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을 넘는 정부, 신뢰를 설계하는 경제정책의 전환점

사진=MBC 갈무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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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최기형기자]  6월 4일,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정부의 경제 기조를 ‘실용적 시장주의’로 규정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박정희 정책도, 김대중 정책도 필요하다면 가리지 않고 쓰겠다”고 천명했고, “통제하고 관리하는 정부가 아니라, 지원하고 격려하는 정부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이 발언은 과거의 진영 대립과 경제 이념 구도를 해체하겠다는 선언이자, 한국 자본주의가 직면한 구조적 불신을 바로잡기 위한 실천적 응답으로 해석된다.

이념 아닌 결과 중심 – ‘실용’이라는 전략적 언어의 정치학

이재명 대통령이 ‘실용’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단순한 정책 수사의 변화가 아니다. 2020년대 중반 한국사회는 보수의 감세와 규제완화, 진보의 복지 확대와 공정 담론 모두에 회의를 품기 시작했다. 진영 구도에 따라 선택된 경제정책들이 구조적 양극화, 지역 격차, 청년 불안,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오히려 시장과 정부 양측에 대한 신뢰를 동시에 붕괴시켰다.

‘실용적 시장주의’는 이 불신의 구도를 끊어내기 위한 재설계의 언어다. 이재명 대통령은 정책의 출처보다 실질적 효과에 주목하겠다는 입장을 밝힘으로써 ‘이념을 넘은 성과주의’를 국정 철학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그러나 실용은 자동으로 실현되지 않는다. 그것이 정파적 계산이 아닌, 신뢰 기반의 경제정책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전제가 필요하다.

실용이 되기 위한 조건 – 신뢰 회복 메커니즘의 재설계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직후 곧바로 ‘비상경제대응TF’를 출범시킨 것은 단기 민생 위기 대응보다 정부에 대한 신뢰 회복을 위한 응급 조치에 가깝다. 2024년 내란 사태를 전후해 급격히 흔들린 국가 시스템은, 단지 정치가 아니라 경제의 작동 방식에도 심각한 불확실성을 야기했다.

재정정책에 대한 신뢰는 붕괴했고, 기업은 정책 일관성보다 정치 리스크를 더 먼저 계산하게 됐다. 서민은 복지 수급보다 고용의 안정성을 더 의심하게 됐으며, 청년은 창업보다 탈출의 경로를 먼저 묻기 시작했다. ‘실용적 시장주의’는 이 모든 신뢰의 단층선을 복원하겠다는 포괄적 명령을 담고 있다.

따라서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한 규제의 네거티브 방식 전환, 사회 안전망의 두터운 확장, 창업 생태계 재정비,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은 그 자체로 정책이라기보다 신뢰 설계의 장치다. 시장의 자율성과 정부의 공공성이 상호 불신하는 구조를 해체하려면, 이 두 원리가 함께 살아 움직이는 ‘복합 거버넌스’ 모델이 요구된다.

과거와의 단절, 그리고 전략적 통섭의 실험

박정희 정부의 성장 모델은 산업집중과 국가주도의 압축전략으로, 김대중 정부의 디지털 전환은 정보화 기반의 신산업 확장이었다. 두 모델 모두 시대에 따라 성과를 냈지만, 현재의 한국경제는 압축도, 확장도 더는 통하지 않는 ‘저성장 고위험의 함정’에 갇혀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 두 시기를 분리하지 않고 전략적으로 ‘통섭’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산업정책의 기획력과 창업·혁신 생태계의 자율성이 병존할 수 있다는 조건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단절이 아닌 통합, 배제보다 중첩을 선택한 이번 경제 기조는 ‘이념 중심 정책’이 아니라 ‘시스템 중심 정책’으로의 이행을 의미한다.

시장은 감시보다 신뢰를 요구한다 – 공정경제의 새로운 구조

‘실용’이라는 이름 아래 시장을 완전히 풀어주거나, 반대로 정부 개입을 강화하는 전략은 이미 신뢰를 상실한 상태다. 따라서 이재명 대통령이 제시한 방향은 시장에 대한 과잉 규제 해소와 동시에 공정거래 시스템의 전면 재정비, 불공정 행위에 대한 무관용 원칙,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청년·비정규직에 대한 진입 보장 장치 등 공정성 회복 장치를 병렬적으로 추진하는 복합 설계에 가깝다.

이는 경제정책의 ‘양면성’을 제거하고, 정부의 ‘편향성’에 대한 의혹을 사전에 차단하는 방식이다. 불공정에 대한 단호한 태도와, 창업·투자에 대한 과감한 인센티브는 동시에 실현될 수 있어야 한다. 실용이란 결국 신뢰가 작동하는 공간이다.

실용이 제도화되지 않으면 또 하나의 수사로 끝난다

‘실용적 시장주의’가 진정한 정책 철학이 되기 위해서는 정치 리더의 의지가 아니라 제도화된 집행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현재 한국경제가 처한 가장 심각한 위기는 정책 실패가 아니라, 정책을 믿지 않는 구조 자체다. 이재명 대통령은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 ‘누가 믿을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응답해야 한다.

정부는 더 이상 정책을 설계하는 자가 아니라, 신뢰를 조정하는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이재명 정부가 성공하려면, 실용은 철학이 아니라 시스템이어야 하며, 시장은 공간이 아니라 사회여야 한다. 한국경제는 지금, 실용이라는 언어를 ‘설계된 신뢰’로 전환할 수 있는 가장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