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가진 듯 보이지만 속내를 감춘 상우, 타인의 삶을 기록하면서 자신의 결핍과 마주하는 예지
이창동 감독과 첫 작업한 두 배우, 부유한 부부를 선악으로 나누지 않고 친절·욕망·자본의 모순으로 확장
조인성은 드러내지 않는 힘, 조여정은 공감과 착취 사이의 흔들림으로 전도연·설경구 부부와 다른 축 형성
[KtN 김동희기자]상우는 많은 것을 설명하지 않는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부드럽다. 해고 노동자 최호석과 아내 안미옥을 만나서도 적대감을 드러내지 않는다. 미옥에게 친절하고, 다큐멘터리 감독인 아내 이예지가 노동자들의 삶을 찍는 일에도 거리를 두지 않는다. 그런데 ‘가능한 사랑’에서 상우가 차지하는 공간은 대사의 양보다 크다. 돈과 생활의 여유,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상우 주변에 놓여 있고, 네 사람이 가까워질수록 상우가 가진 힘도 모습을 드러낸다.
이창동 감독은 상우를 “보이지 않는 이야기를 지배하는 구조에 있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힘과 매력, 능력을 갖췄지만 자신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인물을 구상하면서 조인성 외에는 떠올리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조인성이 당시 다른 작품의 연속 촬영으로 체력적인 부담을 느끼던 상황에서도 출연을 결정하면서 두 사람의 첫 영화 작업이 성사됐다.
조인성은 25일 제작보고회에서 이창동 감독에게 배우로서 배운다는 마음으로 현장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경력이 긴 스태프와 배우들까지 연출의 말을 놓치지 않으려 집중하면서 초심으로 돌아간 듯한 현장이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조여정도 이창동 감독과의 첫 작업에서 인물을 만들어 보이려 하기보다 예지로 현장에 머무는 데 집중했다고 밝혔다.
두 배우에게 주어진 인물은 호석과 미옥보다 경제적으로 훨씬 안정된 부부다. 노동자의 해고와 생계 위기가 일상의 중심을 이루는 호석 부부와 달리 상우와 예지는 넓은 선택지를 가진 채 살아간다. 경제적 차이는 분명하지만 이창동 감독은 상우와 예지를 부유한 계급의 전형적인 악역으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두 사람도 서로 다른 욕망과 결핍을 품고 있고, 호석과 미옥을 만난 뒤 기존 관계 안에서 보이지 않던 부분을 마주한다.
상우를 연기하는 조인성이 먼저 해야 할 일도 부유함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다.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힘을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게 해야 한다.
조인성은 21일 언론시사회와 기자간담회에서 상우를 “어떤 면에서는 친절하지만, 이면에는 무서운 독을 가진 인물”로 설명했다. 갖지 않아야 할 것을 가지려는 욕망이 모습을 드러낼 때 상우의 다른 얼굴이 나타난다는 해석이다.
상우의 친절은 영화 초반부터 중요한 성격으로 작동한다. 미옥을 함부로 대하지 않고 호석 부부의 형편을 노골적으로 평가하지도 않는다. 말과 행동만 놓고 보면 무례함보다 배려가 앞선다. 하지만 상우가 가진 경제적 여유와 선택권은 사라지지 않는다. 친절한 사람이 상대보다 훨씬 많은 자원을 가진 상황에서 두 사람의 관계가 정말 같은 높이에 놓일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로 남는다.
조인성은 이 차이를 공격적인 행동보다 여유로 표현한다. 상대의 반응을 먼저 살펴야 할 필요가 적은 사람, 자신이 있는 공간을 낯설어하지 않는 사람, 쉽게 흔들리지 않는 사람의 몸가짐이 상우에게 붙는다. 호석이 주변을 경계하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수록 상우의 안정감은 더 크게 대비된다.
외형적인 매력도 상우에게는 단순한 스타 캐스팅의 결과가 아니다. 이창동 감독이 상우를 구상하며 힘과 매력, 능력을 동시에 언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옥이 상우에게 끌리는 과정은 한 남자의 외모에 대한 호감만으로 좁아지지 않는다. 상우의 태도와 경제적 여유, 호석에게서는 보기 어려워진 안정감까지 한꺼번에 들어온다. 상우 개인과 상우가 살아가는 삶의 조건을 분리하기 어려워진다.
Screen Daily도 상우를 경제적으로 성공했지만 감정을 쉽게 노출하지 않는 인물로 소개했다. 두 부부의 관계에서 돈의 유무가 거의 모든 상호작용에 영향을 미치며, 상우와 예지가 보여주는 작은 행동들도 노동자 부부와의 권력 차이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분석했다.
상우의 침묵은 호석의 침묵과도 다르다. 호석에게 말을 줄이는 행동은 해고와 상처, 수치심에서 비롯된다. 상우에게 침묵은 자신의 힘과 욕망을 쉽게 읽히지 않게 한다. 두 남자가 모두 감정을 많이 설명하지 않지만 한쪽의 침묵에는 상실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여유와 통제가 있다.
조인성이 크게 감정을 밀어붙이지 않는 이유도 상우의 위치와 맞물린다. 상우가 일찍 속내를 드러내면 두 부부의 관계는 가진 사람과 가지지 못한 사람의 대결로 단순해진다. 친절하고 매력적인 상태가 오래 유지돼야 미옥이 느끼는 호감과 호석이 느끼는 불편함, 예지가 남편에게 기대는 경제적 기반이 한꺼번에 성립한다.
조인성과 이창동 감독의 첫 작업이라는 사실은 배우의 기존 이미지를 사용하는 방식에서도 차이를 만든다. 조인성은 그동안 액션과 멜로, 시대극을 오가며 신체적 움직임과 감정을 전면에 내놓는 역할을 여러 차례 맡았다. ‘가능한 사랑’의 상우는 반대로 힘을 밖으로 거의 사용하지 않는 인물이다. 배우가 가진 큰 체격과 스타의 존재감은 유지하면서도 행동을 줄이고 감정의 출구를 닫는다.
상우를 둘러싼 불편함도 명확한 악행보다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에서 생긴다. 돈이 있고 공간이 있고 선택권이 있다. 원한다면 상대보다 훨씬 쉽게 움직일 수도 있다. 능력을 실제로 행사하는 순간보다 행사할 수 있다는 사실이 관계의 균형을 바꾼다.
미국 RogerEbert.com은 상우를 부와 영향력을 가진 인물로 설명하면서 예지와 미옥의 관계를 둘러싼 계급 차이에 주목했다. 상우가 예지에게 노동자 부부 앞에서 보이는 태도를 일종의 연기처럼 언급하는 대목은 부유한 부부가 자신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을 만날 때 스스로의 행동까지 조절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상우보다 더 복잡한 위치에 서는 인물은 예지다.
예지는 노동자가 아니다. 동시에 상우처럼 자본을 직접 쥔 인물도 아니다.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노동 문제에 관심을 갖고 해고 노동자에게 다가가지만 영화 제작과 생활의 안정은 상우의 경제력과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다.
이창동 감독은 예지를 자신과 가장 가까운 입장을 가진 인물로 설명했다. 조여정을 캐스팅하면서 배우로서의 기량만이 아니라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자의식과 공감 능력, 감수성을 언급했다. 예지의 내면을 이해할 수 있는 배우라고 판단했다는 설명이다.
조여정은 출연 제안을 받은 뒤 곧바로 자신감을 내세우지 않았다. 시나리오의 여운을 느끼면서도 자신이 작품이 요구하는 깊이를 감당할 수 있는지를 며칠간 고민한 뒤 출연 의사를 전했다고 밝혔다.
예지의 첫인상은 적극적이다. 노동자의 삶을 기록하겠다는 목적이 있고 사람에게 먼저 다가간다. 미옥에게 인터뷰를 제안하고 관계를 넓혀가며 호석의 마음도 열려고 한다. 미옥에게 친구가 되자고 말할 정도로 촬영 대상과의 거리를 줄인다.
카메라가 가까워질수록 예지의 위치는 더 복잡해진다.
호석과 미옥이 겪은 해고와 경제적 어려움은 두 사람에게 실제 삶이다. 예지에게 같은 경험은 다큐멘터리로 구성해야 할 대상이기도 하다. 상대의 고통에 진심으로 공감하면서 동시에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는 욕망이 존재한다. 두 마음 가운데 하나를 거짓이라고 판단하면 예지는 훨씬 단순해지지만 영화는 어느 하나를 지우지 않는다.
Screen Daily는 네 인물 가운데 예지를 특히 복합적인 인물로 짚었다. 부유한 남편과 노동자 부부 사이의 불편한 중간 위치에 놓여 있으며, 조여정의 연기가 예지의 행동이 공감에서 나온 것인지 착취로 향하는 것인지 쉽게 판별되지 않게 만든다고 평가했다. 예지 자신조차 자신의 행동을 명확히 알고 있는지 확신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조여정의 연기는 바로 그 모호함을 유지하는 데 놓여 있다. 노동자의 고통을 바라볼 때 냉소적인 감독처럼 행동하지 않고, 미옥에게 접근할 때 의도적인 조종자로 보이려고 하지도 않는다. 예지가 스스로를 선의를 가진 사람이라고 믿을 수 있어야 카메라가 점점 사적인 영역으로 들어가는 과정이 더 불편해진다.
RogerEbert.com도 예지를 자신의 사회적 지위가 직업과 인간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충분히 의식하지 않는 인물로 읽었다. 옳다고 생각하는 말을 하고 행동하면서도 자신이 가진 조건이 상대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까지 모두 헤아리지는 못한다는 평가다.
영화 안에서 예지의 카메라는 두 가지 기능을 동시에 가진다. 호석처럼 자신의 감정을 말하기 어려워하는 사람이 카메라 앞에서 예상하지 못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반대로 카메라가 놓이는 순간 촬영하는 사람과 촬영되는 사람의 위치가 갈린다. 상대에게 말할 기회를 주는 도구가 상대의 사생활을 침범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이창동 감독은 예지를 통해 타인의 고통을 영화로 다루는 창작자의 윤리를 직접 끌어왔다. 타인의 삶을 얼마나 당사자의 이야기로 표현할 수 있는지, 고통을 작품의 재료로 소비하지 않을 수 있는지를 오랫동안 고민해왔다고 밝혔다. 영화감독 역시 자본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어려운 만큼 예지가 상우의 경제력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은 관계와 자신의 처지를 연결해 설명하기도 했다.
예지는 그래서 계급 갈등의 관찰자가 아니다. 계급 관계 안에 이미 들어가 있다.
노동자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생활 기반은 상우에게 연결돼 있고, 미옥을 친구로 생각하면서 동시에 카메라의 대상이라고 여긴다. 타인의 삶을 바꾸고 싶어 하는 마음과 타인의 삶을 자신의 영화에 넣고 싶은 욕망이 함께 움직인다.
조여정은 21일 기자간담회에서 경제적 안정을 위해 상우와 결혼한 예지가 호석과 미옥을 만나면서 충만한 삶이나 관계가 경제적인 안정감과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닿는다고 설명했다.
예지의 결혼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대목이다. 경제적으로 부족하지 않은 생활을 선택했지만 결핍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노동자 부부에게 다가가는 행동은 직업적 관심인 동시에 자신의 결혼생활 밖에 있는 관계를 들여다보는 일이 된다.
미옥과 예지의 관계에서도 조여정의 연기는 친밀감과 관찰자의 태도를 함께 남긴다. 미옥의 말을 듣고 함께 웃으며 가까워지지만 카메라를 내려놓았다고 해서 감독의 시선까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상대의 말을 들으면서 동시에 어떤 이야기로 남길 수 있을지를 생각하는 사람의 이중적인 위치가 이어진다.
조여정에게 계급 문제를 다루는 영화라는 점에서는 2019년 ‘기생충’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두 작품에서 맡은 인물의 기능은 상당히 다르다.
‘기생충’의 연교가 부유한 가정 내부에서 계급 격차를 거의 의식하지 못한 채 다른 계층의 사람들이 들어오는 것을 받아들이는 인물이었다면, ‘가능한 사랑’의 예지는 먼저 노동자의 삶으로 들어간다. 카메라까지 들고 계급 문제를 자신의 직업적 관심으로 삼는다. 경제적 격차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바로 그 차이가 예지를 더 까다로운 인물로 만든다. 사회문제를 알고 관심을 갖는다는 사실이 상대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뜻은 아니다. 선의를 갖고 있다는 사실도 힘의 차이를 없애주지 않는다. 예지가 노동자에게 가까워질수록 자신과 상대 사이에 존재하는 경제적·문화적 거리는 오히려 더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영국 Guardian은 예지와 상우를 단순한 착취자로 정리하지 않는 점을 작품의 특징으로 짚었다. 예지의 작업에는 노동자에 대한 관심이 있지만 관계가 깊어지면서 창작 욕망과 계급적 무감각이 함께 나타나고, 영화는 두 인물을 도식적인 악역으로 밀어넣지 않은 채 우정과 착취 사이의 불편한 영역을 따라간다.
조인성과 조여정의 연기가 만나는 곳도 여기에 있다.
상우는 자신이 가진 힘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예지는 자신이 가진 힘을 충분히 의식하지 못한다. 한 사람에게는 자본이 있고 다른 한 사람에게는 카메라가 있다. 두 도구 모두 상대의 삶에 개입할 수 있는 힘을 가진다.
호석과 미옥 앞에서 상우와 예지의 친절이 모두 같은 성격을 갖지 않는 이유도 두 배우의 차이에서 나온다. 상우의 친절에는 자신감과 여유가 있고, 예지의 친절에는 호기심과 공감, 창작자의 욕망이 함께 섞인다. 조인성은 감정을 감추면서 상우를 어렵게 읽히는 인물로 만들고, 조여정은 감정을 적극적으로 내보이면서도 예지의 진짜 의도를 하나로 확정할 수 없게 한다.
두 사람이 부부라는 사실도 역설적으로 작용한다. 경제적으로는 같은 생활을 공유하지만 세상을 대하는 위치는 다르다. 상우가 자본과 선택권을 가진 사람이라면 예지는 상우의 경제적 기반 안에서 자신의 작품과 가치관을 유지하려 한다. 예지가 노동 문제를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부부의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자본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창동 감독이 “영화감독으로서 나 역시 자본과 결혼하고 사는 삶인지 모른다”고 말한 이유도 예지와 상우의 관계에 닿아 있다. 영화 제작자가 자본을 사용하면서 자본과 거리를 두려 하고, 예지는 남편이 만들어주는 경제적 안정 속에서 노동자의 삶을 카메라에 담는다.
이 모순을 누가 위선적이고 누가 옳은지 판정하는 방향으로 가져가지 않는 것이 ‘가능한 사랑’의 선택이다. 배우들도 인물을 대신 변호하거나 처벌하지 않는다.
조인성은 상우가 가진 독을 일찍 꺼내지 않고 친절과 여유 안에 오래 감춘다. 조여정은 예지를 선의의 다큐멘터리 감독으로만 정리하지 않고 공감과 욕망이 동시에 작동하도록 남겨둔다. 호석과 미옥이 두 사람을 만나면서 느끼는 부러움과 불편함도 그래서 쉽게 한쪽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이창동 감독과 처음 만난 두 배우의 역할은 전도연·설경구가 만든 노동자 부부의 반대편에 부유한 부부를 세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상우는 돈을 가진 사람도 무엇인가를 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예지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사람도 상대의 삶을 자신의 것으로 가져갈 수 있다는 사실을 품는다.
조인성과 조여정이 만들어낸 부부가 없었다면 ‘가능한 사랑’은 해고 노동자의 상처를 바라보는 이야기로 남을 수 있었다. 상우의 자본과 예지의 카메라가 들어오면서 영화는 가진 사람과 잃은 사람, 바라보는 사람과 바라봄을 받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과 탐하는 사람의 경계를 한꺼번에 흔든다. 네 인물 사이에서 끝까지 남는 것은 누가 더 선한가라는 구분이 아니라 서로 다른 위치에 선 사람들이 상대의 삶에 얼마나 깊이 들어갈 수 있는가에 대한 불편한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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