. 같은 공간에 머물러도 출발선은 같아지지 않는다.

카메라 역시 계급의 차이를 없애지 못한다. 예지는 노동자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고 싶어 하지만 촬영을 결정하고 질문을 선택하고 완성된 영화를 소유할 권한까지 갖고 있다. 미옥이 카메라 앞에 앉는 순간 자신의 삶을 말할 기회를 얻는 동시에 다른 사람이 구성할 이야기의 일부가 된다.

제99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국제장편부문 한국 출품작 선정 심사에서도 이런 관계의 복합성이 언급됐다. 심사위원단은 계급이 다른 두 부부의 이야기에서 ‘친절한 폭력’과 자유, 행복을 읽었고, 입체적인 캐릭터와 관계의 다층성을 높게 평가했다.

‘친절한 폭력’이라는 표현은 예지와 미옥 사이만 가리키지 않는다. 사람을 돕겠다는 태도, 사랑한다는 확신, 상대를 이해한다고 믿는 마음에도 힘의 차이는 들어갈 수 있다. 돈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카메라를 든 사람과 카메라 앞에 선 사람, 직장을 유지한 사람과 해고된 사람의 관계에서는 같은 말과 행동도 서로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가능한 사랑①] 해고 노동자와 다큐 감독 부부의 만남…이창동이 파고든 계급·욕망·사랑.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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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인간의 욕망을 제거해야 할 결함으로만 처리하지 않는다. 탐하지 말라는 계명을 첫머리에 내놓은 뒤 오히려 남의 것을 전혀 탐하지 않고 살아가는 일이 가능한지 네 사람의 삶을 통해 오래 들여다본다. 미옥과 호석, 예지와 상우는 모두 상대에게 없는 것을 가진 동시에 자기 삶 안에 비어 있는 것을 품고 있다.

제목에 붙은 ‘가능한’이라는 단어도 여기에서 무게를 얻는다. 이창동 감독은 지난 8월 제작보고회에서 흔히 사랑 이야기라고 하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전제로 생각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반대로 ‘가능한 사랑’을 이야기한다고 설명했다. 집단해고처럼 평범한 사람의 삶 전체를 흔드는 사건을 지나더라도 삶을 지탱하는 것은 사랑이라고 말했다.

사랑이 계급을 없애는 것은 아니다. 상처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타인의 삶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가능한 사랑’은 서로 다른 위치에 선 사람들이 각자의 욕망과 결핍을 안은 채 어디까지 상대에게 다가갈 수 있는지를 164분 동안 따라간다.

베니스에서 은사자상-심사위원대상을 받은 뒤 9일 만에 열린 21일 국내 언론시사회에는 이창동 감독과 설경구, 조인성, 조여정이 참석했다. 전도연은 미국 뉴욕에서 연극 ‘벚꽃동산’ 공연 일정을 소화하고 있어 화상으로 기자간담회에 참여했다.

‘가능한 사랑’은 9월 23일 국내 일부 극장에서 개봉한다. 11월 6일부터는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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