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설작가 「익명의 내면에서 (The Inner Unknown)」
이름 없는 내면, 말하지 못한 감정
[KtN 박준식기자]홍설작가의 「익명의 내면에서(The Inner Unknown)」는 언어와 얼굴, 이름을 잃어버린 채로 존재하는 내면의 감정을 탐구한다. 작품 속 형상들은 익명적이다. 꽃을 닮았지만 동시에 신체 기관처럼 보이고, 혹은 아직 미완의 생명체처럼 보이기도 한다. 형태는 얼굴을 대신해 말하고, 색채는 감정을 대신해 숨 쉰다. 관람자는 작품 앞에서 즉각적인 동일화를 시도할 수 없다. 대신 언어 이전의 감각적 차원에서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이름 없는 존재들이 작품에서 피어나고 사라지는 과정은, 정체성이 본래부터 고정되지 않았음을 상기시킨다. 사회적 규범과 언어적 명명은 정체성을 확정하려 하지만, 홍설은 그 이전의 단계, 아직 규정되지 않고 가능성으로만 존재하는 내면을 시각화한다.
구조: 개화와 닫힘 사이
작품의 중앙에는 열리고 있는 유기체적 형상이 자리한다. 푸른빛, 연분홍빛, 흰색의 외피가 부드럽게 열리며 내부의 붉은 핵을 드러낸다. 구조는 꽃의 개화와 닮았지만, 단순한 식물적 재현을 넘어선다. 내부의 붉은 색은 감정의 진동, 본능적 에너지, 혹은 내면의 상처를 상징한다.
주변의 다른 형상들은 각기 다른 상태로 존재한다. 어떤 것은 완전히 닫힌 껍질 속에서 아직 열리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고, 또 다른 것은 활짝 열리며 내부를 드러낸다. 정체성과 감정이 언제나 고정되지 않고, 상황과 맥락 속에서 다른 방식으로 드러나고 은폐됨을 보여준다.
배경의 초록빛 숲은 이러한 개화 과정을 감싸는 안전한 공간처럼 보인다. 초록은 성장과 생명의 색이자, 내면적 고요의 공간을 상징한다. 그 속에서 형상들은 억눌림 없이 자신만의 리듬으로 열리고 닫히며, 내면의 진실을 드러내려 한다.
색채의 긴장: 초록의 평온, 붉은 감정
작품에서 가장 강렬한 시각적 요소는 붉은색이다. 형상들의 중심부에 자리한 붉음은 에너지와 생명, 감정의 농도를 드러낸다. 그러나 항상 외피로 둘러싸여 있다. 하얗고 푸른 껍질은 붉음을 감싸면서 동시에 보호한다. 감정이 언제나 외부와 직접적으로 맞닿지 않고, 껍질 속에서 차곡차곡 자라난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초록빛 배경은 평온함과 안정감을 제공하지만, 그 위에서 붉음은 더욱 도드라진다. 억눌린 감정이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드러나고 발현된다는 역설을 보여준다. 색채의 대비는 억눌림과 해방, 보호와 노출의 긴장을 시각적으로 체험하게 한다.
철학적 층위: 익명성과 내면의 자유
「익명의 내면에서」는 정체성이 본질적으로 고정되지 않았음을 시각적으로 증명한다. 얼굴이 없는 형상, 이름이 없는 존재는 언어와 규정 이전의 상태를 보여준다. 이 상태는 단순한 결핍이 아니라, 오히려 자유의 조건이다.
미셸 푸코가 말한 권력과 규율의 장치 속에서 정체성은 사회적으로 규정된다. 그러나 홍설 작가의 형상들은 규율에서 벗어난 상태, 아직 규정되지 않은 가능성으로 존재한다. 또한 주디스 버틀러의 수행적 정체성 이론과도 접점을 가진다. 정체성은 미리 주어진 본질이 아니라, 반복되는 행위와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생성된다. 작품 속 개화하는 형상들은 정체성이 끊임없이 새로 생성되고 사라지는 과정을 은유한다.
익명성은 억압이 아니라 해방으로 기능한다. 얼굴이 없다는 것은 특정한 사회적 위치나 규정에서 벗어난 상태를 의미한다. 그 안에서 감정은 오히려 더 자유롭게 자라난다.
동시대 미술과의 교차: 정체성, 감정, 식물적 은유
이 작품은 동시대 미술의 여러 흐름과 연결된다.
현대 미술은 젠더, 다중적 정체성, 비이분법적 존재 방식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홍설의 작품은 언어와 이름을 지워버림으로써, 고정된 정체성을 넘어선 다층적 존재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최근 미술에서 식물은 인간 감정과 정체성을 은유하는 도상으로 자주 등장한다. 식물의 개화 과정은 내면의 성장과 해방을 상징하며, 이는 인간 존재의 생물학적·심리학적 층위를 함께 드러낸다.
팬데믹 이후 미술은 다시금 개인의 내면과 감정에 집중하는 흐름을 보인다. 이 작품은 감정을 고요한 개화 과정으로 제시하며, 치유와 자기 성찰의 장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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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 속의 긴장
「익명의 내면에서」는 폭발적이지 않다. 감정은 조심스럽게, 그러나 필연적으로 드러난다. 형상들은 서두르지 않고, 제각기 다른 속도로 개화한다. 느린 과정은 감정의 진실성을 강조하며, 관람자에게 내면의 리듬을 체험하게 한다.
작품은 해석의 여백을 넓게 남긴다. 형상들은 식물 같으면서도 인간의 기관처럼 보이고, 붉은 핵은 욕망일 수도, 상처일 수도 있다. 관람자가 자신의 경험과 내면을 투사할 수 있게 만든다.
추상의 개방성과 위험
작품의 익명성은 동시에 위험을 내포한다.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개방적인 해석은 메시지를 흐릴 수 있다. 특히 사회적 맥락 속에서 정체성과 감정을 다루는 작업이라면, 구체적 맥락과의 접점을 조금 더 드러낼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작품은 아름다운 형상의 묘사로만 머물 수 있다.
K-ART와의 접속: 보편성과 특수성의 교차
한국 현대미술은 오랫동안 절제와 비움의 미학으로 국제적 주목을 받아왔다. 그러나 최근 세대는 감정과 내면,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다루며, 보다 감각적이고 유기적인 형식을 택하고 있다. 홍설작가의 「익명의 내면에서」는 바로 이 흐름 속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작품은 한국 사회 특유의 억눌림과 사회적 규율 속에서 자라나는 개인의 내면을 은유한다. 동시에 언어 이전의 정체성과 감정이라는 보편적 문제로 확장된다. 이러한 보편성과 특수성의 교차는 K-ART가 세계 미술계에서 주목받는 이유다.
내면은 언젠가 피어난다
「익명의 내면에서」는 결국 내면의 감정이 언젠가 반드시 드러나고 피어난다는 사실을 말한다. 얼굴이 없고, 이름이 없고, 아직 언어화되지 않은 감정일지라도, 껍질 속에서 자라나며 고유한 리듬으로 개화한다.
홍설작가는 언어 이전의 내면을 섬세한 형상으로 시각화하며, 관람자에게 자기 안의 익명적 감정을 마주하게 한다. 작품은 말하지 않아도 존재하는 감정, 언어로 붙잡히지 않아도 피어나는 정체성을 환기시킨다. 그것은 고요하지만 강렬한 개화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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