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의 말이여, 그대는 어디로 가는가?
[KtN 박준식기자] 정치는 신뢰로 움직인다. 신뢰를 잃은 정치란, 방향 감각을 상실한 내비게이션 같은 것이다. 목적지는 민주주의지만, 지도에는 권력 유지와 책임 회피만이 가득하다. 그런 점에서 홍준표 대구시장의 ‘의례적 답장’ 해명은 한국 정치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연극 같다. 한 편의 블랙코미디다.
그의 첫 번째 대사는 자신만만했다. "전화 한 통, 카톡 한 자도 나올 것 없다." 얼마나 단호하고, 얼마나 뚜렷한 자기 확신인가. 마치 모든 것이 명백한 듯 보였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뜻밖의 반전이 펼쳐졌다. 카카오톡 대화가 공개되자, 그는 "의례적인 답장"이라고 했다.
이쯤 되면 대구시민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우리는 정치인을 신뢰하고, 그들의 말을 믿고 투표를 한다. 하지만 그 말이 시간이 지나면서 변형되고, 가벼워지며, 심지어 희화화된다면, 정치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정치란 권력을 위한 언어유희인가, 아니면 국민과의 신성한 계약인가?
정치인의 말, 신뢰의 바닥을 향해 가다
홍 시장의 이번 ‘언어적 반전’은 정치적 책임과 신뢰가 어떻게 붕괴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정치인이 자신의 말을 이렇게 가볍게 번복할 수 있다면, 과연 다음에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그는 "범죄에 연루된 것이 밝혀지면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선언했다. 이것이 하나의 계약이었다면, 이제 국민은 그 계약이 이행되기를 기다릴 것이다. 하지만 정치에서 계약이란 한쪽만 지키는 법이다. 국민은 투표를 통해 정치인을 선택하지만, 정치인은 자신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대신 법적 책임과 정치적 책임을 슬쩍 혼동하면서 시간을 끈다.
법적 책임은 범죄를 입증하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정치적 책임은 더 단순하다. 국민이 신뢰하지 못하는 순간,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한국 정치에서 정치적 책임이란 "법원 판결이 나기 전까지는 무죄"라는 변명과 동일시된다. 정치인들은 법적 유죄가 확정되지 않는 한, 자신은 ‘아직 괜찮다’고 믿는다. 하지만 국민의 신뢰라는 재판에서는 이미 유죄가 선고된 것은 아닌가?
대구시민이 선택한 시장, 그리고 불편한 진실
대구시민은 홍 시장을 선택했다. 이제 그들은 자신이 선택한 시장이 어떤 모습으로 정치를 하는지를 지켜보는 중이다. 대구시민은 시장이 대구를 발전시키기를 원했지, ‘의례적 답장’이라는 새로운 정치 용어를 만들어내기를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대구시민들은 어떤 기분일까? 한때 확신에 찬 그의 언어를 신뢰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의 말을 다시 곱씹어 보아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는 단순히 한 정치인의 신뢰 문제가 아니라, 정치 자체에 대한 회의로 이어질 수 있다.
정치인은 유권자의 얼굴이다. 그가 신뢰를 잃으면, 시민도 함께 손해를 본다. 그의 말이 농담처럼 들릴수록, 시민의 정치적 권리 또한 희화화된다. 결국 문제는 홍 시장 개인이 아니라, 정치적 신뢰가 사라지고 있는 현상 그 자체다.
정치라는 단어조차 불쌍해지는 현실
정치는 고귀한 활동이었다. 한때는 국가와 국민을 위한 신념과 철학이 녹아 있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지금 한국 정치에서 정치는 "책임지지 않고 버티는 기술"이 되어가고 있다. 책임을 지는 대신 말을 바꾸고, 신뢰를 회복하는 대신 시간 끌기에 돌입한다.
홍 시장의 이번 ‘언어적 전환’은 단순한 실언이 아니다. 이것은 한국 정치의 전형적인 구조적 문제를 보여준다. 정치인은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아도 되고, 국민과의 약속이 쉽게 무시될 수 있으며, 법적 책임만 모면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이 만연한 사회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이쯤 되면 정치라는 단어조차 불쌍하다. 정치란 원래 공공의 선을 위한 활동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자기방어와 언어유희, 책임 회피의 도구가 되고 있다. 신뢰를 잃은 정치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정치는 다시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까?
홍 시장의 논란을 바라보며,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정치인은 자신의 말을 신뢰받고 싶어 하는가? 아니면, 말을 쉽게 번복할 수 있는 특권을 원하고 있는가?
✅ 정치인의 언어에 대한 명확한 책임감이 필요하다.
✅ 공적 발언의 무게를 인정해야 한다.
✅ 책임을 지지 않는 정치인을 유권자가 심판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는 여전히 중요하다. 문제는 정치인이 그것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가이다. 정치는 권력을 위한 장난이 아니라, 국민과의 계약이다. 정치인의 말이 다시금 신뢰를 회복하려면, 지금과 같은 언어적 기만이 사라져야 한다.
지금 한국 정치에서, 우리는 언제쯤 진지한 정치를 볼 수 있을까? 정치인의 말이 다시금 국민과의 신성한 약속으로 기능하는 날이 올 수 있을까?
홍 시장의 ‘의례적 답장’은 하나의 해프닝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 정치의 블랙코미디다. 그리고 이 희극이 계속된다면, 민주주의라는 무대에서 진짜 희생자는 국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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