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 시대, 한일 갈등의 문화적 전선

[영화 트렌드] '파묘' 인기가 파도 파도 심상치 않다...3.1절에 85만명, 450만 관객 돌파 사진=2024.03.01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영화 트렌드] '파묘' 인기가 파도 파도 심상치 않다...3.1절에 85만명, 450만 관객 돌파 사진=2024.03.01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김 규운기자] 전통적 영토 분쟁은 이제 교과서에서 스트리밍 플랫폼으로 옮겨가고 있다. 일본의 역사 왜곡은 단지 외교 문서나 교육 정책에 국한되지 않는다. 넷플릭스, 디즈니+, 유튜브 등 글로벌 콘텐츠 플랫폼은 역사 인식의 또 다른 전장이 되었고, 한일 간 갈등은 이제 ‘국경’이 아닌 ‘서사’를 놓고 벌어지고 있다.

OTT 콘텐츠, 국제 여론 형성의 새로운 무대

21세기 외교는 콘텐츠를 통해 움직인다. 특히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플랫폼은 국가의 공식 외교보다 더 강력한 인식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일본은 이를 활용해 제국주의 시절의 미화를 은근히 녹여낸 다큐멘터리,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을 제작·유통하고 있다.

예컨대, 일본 메이저 제작사들이 넷플릭스와 공동 제작한 일부 콘텐츠에서는 일제 식민지배에 대한 서술이 완전히 생략되거나, 우회적 표현으로 흐려져 있다. 반면 한국 콘텐츠는 그 피해의 역사를 드러내지만, 글로벌 시청자에게는 설명 없이 제공되며 ‘감정의 서사’로만 소비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비대칭적 구조는 국제 여론의 왜곡을 가져올 수 있다. 교과서에서 왜곡된 정보가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감정 없는 사실’처럼 번역될 때, 문화는 외교의 뒷전이 아니라 정면 충돌의 전선이 된다.

플랫폼 알고리즘은 중립적이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콘텐츠가 ‘보여지는 방식’이다. 플랫폼의 추천 알고리즘은 정치적 중립을 표방하지만, 사실상 인기, 자본, 클릭률에 기반한 구조다. 일본은 문화 자본과 IP 역량을 바탕으로 일제 강점기를 다룬 콘텐츠를 소비자 친화적 장르로 포장하는 반면, 한국의 역사 콘텐츠는 다큐멘터리나 비극 서사로 치우치며 노출 기회를 상대적으로 잃는다.

이는 플랫폼에서의 보이지 않는 정보 왜곡이며, 시청자들은 자연스럽게 역사에 대한 비대칭적 이미지를 소비하게 된다. 일제 강제징용, 위안부, 독도 문제 모두가 ‘논란’이 아닌 ‘맥락 없는 설정’으로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애플TV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 시즌2' 프레스 컨퍼런스에 배우 윤여정, 이민호, 김민하, 정은채, 김성규가 참석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있다. /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애플TV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 시즌2' 프레스 컨퍼런스에 배우 윤여정, 이민호, 김민하, 정은채, 김성규가 참석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있다. /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와 외교의 분리, 이제 유효하지 않다

콘텐츠 소비 시대의 핵심은, 더 이상 외교와 문화가 분리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일본이 교과서에서 독도를 ‘자국 영토’로 서술하는 동시에, 애니메이션에서 조선인을 ‘조연 악역’으로 재현하고, 사도광산을 관광 콘텐츠로 전시하는 흐름은 결국 서사의 통합 전략이다.

한국 역시 K-콘텐츠의 성공을 기반으로 문화 외교력을 키우고 있지만, 역사 콘텐츠는 여전히 ‘내부 감정 소비’에 머무르고 있다. 글로벌 시청자를 상대로 한 전략적 메시지 설계, 번역된 역사 서사의 기획이 아직 본격화되지 못한 상태다.

기억의 싸움은 이야기의 싸움이다

역사 왜곡은 이제 문장이나 지도에서만 벌어지지 않는다. 가장 조용한 전쟁은 시청각 콘텐츠 안에서 벌어진다. 기억의 싸움은 곧 이야기의 싸움이며, 지금 일본은 이야기에서 이기고 있다.

한국 콘텐츠는 보다 명확한 메시지 전략, 국제 시청자를 고려한 다층적 서사, 그리고 디지털 번역 시스템의 정교한 설계 없이는 이 흐름에 대응할 수 없다. 외교부가 아닌 창작자가, 교과서가 아닌 플랫폼이 이 싸움의 중심이 된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