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자본의 피로 이후, 물리적 기반에 다시 주목하는 시대
[KtN 최기형기자] 2025년 들어, 전 세계 주요국의 투자 지형에 이상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기술 중심의 고평가 종목에서 자금이 이탈하는 동시에, 상대적으로 저평가되어 있던 전통 산업군—인프라, 에너지, 반도체—에 대한 전략적 관심이 빠르게 고조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경기 대응 차원이 아니라, AI 중심 자본주의의 구조적 한계가 드러나면서 실물 기반 회복에 대한 필연적 회귀가 시작되었음을 보여주는 전환 신호다.
디지털 자본의 과열과 수익성 한계
지난 3년간 AI 및 데이터 기반 기술 산업은 사상 유례없는 자본 유입을 경험했다. 하지만 2024년 후반부터 이어진 주요 빅테크 기업들의 데이터센터 투자 중단, 수익성 지연에 대한 투자자 불신, 기술 고도화 대비 시장 확장성 둔화는 AI 산업이 이미 ‘성장 서사의 정점’을 통과했음을 암시한다.
그 결과, 자금은 이제 새로운 목적지를 찾고 있다. 성장성 대신 안정성과 실물 환류 가능성을 추구하는 흐름 속에서 실질 인프라와 자원 기반 산업이 ‘전략적 재배치’ 대상으로 부상하고 있다.
반도체의 이중적 위상: 기술 산업이자 안보 자산
반도체는 더 이상 민간 기술 경쟁의 결과물이 아니다. 미중 패권 갈등 속에서 반도체는 외교, 국방, 제조, 에너지 모든 분야에 연결된 국가 안보 자산으로 기능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 유럽, 일본, 한국 등은 반도체를 전략 산업으로 명시하고 국가 주도형 보조금, 규제 완화, 공급망 배타적 구성 등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는 민간 중심의 효율성을 우선했던 과거의 자본 배분 방식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구조다. 반도체는 이제 단기 수익률보다 국가 경쟁력 유지와 지정학적 자율성 확보를 위한 실물 자산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인프라와 에너지: 국가 주도의 실물 회귀
또 다른 흐름은 공공 인프라와 에너지 기반 시설에 대한 대규모 투자 귀환이다. 특히 탄소중립·에너지 전환·친환경 기술의 이행과 맞물리면서, 과거 방치되었던 전력망, 수소 인프라, 스마트그리드, 고속철도, 해저케이블 등에 대한 국가 단위의 투자 계획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이러한 투자는 단순한 건설 수요 창출을 넘어 기후·기술·산업 정책이 동시에 결합된 새로운 실물경제 전략이다. 디지털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물리적 경계—전력 부족, 데이터 저장, 물류 병목—는 실물 기반 투자의 당위성을 다시 강화하고 있으며, 이는 국가 경쟁력의 재구성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다.
투자 메커니즘의 재구성: 민간에서 국가로
핵심은 자금의 흐름뿐만 아니라, 그 자금을 움직이는 메커니즘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0년 간의 성장은 민간 자본과 시장의 역할에 의존했지만, 지금은 정부의 재정 정책, 보조금 시스템, 산업 규제의 조정 능력이 다시 중심이 되고 있다.
이는 팬데믹 이후 본격화된 ‘재정의 재정립’ 흐름과 맞물리며, 탈시장적 자본주의(De-marketized Capitalism)의 한 형태로 평가받기도 한다. 국가가 산업의 방향성과 구조적 분배에 개입하는 방식은 향후 자본 효율성보다 전략적 필요성이 우선하는 시대의 도래를 예고한다.
디지털에서 물질로: 자본의 재귀와 새로운 성장 전략의 모색
투자자들은 기술 서사보다 실질 수요와 현금흐름을 기반으로 한 산업에 대한 관심을 높일 필요가 있다.
공급망 구성, 자국 내 생산 인센티브, 기술 보호 전략은 단기 투자전략을 넘어 장기 안보 포트폴리오로 접근되어야 한다.
정부 주도 정책이 일시적 호재에 그치지 않기 위해선, 민간 자본과의 연계 모델(PPP 등)을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관건이다.
자산 시장 중심의 자본주의는 한계에 도달했고, 실질 생산력과 사회적 환류가 가능한 산업 구조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금 세계는 단순히 ‘무엇에 투자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국면이 아니다.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실물의 언어로 다시 쓰고 있는 중이다. AI의 서사가 퇴조하고, 실체 있는 자산들이 다시 전략 자산으로 재정의되는 이 시점은, 단기적 수익보다 구조적 리턴과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는 자본의 이정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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