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이후, 시민사회는 어떻게 재구성되어야 하는가
[KtN 최기형기자]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은 하나의 정권 출범이 아니라 민주주의 복원의 과정으로 기록되고 있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총칼로 국민주권을 빼앗는 내란은 다시는 재발해선 안 된다”고 말한 이유는 명확하다. 2024년 12월의 내란 사태는 한 정권의 일탈이 아니라, 시민사회와 국가 시스템 전체가 마주한 구조적 붕괴였다.
내란의 기억, 단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국회가 탄핵했고 헌법재판소가 파면했으며, 주권자는 투표로 응답했다. 그러나 이 일련의 제도적 정리는 ‘정치의 형식’을 복원했을 뿐, ‘사회의 기억’을 복원하지는 못했다. 2024년 12월 이후, 공권력의 중립성에 대한 신뢰는 붕괴됐고, 시민의 감정은 분노를 넘어 피로에 이르렀다. 검찰과 군, 언론과 사법기관에 대한 의혹은 해소되지 않았으며, 그 공백 위에서 정치권은 다시 진영 갈등으로 되돌아갔다.
내란에 대한 단죄는 민주주의의 출발이지만, 복원은 사회 전체가 그 기억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달려 있다. 이재명 정부는 이 기억을 정리하고 구조화하는 제도적 기억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진상조사위원회, 기록 공개, 공적 책임 구조의 개편 없이는 ‘다시는’이라는 다짐은 공허해질 수밖에 없다.
‘국민 통합’은 선언이 아니다 – 제도화되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는다
이재명 대통령이 “모두의 대통령”을 선언하며 국민 통합을 강조한 것은 한국 정치가 그동안 얼마나 ‘통합의 기술’을 상실했는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윤석열 정부는 내내 ‘반(反)이념’에 기댔고, 결과적으로 내란이라는 극단적 사태를 방치했다. 단지 대통령의 언어가 달라졌다고 해서 국민이 다시 하나가 되는 것은 아니다.
포용의 정치는 제도 설계 없이는 지속되지 않는다. 국정 운영의 전 과정에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구조, 예산 편성과 정책 결정에 다양한 사회 주체들이 공식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거버넌스 체계, 지역과 세대를 아우르는 숙의 민주주의의 실험이 지금 필요하다. '모두의 대통령'은 단지 정치인의 태도가 아니라, 시스템의 구성 방식이어야 한다.
내란 이후의 시민사회 – 감시의 주체에서 복원의 주체로
한국 시민사회는 1987년 민주화 이후 ‘감시의 시민’으로 구조화되어 왔다. 권력에 대한 의심, 정당에 대한 비판, 관료제에 대한 불신이 견제와 균형의 원리로 작동했다. 그러나 2024년 내란은 이 구조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감시만으로는 권력의 일탈을 막을 수 없었고, 제도적 상시참여 없이 시민은 위기 시에만 호출되는 존재로 전락했다.
이재명 정부는 시민사회를 단지 비판의 주체로 둘 것이 아니라, 국정 운영의 공동 설계자로 재위치시켜야 한다. 정책 설계와 실행, 평가 과정에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구조가 없다면, 민주주의는 다시 엘리트 중심의 폐쇄 체계로 회귀하게 된다. 촛불 이후의 광장은 일시적 동원이 아니라 상시적 운영이 되어야 한다.
사회적 신뢰 복원의 핵심 – 혐오의 정치, 이제는 끝내야 한다
내란이 가능했던 사회적 조건 중 하나는 혐오의 일상화였다. 정치권은 이를 무기화했고, 언론은 이를 재생산했으며, 플랫폼은 이를 확산시켰다. 세대, 지역, 젠더, 계층 간 감정적 단절은 단지 ‘갈등’의 수준이 아니라 ‘공동체의 해체’로 나아갔다.
이재명 정부가 ‘정의로운 통합’을 말하려면, 먼저 이 혐오의 언어를 제도 밖으로 몰아낼 수 있어야 한다. 증오 확산을 조장하는 미디어 구조에 대한 제도적 통제, 혐오 표현 규제 입법, 교육과 공공영역에서의 사회 감수성 강화 같은 사회적 해독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민주주의는 단지 투표만으로 유지되지 않으며, 정서적 신뢰라는 공기 위에만 작동한다.
복원된 제도, 회복되지 않은 사회
이재명 대통령이 이끄는 새 정부는 헌법을 복원했지만, 아직 민주주의를 회복한 것은 아니다. 투표율과 지지율, 입법 과반과 여론 지형은 모두 ‘제도 복원’의 증거일 수는 있으나, 진정한 정치의 회복은 시민사회가 다시 공적 공간을 신뢰하고, 정치과정을 자신의 것으로 느낄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광장의 국민’은 선거를 만들 수 있지만, 일상을 통치하지는 않는다. 이재명 정부는 그 일상을 다시 열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투쟁이 아니라, 구성이다. 그 구성의 실험이 지금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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