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은 기술 경쟁이 아니라 구조 설계의 문제다

사진=페이스북 갈무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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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박준식기자] 탄소중립은 더 이상 선언의 문제가 아니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기술과 수치의 영역을 넘어 산업 전략과 제도 설계, 지역 구조의 재조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유럽과 미국이 이미 에너지 정책과 산업 보조금 체계를 연계하고 있고, 중국은 탄소 배출권 시장과 수출 경쟁력을 직접 결합시키고 있다. 탄소중립은 산업 질서의 교체로 작동하고 있다.

한국은 기술 역량 면에서는 앞서 있다. 그러나 구조 설계의 측면에서는 여전히 후발 국가에 머무르고 있다. 에너지, 산업, 금융, 지역이 통합된 체계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탄소중립은 국제 감시의 대상이 될 뿐, 국내 경제 구조를 바꾸는 전략으로는 기능하지 못한다.

탈탄소 기술만으로는 구조를 바꿀 수 없다

전력 부문을 중심으로 한 탈탄소 전략은 이미 전환기에 접어들었다. 한화큐셀의 고효율 셀, LS일렉트릭의 스마트그리드 기술, 두산의 연료전지 역량은 국제적으로도 경쟁력이 높다. 그러나 탄소중립은 개별 기술의 진보가 아니라, 그것이 어디에 어떻게 배치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

탄소중립은 에너지의 문제가 아니라 운영 구조의 문제다. 지역에 배치된 재생에너지 설비가 중앙계통에 종속되고, 기업의 감축 노력이 배출권 거래에만 묶여 있다면, 한국의 전환 전략은 국제 기준에 머무를 뿐 실질적인 구조 개편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기술을 넘어 제도를 설계하고, 권한을 분산하며, 책임 구조를 다층화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탄소중립은 하나의 기술이 아니라, 산업과 행정, 지역과 시민사회가 함께 작동하는 체계로 구현돼야 한다.

폐플라스틱 열분해 플랜트,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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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없는 탄소중립은 존재하지 않는다

탄소중립을 실현 가능한 전략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지역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 전라남도 신안군이 영농형 태양광과 AI 기반 에너지 운영 시스템을 결합해 자립형 모델을 구축하고 있는 시도는 단지 재생에너지 보급의 사례가 아니다. 그것은 탄소중립을 하나의 지역경제 모델로 재해석한 움직임이다.

에너지를 생산하고, 저장하고, 소비하는 과정이 지역 내에서 설계될 때 탄소중립은 단기 목표가 아니라 중장기 구조로 정착된다. 지역이 정책의 수용지가 아니라 설계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산청군의 농산업 기반 ESS 실증사업, 단양군의 폐교 태양광 플랫폼, 전주시의 마이크로그리드 실험은 모두 에너지와 탄소, 산업과 경제가 같은 구조 안에서 설계되어야 한다는 시사점을 제공한다. 지역이 중심이 될 때만이, 탄소중립은 지속 가능한 산업 전략으로 작동할 수 있다.

탄소중립은 기술 경쟁이 아니라 구조 설계의 문제다

이재명 후보가 제안한 ‘신재생 혁신 AI’ 전략은 한국형 탄소중립 모델의 기초 설계에 해당한다. 재생에너지 보급과 AI 운영 시스템을 통합하고, 에너지 생산과 수요 예측, 저장과 분배를 하나의 흐름 안에서 제어하겠다는 발상은 단순한 전환 계획이 아니다. 그것은 산업과 지역, 기술과 제도를 동시에 설계하는 전략적 구조다.

문제는 이 전략이 정치적 수사에 그칠지, 구조적 전환의 실질로 이어질지에 있다. 2026년 탠덤셀 상용화 일정, 탄소 배출권 시장의 개편 가능성, 그리고 지방정부의 에너지 인프라 투자 역량은 그 현실성을 판가름할 핵심 지표다.

한국형 탄소중립 모델이 가능하려면 기술이 아니라 권한이 재배치돼야 한다. 정책은 선언이 아닌 구조의 언어로 구성돼야 하며, 지역은 행정 단위가 아닌 에너지 체계의 운영 단위로 재정의돼야 한다. 탄소중립은 그 지점에서 비로소 전략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