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이라는 플랫폼의 공공성과 사회적 책임

이재명·김문수·이준석·권영국 TV토론 격돌...사회 분야 사진=2025 05.23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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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최기형기자]27일, 제21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3차 TV토론에서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여성 신체에 대한 폭력적 표현을 공영방송 생중계에서 직접 인용하며 사회적 파문이 확산되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언어 실수나 정치적 논란을 넘어, 공적 언어의 책임과 혐오 표현의 구조적 유통이라는 측면에서 중대한 문제를 드러냈다.

구조화된 혐오 표현의 재현과 '검증'이라는 명분

이준석 후보의 발언은 여성 혐오가 내포된 극우 커뮤니티의 표현을 순화해 인용한 것으로, 해당 표현의 의도가 부정적이지 않다는 주장을 전개했다. 그러나 그 인용 자체가 여성 신체를 대상화하며 조롱하는 언어적 맥락에서 기원했기 때문에, 이 발언은 정치적 검증이라는 목적과는 별개로 혐오 표현의 재확산이라는 구조적 기능을 수행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정치적 검증이라는 의도와 표현의 사회적 효과 사이의 괴리는, 공적 언어 사용자가 스스로의 발언이 어떤 맥락에서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감수성과 윤리적 자의식이 요구됨을 시사한다. 특히, 발언을 통해 제기한 ‘논의의 주제’가 아니라 ‘표현의 방식’이 본질적 문제로 떠오른 것은, 단지 단어 하나의 문제가 아닌, 구조화된 혐오 인식의 재생산 그 자체였다.

방송이라는 플랫폼의 공공성과 사회적 책임

이번 발언이 특히 심각하게 인식된 이유는 그것이 전 국민이 시청하는 공영방송 생중계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다. 가정 내 아동, 청소년, 여성 시청자들이 함께 시청하는 방송이라는 사실은 단순한 콘텐츠 소비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언어 감수성과 윤리 기준을 시험하는 장치였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 관련 기관이 이 사안에 즉각적인 대응을 보이지 않은 점은 제도적 허점으로 남는다. 토론회 생중계가 언론 자유의 이름으로 보호받아야 한다는 원칙과 함께, 명백히 성적 대상화와 혐오적 맥락이 내포된 표현을 사전 제한할 수 있는 시스템적 장치 역시 논의되어야 한다.

젠더 감수성의 결여와 정치 리더십의 타격

이준석 후보는 3차 토론 이후 “최대한 정제된 표현이었다”고 해명하며, 해당 표현이 혐오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감수성 자체를 회피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수차례 젠더 이슈에 대한 논란을 야기한 정치인이 공적 자리에서 다시금 성적 대상화를 유발하는 발언을 했다는 점은, 단순 실수가 아니라 체계적으로 축적된 인식 문제라는 지적을 뒷받침한다.

이 발언 이후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즉각적인 사퇴 촉구와 고발 조치가 이어졌으며, 수만 명이 동참한 서명 운동으로까지 확산되었다. 일부 보수 지지층은 정치적 검증의 일환으로 옹호했지만, 중도 유권자층과 젠더 감수성이 높은 20~40대 여성 유권자 사이에서 신뢰 붕괴 현상이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혐오 표현에 대한 제도적 대응의 필요성

이 사건은 한국 사회에서 혐오 표현에 대한 법적 기준이 여전히 불분명하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켰다. 현재 공직선거법이나 방송심의규정은 명시적 모욕이나 인격 침해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대응하고 있으며, ‘혐오’라는 개념을 실정법상 판단 기준으로 채택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인권보장법, 혐오표현금지법 등 입법이 활발한 유럽 국가들의 사례처럼, 혐오 표현은 단순한 언어 문제가 아닌 사회적 불평등을 강화하는 구조적 장치라는 점에서 엄격한 기준과 규제가 필요하다.

정치인·공직 후보자에 대한 인권 감수성 교육, 방송언어 실무자에 대한 사전검토 시스템, 혐오 표현 발생 시 시민사회와 협업하는 신속 대응 체계 마련 등이 병행되어야 하며, 더 나아가 젠더 갈등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정치적 도구로서의 혐오’를 사회적으로 불용하겠다는 강력한 합의 형성이 필요하다.

정치 언어의 윤리적 재구성은 가능한가

이준석 후보의 발언은 단순한 ‘표현의 실수’를 넘어서, 정치인의 언어가 어떻게 공적 공간을 오염시킬 수 있는지, 공영방송이라는 플랫폼에서 어떤 사회적 상처를 야기할 수 있는지를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정치적 검증이라는 목적을 빌미로 혐오 발화를 재현하거나 정당화하려는 시도는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

정치의 언어가 갈등의 조장 수단이 아닌, 공공성과 연대의 매개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언어 사용에 대한 윤리적 자각과 제도적 감시가 동시에 강화되어야 한다. 이 사건은 단순한 정치인의 윤리 실패가 아니라, 공적 담론장의 위생 상태를 되묻는 구조적 사건이다. 공적 언어의 수준은 공동체 전체의 윤리적 합의 수준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지금 필요한 것은 사과나 해명이 아니라 공공 담론을 지키기 위한 사회 전체의 감시와 재구성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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