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파면 이후, 대통령기록물은 누구의 손에 봉인되는가
[KtN 최기형기자] 2025년 4월, 대한민국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파면 사태 이후, 정치의 무게중심은 ‘권한의 공백’에서 ‘기억의 공백’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 중심에 선 것은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발의한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일명 내란기록 은폐방지법이다. 이 법안은 단순히 제도 개정 수준을 넘어, 국가기억의 소유권과 정치적 이해충돌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권한대행의 지정권, ‘기억의 사유화’인가 ‘절차의 공백’인가
대통령기록물은 단순한 행정문서의 집합이 아니다. 그것은 한 정권의 정책 판단, 정치적 결정, 그리고 그 내부의 권력 작동 방식이 고스란히 담긴 국가적 기억의 총체다. 그리고 이 기억은 보호기간이라는 이름으로 최대 30년간 봉인될 수 있다. 문제는 그 봉인의 열쇠를 현재 ‘권한대행’이 쥐고 있다는 점이다.
현행 대통령기록물법은 대통령이 궐위될 경우에도 보호기간 지정 권한이 그대로 권한대행에게 승계되도록 되어 있다. 이 조항은 법적 연속성이라는 측면에서는 타당할 수 있지만, 정치적 중립성과 이해충돌 방지라는 측면에서는 심각한 결함을 내포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에서 계엄문건 서명에 참여한 한덕수 총리가 기록물 보호기간을 지정하는 현재의 구조는, 정치적 자기보호의 가능성을 제도적으로 열어놓고 있는 셈이다.
용혜인 의원이 제시한 대안은 바로 이 지점에 명확한 선을 긋는다. 보호기간 지정은 대통령 또는 권한대행의 단독 권한이 아니라, 전문가 심의를 거쳐야 하며, 궐위 시에는 대통령실이 아닌 국가기록원장이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이는 ‘기록의 봉인’이라는 무형의 권력이 더 이상 사적인 권력으로 사용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기억의 공공성 회복 장치다.
‘세월호 7시간’의 재발을 막는 법적 균열
두 번째 축은 정보공개소송 중인 대통령기록물의 이관 제한이다. 이는 단순한 행정 효율성 문제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은 ‘국가기억의 우회적 은폐’를 막는 핵심 장치다. 대표 사례는 세월호 참사 당시의 ‘7시간 공백’에 대한 정보공개소송이다. 해당 문건은 소송 도중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되며, 법적 소송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지금까지도 10년 가까이 답보 상태에 놓여 있다.
이번 개정안은 정보공개소송이 진행 중인 기록물은 소송이 종료되고 공개 여부가 확정될 때까지 이관을 금지하도록 명시했다. 이것은 기록을 ‘시간에 의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권리에 따라 열리는 것’으로 전환하려는 시도이며, 정보공개법과 기록물관리법 간의 제도적 긴장을 해소하는 고도의 입법 설계다.
대통령기록물 이관의 ‘시간 정치학’…60일의 역설
세 번째 핵심은 이관의 물리적 시간 문제다. 대통령기록물은 방대한 양의 분류·정리·이관 작업을 요하며, 일반적으로 1년 이상이 소요된다. 그러나 현행법은 탄핵이 인용될 경우, 불과 60일 만에 이관을 완료하라고 규정한다. 이는 이관 과정의 질적 저하를 피할 수 없는 구조이며, 결과적으로 불완전한 이관이 곧 불완전한 진실로 귀결될 수 있다.
개정안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대통령이 사고로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상태에 들어가면 즉시 대통령기록관장이 이관 준비에 착수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기록의 정치가 단지 형식적 충족이 아니라 과정의 충실성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원칙을 반영한 것이다.
법제도의 공백에 권력이 은폐된다
‘기록은 말보다 오래 남는다.’ 그러나 그 기록이 제도적으로 은폐되고, 법적 허점으로 봉인된다면, 남는 것은 역사의 왜곡과 진실의 결핍뿐이다. 윤석열 파면 이후, 대통령기록물 보호와 이관의 문제는 단순한 행정 이슈가 아니라 권력의 퇴장 이후 진실이 어떤 방식으로 유통될 것인가를 가르는 분기점이 되었다.
용혜인의 법안은 대통령기록물법이라는 전문 행정법의 껍질 안에 숨겨져 있던 정치적 맹점을 노출시켰다. 보호기간이라는 제도가 ‘책임 회피의 통로’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 기록관 이관이 ‘진실의 회피 기술’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권한대행 체제가 ‘이해충돌의 실체’가 될 수 있다는 점. 이 모든 지적은 민주주의가 단지 정권 교체로 완결되지 않으며, 기록의 투명성과 공공성 확보를 통해서만 완성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기억의 민주주의’를 위한 입법, 이제 국회의 시간
‘내란기록 은폐방지법’은 12.3 내란이라는 정치적 비극 이후, 헌정 회복을 위한 첫 입법 실험이다. 윤석열 파면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며, 국가기록의 민주화는 그 시작점에서 반드시 다뤄야 할 과제다.
국회는 단지 법안을 심사하는 곳이 아니라, 기록을 정의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권한대행은 더 이상 대통령기록물을 스스로 보호기간 지정해서는 안 되며, 기억에 대한 권한은 정권이 아닌 시민에게 돌아가야 한다. 이제는 ‘정권 교체’ 이후, ‘기록의 주권’을 되찾는 시간이 필요하다. 정치의 진정한 종착지는 기록이며, 그 기록이 온전히 보존될 때, 민주주의는 다시 시작된다.
후원=NH농협 302-1678-6497-21 위대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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