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유죄, 국제 배상, 국민 피해… 그런데도 책임자는 법 위에 있다
[KtN 박준식기자] 2025년 대한민국 정부는 외국계 사모펀드 메이슨 캐피탈에게 438억 원의 배상금을 지급하게 됐다. 그 원인은 명확하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박근혜 정부가 국민연금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그 결과 외국인 투자자가 손실을 입었다. 대한민국 대법원은 이미 박근혜 전 대통령, 문형표 전 복지부 장관, 홍완선 전 기금운용본부장의 유죄를 확정했고, 국제 중재판정부는 한국 정부의 책임을 판시했다.
그런데도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 손해의 직접적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들에게, 아무런 구상권 청구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손해는 분명히 발생했고, 범죄는 입증되었으며, 배상도 확정되었다. 그런데 책임은 누구에게도 묻지 않았다.
구상권, 법적 권한은 존재한다… 문제는 '의지'다
구상권은 법적으로 가능하다. 국가배상법 제5조 제1항에 따르면, 국가가 배상한 경우 손해를 야기한 공무원 등에게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다. 특히 형사 유죄가 확정된 사안에 대해서는 구상 소송의 실익과 승소 가능성도 상당히 높다.
▶문형표 : 형사 유죄 확정
▶홍완선 : 형사 유죄 확정
▶박근혜 : 국정농단 유죄 확정
▶이재용 : 뇌물 제공 및 승계 연루 혐의로 대법원 유죄 확정 (다른 건 기준)
따라서 법적 기준에서 구상 청구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구상권이 행사되지 않는 것은 법률적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판단의 회피’다.
구상권을 둘러싼 '3중 침묵 구조'
법무부는 "ISDS 판결을 분석 중"이라는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메이슨 사건은 새로운 정보가 아니라, 기존 형사판결을 기반으로 구성된 사안이다. 정부는 소송 전에도, 패소 이후에도 구상에 대한 어떤 법적 검토 결과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1·2심 법원은 이재용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는 대법원과 국제사법의 판단과 충돌하며, 구상권 행사에 ‘법적 모호성’을 만들어내는 배경이 된다. 결과적으로 행정부는 “무죄 판결이 내려진 인물에게 구상권을 청구하기 어렵다”는 논리를 선택할 수 있게 됐다.
국회는 구상권 청구 필요성을 질의하거나, 손해 발생에 대한 청문회나 감사 청구를 하지 않고 있다. 이는 구조적으로 고의·과실에 의한 공적 손해가 발생하더라도, 그것이 공공 책임으로 귀결되지 않도록 만드는 '정치적 방기'다.
구상권 미청구는 국가 시스템의 자기포기다
국가는 법적 주체이자, 책임의 집행기관이다. 국민 세금으로 손해를 메웠다면, 그 손해의 원인을 제공한 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통치의 최소 윤리’다. 그런데도 구상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국가는 ‘재벌 앞에선 사면기관, 국민 앞에선 징수기관’으로 전락하게 된다.
구상권은 단순한 절차가 아니다. 그것은 정의의 상징이며, 사법 질서가 살아 있다는 최소한의 확인이다. 지금처럼 이 제도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범죄의 이득은 개인에게, 손해는 공동체에 귀속되는 구조가 고착된다.
구상권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메이슨 ISDS 판결을 근거로, 형사 유죄가 확정된 인물들에 대해 민사 구상권을 행사해야 한다. 만약 법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된다면, 그 법적 근거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국회는 구상권 미청구에 대한 감사원 감사 청구 혹은 국정조사 절차에 착수해야 한다.
공공 책임은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가 진정으로 국민의 정부라면, 구상권은 의무다. 선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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